출판사 제공 책 소개

언어(기호)의 20세기로부터 기술의 21세기로! 인공지능의 구굴‘신’으로부터 ‘관계의 철학’으로! 디지털, 빅데이터가 문제라고? ‘바보야 문제는 철학이야!’, AI와 빅데이터에 대한 열광과 비관/불안 이전에 우리가 물어야 할 철학적 질문들 『디지털적 존재의 대상에 대하여』 ‘기술과 철학/문화가 일방의 ‘우월’이나 (상호)‘소외’를 넘어선 ‘화해’와 상호이해를 통해 21세기의 디지털 문명을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인문학, 철학의 새로운 출발! 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체하고 있는 ‘기술철학’에 맞서 또 다른 기술에 대한 사유의 강력한 흐름을 대변하고 있는 신진연구자의 도전적 야심작! 지난 20세기말에 서구지성계에 등장한 강력한 지적 조류로 알려진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이념적으로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이성의 패배’였다면 다른 한편 ‘현실에서’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기술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21세기에 20세기를 회고해보면, 20세기는 하이데거 말대로 ‘존재망각’만큼이나 ‘기술망각’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20세기가 ‘언어’ 또는 ‘기호’의 세기였다는 주장이 얼마나 많은 장단점을 갖는지를 이 측면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또 공산주의/자본주의의 대결 또한 이념적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기술의 인간 지배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0세기 사유를 주조한 하이데거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의 사유 또한 ‘기술’이라는 이 측면에서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구굴‘신’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기술이 ‘존재-신학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기술을 대상으로 한 ‘철학적’ 사유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이제 겨우 시작된 느낌이다. 물론 기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기술철학’이라는 용어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철학의 전통적 영역인 ‘형이상학’ 및 ‘존재론’과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앞과 같은 판단은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이데거 진단대로 사이버네틱스의 등장과 함께 ‘형이상학은 종언’을 고했을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전공의 컴퓨터공학자로 공학적 배경을 철학지식과 능숙하게 결합해 우리시대의 근본물음, 즉 기술은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라는 물음과 대결하고 있는’ 저자의 이 도전적 야심작이 얼마나 ‘문제적’일 수 있는지를 위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술철학’이라는 문제 틀을 21세기의 형이상학 및 존재론과 함께 연관지어 ‘철학’과 ‘기술’에 대한 사유를 혁신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가령 저자가 ‘기술철학’의 유력한 흐름인 ‘객체지향철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만 보아도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외려 저자는 ‘사이버네틱스’의 등장과 함께 형이상학의 죽음을 선언한 하이데거와 달리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주류가 된 우리시대에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재구축, 탈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 디지털과 인공지능 그리고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재)결합은 가능한가? 본질 또는 실체의 ‘제1 근본’철학으로부터 ‘관계론의 철학’으로! 저자는 그와 관련해 먼저 ‘컴퓨터화가 철학 못지않게 철학적임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철학과 디지털화 간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실제로 디지털화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과 철학 간의 상호소외 또는 오해/맹신 그리고 심지어 상호적대를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기술과 문화의 화해를 자기 철학의 목표로 삼은 시몽동이 큰 도움이 되며, 소련과 미국을 기술문명의 상징으로 보아 ‘피와 흙’을 내세운 나치와 서툴게 ‘정치적으로’ ‘협력한’ 하이데거의 한계도 이 측면에서 새로 조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화해의 길로 단지 기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긴요함을 강조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전통철학에 대한 혁신적 읽기를 요구하고, 시도한다. 말하자면 21세기의 디지털기술을 기존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눈으로 읽고, 그리고 전통철학은 현대의 디지털기술의 논리(학)의 눈으로 읽는 등 겹눈으로 양자를 교차 대조하고, 교차 독서함으로써 ‘상호 지양과 상호 화해’에 이르자는 것이다. 즉 일종의 deconstruction, 즉 탈구축의 제안인데, 다만 그것이 가령 데리다 식의 디페랑스, 차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철학이라는 전혀 미지의 영역 간의 대화와 ‘통섭’이라는 축을 따라 이루어지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철학은 잘 알려진 대로 제1인의 원인, 가령 부동의 원동자를 찾는 사유의 패러다임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것은 다시 주체/대상, 주관/객관 식의 근대적 패러다임으로도 변주된다. 만약 이 패러다임을 현재의 디지털기술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질 뿐만 아니라 기술의 진행에 비해 ‘후진적인 상태’로 머물고 말 것이다. 그것은 사유의 일종의 주권을 주체/주관에서 대상/객체로 옮기자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객체지형철학’이라는 대안으로도 극복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일종의 ‘관계론의 철학’(‘관계의 철학’이 아니다)으로 기존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을 혁신하자는 것인데, 실제로 현재의 디지털기술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상당한 현실성을 갖는다. 즉 가령 SNS, 페이스북, 틱톡 등은 이미 용어에서부터 관계 또는 대화 지향적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이 과연 또 다른 소외의 한 형태가 아닌지 하는 의심을 우리는 지속적으로 떨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같은 철학의 출발점부터 흄과 후설에 대한 상술 등 ‘관계론의 철학’을 깊이 있게 논구한 주요 철학자들에 대한 전혀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는 한편 디지털 기술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새로운 사유의 대상으로 끌어내고 있는 저자가 본서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보이고 있는 발상의 전환은 본서를 21세기의 필독서이자 교양서로 만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