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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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야마모토슈고로상 후보작 2007년 제4회 일본서점대상 4위 나는 내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믿고 있었다. 때문에 그러는 사이 야스코가 먼저 사과하지 않겠나 배짱을 부린 것은 사실이다. 설마 그 이듬해에 ‘남은 수명은 앞으로 8년’이라는 언도를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내 수명’이 아니라 ‘세상의 수명’이었으니, 실로 예상을 뛰어넘은 일이었다. _「종말의 바보」 19쪽 기상천외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중층적이고 정교한 구성력과 경쾌하고 소탈한 필치로 그려 내는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열한 번째 단행본 『종말의 바보』가 현대문학에서 김선영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소설 스바루》 2004년 2월호부터 2005년 11월호까지 발표된 여덟 편의 연작소설을 묶은 이 작품은 2006년 국내에 소개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의 『종말의 바보』는 일본에서 2009년 발행된 문고본을 번역한 것으로 평론가 요시노 진의 작품 해설이 더해져 독자로 하여금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 세계를 한층 더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카 고타로는 『종말의 바보』에서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음 직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날 돌연 8년 후에 소행성이 충돌하여 지구가 멸망한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전 세계를 강타한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자살이 속출했을 뿐만 아니라 폭동, 살인, 방화, 강도, 사기 등의 범죄가 만연하고 세상은 대혼란에 빠진다. 여기까지는 종말을 다룬 여타의 소설이나 영화의 전개와 다를 바 없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더 나아가 그 시점에서 5년이 흐른 뒤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 차분하고 담담해져서 남은 3년을 마주 볼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모습이 이 작품의 주요 이야기이다. 세상의 종말 앞에서 분노하고 체념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따스하고 경쾌하게 그려 낸 여덟 편의 드라마 오늘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걸작 연작소설 “나에바 군은 내일 죽는다고 하면 어쩔 겁니까?” 배우는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똑같습니다.” 나에바 씨의 대답은 쌀쌀맞았다. “똑같다니, 뭘 할 건데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로 킥과 레프트 훅뿐이니까요.” “그건 연습 얘기잖아요? 아니, 내일 죽는다는데 그런 짓을 하겠다고?” 재미있네, 하고 배우는 웃었다고 한다. “내일 죽는다면 인생이 바뀝니까?” 글자라서 상상할 수밖에 없지만, 나에바 씨의 말투는 분명 정중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몇 년짜리 인생입니까?” _「강철의 울」 215쪽 『종말의 바보』의 무대는 지구의 종말까지 앞으로 3년이 남은 시점, 일본 센다이 북부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 ‘힐즈 타운’이다. 가까스로 공황 상태에서 벗어난 몇 안 되는 살아남은 힐즈 타운 주민 혹은 그들과 관련 있는 사람이 여덟 편의 이야기에서 각각 화자로 등장하는데,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치밀한 구성 아래서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점이 흥미롭다. 성적이나 직업 같은 눈에 보이는 기준만으로 자식의 가치를 판단해 딸과도 소원해지고 종말보다 먼저 자살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의 추억을 매개체로 하여 딸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종말의 바보FOOL」, 간절히 원했을 때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임신에 성공한 아내를 두고 지금 낳더라도 앞으로 3년밖에 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우유부단한 남편의 고민과 결심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그를 둘러싼 일상을 통해 그려 낸 「태양의 딱지SEAL」, 언론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여동생을 잃고 종말이 오기 전에 직접 복수를 하려는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농성의 맥주BEER」, 종말이란 상황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부모로부터 남겨진 소녀가 남은 시간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나가는 이야기인 「동면의 소녀GIRL」, 종말 소동이 다 거짓말인 양 변함없는 일상을 지켜 나가는 권투 선수의 모습을 그려 낸 「강철의 울WOOL」, 난리 통에 아내를 지켜 내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는 남편과 괴짜 대학 동창의 이야기를 그린 「천체의 돛배YAWL」, 딸처럼 언니처럼 엄마처럼 연인처럼 홀로 남은 사람들 곁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상대를 연기해 주는 연기자 지망생의 이야기 「연극의 노OAR」, 망루에서 지구 최후의 순간을 끝까지 바라보고 싶다는 아버지를 둔 비디오 가게 점장의 가족과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엿보이는 「심해의 지주POLE」, 각각의 단편에서 개성적인 등장인물들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드라마가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전개된다. 이사카 고타로는 지구의 종말이라는 엉뚱한 설정을 가져와 죽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을 이야기한다. 《청춘과 독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비참한 상황이라도, 그래도 사람은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는데, 『종말의 바보』는 단순한 낙관론도 아니고 날선 비관론이나 냉소도 아니며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담담하게 환기시킨다. 개인, 나아가 가족의 재생을 완만하게 그려 낸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다시 마주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종말의 바보』에 그려진 것은 ‘인생의 규칙’이다. 아무리 비참하고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도 힘차게 살기 위한, 그리고 슬픔을 끌어안은 사람들에 다가서기 위한 ‘인생의 규칙’. 앞으로 3년밖에 남지 않은 목숨이라는 선고를 받아도,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풍요로운 인생을 찾아서. _요시노 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