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페미니즘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강렬한 순간(moment)들이 모여 거센 물결이 되기까지, 몸으로 부딪쳐 만들어 낸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삶 이야기!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어떤 페미니즘’과 ‘어떤 시간들’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첫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썼다. 누군가 20~30대의 우리에게 들려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 페미니즘의 어떤 순간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줄 거야.” 우리의 기획은 그곳에서 시작했다. ― 「서문」 중에서 2015년, SNS를 가득 메운 페미니스트 선언(‘#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은 그 자체로 거센 물결이었지만, 뒤이어질 수많은 변화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로서 각성한 ‘순간’(‘페미니스트 모먼트’)들을 지나 온 이들은, 사회 곳곳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여성 혐오와 차별을 발견하고, 이에 항의하는 액션들을 이어 나갔다. 가부장제의 ‘코르셋’을 벗은 이들의 분노와 연대는 끝없이 이어져 왔고, 2017년 새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페미니스트 선언에는,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페미니스트로 살겠다’는 다짐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온오프라인의 공간에서 치열하게 싸워 승리를 거두는 짜릿한 순간들도 있지만, 각자의 삶터, 일터로 돌아왔을 때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이러한 굴곡의 시간들을 다들 어떻게 ‘견뎌 오고’ 있는 것일까? 이 책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1990년대 중후반에 뜨겁게 페미니즘을 만나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고, 페미니스트로서 삶을 지속해 온 여섯 명의 ‘굴곡의 시간들’을 엮어 낸 책이다. 성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조직 내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를 폭로하고(‘명예훼손’ 역고소에 대응하고), 다양한 게릴라 액션들을 기획하고, 이로 인해 때로는 ‘과격한 페미니스트’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2016~17년 현재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다만 ‘그때’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질문과 고민의 이동들, 몸담은 장소의 이동들, 그리고 때로는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신의 페미니즘을 갱신해 왔던 과정들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이 글들에 박혀 있는 ‘나’라는 말이 우리 개개인으로 환원되지 않고 한 시대 안에서 우리가 놓여 있었던 어떤 자리에 대한 좌표로 읽혔으면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이야기들은 단절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서로 연결된 우리의 역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연결’이다. 그만큼 페미니스트들, 여성들의 연결과 연대를 저해하는 요인들이 사회 곳곳에 배태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 관심 영역을 교차하여 페미니스트들이 연결될 수 있으려면, 서로를 향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어떤 순간들이 힘이 되었는지, 또 어떤 순간들이 서로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겼는지 등의 이야기가 각자의 서사로 남는 한 ‘연결’되기는 어렵다. 이 책은 지금껏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흩어져 존재하던, 현재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모아내는 작업이며, 이러한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더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며 엮은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처럼, 당신과 나, 우리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들이 모여 더 거센 물결을 촉발하는 계기(moment)들을 마련하기를 바라 본다. * * * 이 책은 여섯 편의 에세이와 저자들 간의 ‘기획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의 질문을 환대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질문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던(권김현영), 남성 중심의 가족사와 세계사에서 지워져야 했던 할머니들에 대한 사유를 통해 ‘보편’의 기억에 틈입해 간(손희정), 오랜 시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를 망설였지만 끝내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싶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한채윤), 학생운동-여성운동-장애여성운동-퀴어운동으로 이어지는 궤적으로 자신을 추동한 의미 있는 타자들과 만나게 된(나영정), ‘페미니스트 집착’의 시기를 거쳐 ‘페미니스트 연결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이른(김홍미리), 100인위원회-언니네-살림의료생협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통해 페미니즘을 갱신하고 ‘계속, 끝까지’ 페미니스트로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전희경) 이야기들 속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기를, 내 삶과 연결되는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페미니스트,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존재들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괜찮은 걸까. 불행한 여자의 운명을 반복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나은 걸까. 이런 생각조차 하면 안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자의 호기심에 대한 오랜 저주가 나를 함정에 빠트린 것 같았다. (권김현영, 18쪽)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적으로 변해 가는 시간들,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시간들 …… 이 시간/순간들을 이 책은 ‘페미니스트 모먼트’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통해 구성된 사회는 여성들의 질문을 환대하지 않았다. 이 책을 여는 글 「질문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권김현영)는 호기심 많고 지적인 열망을 가졌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던 유년기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필자에게 ‘여성학’이란 질문을 환대하는 학문이었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던” 용감한 여성들의 말과 글은 ‘보약’과도 같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바로 세계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할머니들은 왜 가족사와 세계사에서 지워지게 되었는지(손희정), 성별에 따라 왜 다른 기대들이 주어지는지(한채윤), ‘민주주의, 평등’에서 배제된 이등시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나영정),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말을 전하는 데에 어떻게 아무런 머뭇거림이 없을 수 있는지(김홍미리),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고자 하는 완고한 의지가 어떻게 ‘논리’로 통용되는 것인지(전희경). 이들은 공고한 가부장적 질서와 세계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는 살 수 없었고,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되돌아갈 길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오랫동안 흐르지 못한 말, 얼어붙었던 질문들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된 시간들 레즈비언으로서 나를 긍정하자, 지금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이고 굳이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음도 비로소 함께 긍정하게 되었다. …… 이 모든 해방감을 나에게 안겨 준 것은 바로 ‘페미니즘’이 아니던가. (한채윤, 88쪽)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알아 온 것들을 재인식하는 렌즈이고 ……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너는 여자로 살 필요가 없단다. 남자로 살 필요도 없지. 그냥 너는 너로 살면 된단다. 그게 바로 너란다!”라는 것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나는 이제껏 받아 본 적 없다. (김홍미리, 166쪽)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을 때, 많은 이들이 느끼는 희열은 바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민족해방이나 노동해방에 대한 학습은 받았지만 여성해방이나 성정치란 단어는 듣지 못했”던 대학 시절을 보낸 한채윤은 PC통신을 통해 접한 ‘페미니즘’과 ‘레즈비어니즘’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