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2016년 겨울,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가능성’을 꿈꾸자!!
아나키스트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
2016년 겨울. 대통령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의결되었고, 정치 권위와 위계의 본성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이 공론장에서 무수히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사람의 국정 운영 개입은 어떤 의미에서 부당한 형태의 권력 행사인가? 이와 같은 문제가 성정치의 문제와 맞닿는 일이 빈번한 까닭은 무엇일까? 집합적 개념으로서 국민 주권이 스스로 선출한 공직자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사건은 비교문화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시위에서 동원된 행동 수단을 폭력이라고 명명하는 행위는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가능성들』은 인류학자 및 아나키스트 활동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단편 모음집으로, 2016년 겨울,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제목이 시사하듯 글들을 묶는 주제는 ‘가능성’이다. 어떤 가능성인가?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이다. 인간 삶은 전체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그 다양성이 고갈되는 법이 없다. 다른 형태로 실존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 덕분이다.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특히 정치적인 영역에서 힘을 발휘한다. 일상과 국가, 비교문화적 맥락에서 나날이 경험하는 크고 작은 억압이 불가피하지 않음을 재확인하도록 하고, 다른 문화권의 구체적 변동 사례를 이론적 사색과 더불어 제시함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접근법은 인류학적 세계관의 핵심 요소와도 일치한다. 익숙한 것은 낯설게, 낯선 것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이다. 낯설어 보이는 다른 문화권의 사고방식과 실천 체계 역시 곰곰 생각해 보면 자문화와 유사한 전제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사람인 이상 타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타자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강조했던 최근 수십 년 간의 지적 경향이 온당한 근거가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추세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상호 대화 및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통의 영역이 소홀히 취급된 것은 아닌지 묻고, 비교문화적 시야가 그 공통의 기반을 탐사해 볼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이라고 제안한다. 고전적인 인류학 연구 사례들로부터 저자 자신의 현지조사, 폭넓은 독서와 직접행동의 경험들이 어우러진 논의는, 읽는 사람 각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을 여럿 제공한다.
그레이버의 저술 중 대표작 『부채, 그 첫 5000년』을 비롯해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관료제 유토피아』 등 여러 책이 이미 한국어 독자들에게도 소개되어 있다. 본서에 수록된 글 일부는 본래 인류학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학술 문헌을 쓸 때조차 관례와 사뭇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저자의 필력 및 유머감각 덕분에 일반 독자도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책은 세 부로 구성되어 있고, 배열 순서는 저자 자신의 삶의 경로와 일치한다. 1부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가 박사과정 학생이던 시절 고전을 두루 탐독하며 얻은 착상을 발전시킨 결과로, 권위, 소비, 생산양식, 물신숭배 등의 개념적 문제들을 다룬다. 2부는 학위 논문 작성을 위해 마다가스카르 시골 마을에서 진행했던 현지조사의 성과를 반영한다. 현지 주민들이 권위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판단하는 역사/문화적 맥락과 도덕원칙, 부당한 권위에 대처하는 기발하고 실용적인 요령, 일상에서 실행되는 직접민주주의 문화가 분석된다. 3부는 저자가 학위를 받은 후 지구정의운동 및 직접행동에 참여하며 구상한 내용을 바탕에 둔다. 전위주의와 유토피아주의, 민주주의의 비-서구적 기원과 직접행동의 전략적 의미 등이 논의된다. 책 전반에 걸쳐 교차 언급되는 자전적인 일화들도 흥미롭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저자가 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의 주제를 파고들게 된 계기와 최초 착안점이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