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의의
영문학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이자 저술가이며 페미니스트 번역가인 임옥희의 저서 젠더 감정 정치 가 출간되었다. 주디스 버틀러 읽기,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타자로서의 서구, 발레하는 남자, 권투하는 여자 에 이은 다섯 번째 단독저서이다.
이 책은, 유표적 지시어가 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당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작금의 세상 읽기이자 이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또 다른 출구에 관한 상상이다. 서문에서 제시된 “여성혐오가 시대정신이다”라는 테제는 바로 지금 강남역 지하철 10번 출구의 현실이 되어 있다. 미래와 과거로 우회한 그녀의 테제가 채 발화되기도 전에 페미사이드의 현실이 먼저 당도해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로벌 양극화와 여성혐오의 관계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젠더와 감정 그리고 정치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가장 긴 사다리로 젠더무의식이라는 인간의 심연을 굴착해나가는 한편, 이론의 총동원체제를 가동시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현상을 분석, 비판하고 함께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상시적 고용불안과 살인적 경쟁으로 인한 경제적 공황이 심리적 공황으로 드러난 것이 여성혐오라고 그녀는 진단한다. 글로벌 양극화가 초래한 경제적 공포와 불안, 계층상승의 좌절로 인한 분노와 공격성이 자기파괴로 치닫지 않도록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여성혐오이다. 젠더이해관계가 걸린 위협적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 억압되었던 젠더무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녀가 주목하는 감정의 젠더정치는 이와 같은 곤경의 해소가능성을 담보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고정된 좌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몸들 사이를 흘러다니는 강렬한 만남이자 힘들의 흐름”인 감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뇌관을 발견한 것이다. 변덕, 우연성, 예측불가능성, 변칙성으로 인해 몸에 각인된 감정은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써 자본의 이성적 기획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자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여성혐오의 폭발이 SNS에서 셀렙들에 의한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는 해시태그운동을 결과하는데서 알 수 있듯,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마법적으로 합류하여 혐오가 친화로, 증오가 사랑으로 가역적으로 변형되는 정동의 사회심리적 공간에 주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감정정치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논리와 시각 중심주의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이라는 당대의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예측불가능의 전파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마법이라는 명명은 해결불가능이 아니라 다른 해결의 가능성에 대한 은유이다. 요컨대, 감정의 젠더정치는 정치경제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여러 얼굴로 치환되고 전이되는 감정의 가장무도회에 집중하여 그것을 재해석, 재배치함으로써 젠더문화의 변혁을 앞당기려는 노력이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우리 사회의 정상성 밖에 위치한 폭력과 호러, 수치와 추락을 감정의 젠더정치로 재해석함으로써 페미포비아와 여성호러리즘, 모성살해와 모성숭배 그리고 엄마포르노, 귀요미와 팜므파탈 등 갈등하고 충돌하는 목소리들을 복원하여 도래할 근대의 꿈을 실현하는 매개로 읽어내는 데 있다.
목 잘린 메두사의 흔적을 예수에게서 찾아내는 여성주의적 독법에 바탕하여 남성의 목을 베는 여성 호러리즘 계보를 재현하고 마조히즘과 포르노그래피에서 상호인정과 윤리를 발견하며, 수치와 추락에서 비상의 잠재력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자본과 기계적 이성에 토대한 안정적인 이분법을 균열하는 마법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 이론의 성채에 접근하여 그에 대한 주석을 달거나 접근은커녕 그 담벼락도 올라타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태반인 우리 지식사회의 현상과 달리, 저자는 대담하게 이론의 성채를 접수하여 그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개방해내는 힘겨운 작업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임옥희라는 메신저를 통과하면서 변용되는 메시지들의 형상을 따라가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이 글들은 무엇에 관한 글이라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심과 주변, 처음과 끝, 테제와 안티 테제의 경계가 없다. 장 혹은 절이라는 분류는 문학제도가 갖는 형식일 뿐, 그녀의 글은 이들의 경계를 넘어 글들끼리 헤쳐모여를 반복한다. 장과 절이라는 분절에 잠시 복무했던 글들이 마치 유기체처럼 합체된다는 점에서 그녀의 이론들은 이론이며 또 이론이다. 이 점에서 저자의 책을 따라가는 것은 한 문장에 과거, 현재, 미래가 응축되기도 하고 테제와 안티 테제, 논리와 시적 비약이 이웃처럼 자리하는 현장에 초대되는 일종의 여행경험이다. 사드와 아이히만, 총통의 지상명령 그리고 AI가 저 이성의 철학자 칸트와 논리적으로 겹치는 지적 모험 속에서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기 힘든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를 마법처럼 균열하는 다양한 젠더의 감정정치가 재해석되고 재배치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기 힘들어진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마법’처럼 균열을 낼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의 젠더 정치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서 마법이라고 함은 감정의 우연성, 예측불가능성, 전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혐오가 폭발하면, 복잡다단한 이유들이 ‘마법적’으로 합류하여 여성친화적 정동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혐오가 친화로, 증오가 사랑으로 가역적으로 변형되는 정동의 사회심리적 공간에 주목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감정정치이다. 이런 감정의 젠더정치는 상징적 세계만으로는 포획할 수 없는 전언어적, 신화적 영역에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감정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 행복한 모습 아래 모호한 슬픔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수치와 낙인이 자부심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공격성, 우울, 애도, 마조히즘, 혐오, 수치, 자괴감과 같은 온갖 정동들은 지하로 흘러 들어가 서로 뒤섞이게 된다. 이처럼 우연성, 일탈성, 변칙성에 바탕한 감정은 정치경제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로 치환되고 전이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젠더정치는 감정의 가장무도회에 집중함으로써 젠더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1장은 젠더 무의식의 귀환과 지형도에 관한 것이다. 젠더 무의식은 타자의 억압의 흔적이다. 젠더 무의식은 다형도착적인 유아가 남자 혹은 여자로 강제적으로 분화되어야 하는 젠더 사회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억압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다성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규범과 질서에 따라,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야만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사회화되기 위해 자기 안에 있는 특정한 욕망을 억압해야 하고, 그로 인해 의식으로 부상하지 못한 잉여는 부착될 곳을 찾아서 떠돌아다닌다. 그런 현상이 특정한 젠더억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그것을 젠더 무의식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억압된 젠더 무의식은 틈만 있으면 유령처럼 출몰한다. 1장에서는 젠더 무의식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맥락과 시대에 따라 젠더 무의식이 귀환하여 가시화된 형태로서 신여성(페미니스트), 팜므 파탈, 레즈비언 뱀파이어, 귀요미, 된장녀 등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여성폭력의 회색지대를 조명하고자 한다. 모성, 보살핌, 배려, 헌신을 여성적 윤리로 설정하면서 여성에게 폭력은 없다고 주장하는 기존 페미니스트 담론은 여성이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서나마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열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폭력성은 젠더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재조건을 구성하지만, 그런 폭력이 젠더정치에 따라 재/배치됨으로써 어떻게 젠더이해관계를 달리하는가? 평화와 공존을 외치지만 폭력이 주는 치명적 유혹은 무엇인가? 폭력성은 어떻게 쾌락과 에로티즘, ‘작은 죽음’으로 연결되는가? 남성적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윤리적 폭력이 되는가? 이러한 물음과 더불어 여성적 폭력이 어떻게 신화적, 마법적인 여성적 힘/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3장은 2장에 이어 ‘여성의 폭력성’이라는 치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