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오딧세이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국제연대 코디네이터’라고 소개한다. 독특하게, 그가 ‘코디네이션’하는 ‘연대’는 21세기 지구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싸움’의 연대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년간 연대를 구하여 세계를 떠돌며 지켜본 그 ‘싸움’의 생생한 기록이다. 또한 세계화가 강요한 아수라(阿修羅)의 삶을 대다수 인민이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그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아프리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구성
1부 ‘망명자들의 세계화’는 세계화가 만들어 낸 21세기형 망명자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세계화가 진전된 오늘, 제3세계의 인민들은 가족을 남겨두고 홍콩이나 서울과 같은 초거대 메트로폴리스로 흘러 들어가 글로벌 하인들이 되었다.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대다수의 청년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하루살이 비정규직 노동뿐이다. 국가로부터 공격받는 인민들은 난민증 안에서만 형식적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산업은 있지만 노동권은 없는 세계에서 인민들은 자본과 불한당들의 흡혈에 시달리며 창백한 존재가 되어간다.
2부 ‘국가의 경계와 새로운 중세’에서는 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국가’라는 존재가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어떻게 자신의 ‘국민’을 국가의 변경으로 내몰고 방치 하는지를 보여준다.
세계화를 세상 어디든 또 무엇이든 집어삼키려는 시장의 탐욕으로만 생각한다면, 오해다. 세계화는 시장을 확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국가와 함께 시장 또한 철수해 버린다. 글로벌 도시가 점점 더 비대해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슬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도시를 에워싼다. 제3세계의 농촌들은 간단히 버려진다. 농민들은 반쯤은 유랑민, 반쯤은 도적떼가 되어간다. 국가의 바깥, 세계의 변두리가 된 이곳의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다. 국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치안은 갱단에 맡겨지고 법질서는 사형(私刑)으로 대체된다. 희망은 성모 마리아와 마오쩌둥에게 의탁되지만 절망의 크기를 넘지 못한다. 국가의 바깥에서 국가는 인민을 악마로 만들며, 세계의 변두리에서 낡은 마오주의의 구호는 사라지지 않는다.
3부 ‘공격받는 시민들’에서는 근대 국가의 기본적 의무였던 ‘국민의 보호’를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내팽개치는지 신랄하게 보여준다.
세계화는 시민의 권리를 개인의 책임과 의무로 전환했다. 마거릿 대처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사회’ 따위는 없다. 있다면 낱낱으로 흩어진 개인뿐이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건강한 시민은 사회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앞길을 헤쳐가야 한다. 교육이나 의료처럼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일컬어지던 권리들은 시민들을 나약하고 게으르게 만드는 치명적인 독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시민도 없고 더더군다나 시민의 권리 따위는 없다. 모두가 약육강식의 시장에서 알아서 살아남을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승자독식! 시장과 국가는 살아남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다. 시민보다 기업이며, 생명보다 이윤이다.
다만 싸움이 충분하지 않을 뿐이다
저자가 10여년의 세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화의 진행과 대응을 지켜본 결론은 무엇인가.
책을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묻는다. “대안이 없다는 이름으로 싸움을 포기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정규직 노조, 지식인, 낡은 좌파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안이 없음’을 이유로 물러서고 타협한다. 그러면 누가 싸우는가? 노동의 유연화에 맞선 노동자와, 물의 사유화에 맞선 빈민들과, 전쟁에 맞선 반전활동가와, 생태의 파괴에 맞선 생태활동가들과, 성 착취에 맞선 여성들과, 이성애 중심주의에 맞선 성적 소수자들과, 초국적 제약회사에 맞선 HIV 양성반응자들이다. 그들이 싸우며 만들어내는 수만 가지 상상과 가능성에 대안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립되지 말고 싸우고 있는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대안이라는 것이다.
눈을 들어 ‘세계’를 보라
저자는 책머리에 ‘배운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저곳으로,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곳 사람들이 알아듣고 깊은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전하는 것, 또 때로는 저곳과 이곳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고 이어주는 이야기꾼의 역할이 내가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21세기 세계화의 최첨단 국가 대한민국에서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유난스럽게 강한 ‘대한민국주의’라는 마취에서 깨어나 우리네 일상이 지구 저쪽 그들의 간난한 일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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