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 문학의 ‘전설’『O 이야기』완역판 첫 출간!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 수상,
《타임(Time)》지가 선정한 ‘가장 짜릿한 소설 베스트 10’
1. 에로티시즘 문학의 ‘전설’
여성작가가 여성의 시각에서 쓴 『O 이야기』는 국내에 진작에 소개되었어야 했을 에로티시즘 문학의 ‘전설(legend)’이다. 1980, 90년대에 일어판 중역이나 축약본으로 번역되었던 『O 이야기』가 정식으로 계약되어 완역되기는 처음이다. 1954년 세상에 나온 『O 이야기』는 프랑스 현대문학에 큰 충격을 주었다. 포르노그라피가 발에 채일 정도인 오늘날에도 결코 온건하게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출간 이듬해, 저자의 정체가 오리무중임에도 불구하고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한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하면서 일약 화제가 된 이 소설은 여러 지식인들로부터 극단으로 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수아 모리악은 “구토를 불러일으킨다”고 악평한 반면, 조르주 바타이유와 그레엄 그린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애초 이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 된 데엔 과격한 성애장면들도 문제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여주인공 O의 태도 자체가 큰 몫을 차지했다. 자기해체에 이를 정도로 남성의 욕망에 몰입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놓고, 당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이 거세었으리라는 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남성중심주의적인 망상의 극악무도한 경지로 지목되면서, 여성으로서의 성적 존엄성을 철저히 배반한 소설로 치부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주인공을 지칭하는 O라는 이니셜이 ‘물건(오브제objet)’이나 ‘구멍(오리피스orifice)’에 대한 암시일 수 있다는 혐의가 제기될 정도였다. 훗날 저자임을 스스로 밝힌 도미니크 오리는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더없이 간명하게 피력했다. “글쎄요… 제가 아는 건, 그 소설의 모든 것이 저 개인의 순전한 환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성중심이든 여성중심이든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아요… 그 속에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O와 같이 다루어지는 걸 견뎌낼 사람은 없지요. 모든 것이 저의 사춘기부터 존재해온 환상일 뿐입니다.”
2012년 3월 《타임》지가 존 업다이크의 『부부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등과 함께 ‘가장 짜릿한 소설 베스트 10(Top 10 Racy Novels)’으로 선정한 작품이기도 한 『O 이야기』는 영역본으로만 이미 3백만 부 판매를 넘어섰다. 따라서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힌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번역을 맡은 시인이자 번역가인 성귀수(51) 씨는 “엉터리 축약본, 정체불명의 저질 해적판이 아닌, 정식으로 이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 4년 전부터 이 책의 출간을 여러 출판사에 타진했지만 에로티시즘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과감히 접을 줄 아는 출판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결국 자의반 타의반 보류하고 있던 차에 문학세계사에서 연락이 왔고, “진작에 소개되고 읽혔어야 했을 ‘전설(legend)’이 이제야 이렇게 제 모습을 갖춰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에로티시즘 문학의 고전인 『O 이야기』 출간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2. “『O 이야기』는 아마도 남자로서 받아볼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연애편지일지도 모릅니다.” ――장 폴랑
“폴린 레아주는 매우 복잡한 가면이다. 폴린 레아주는 도미니크 오리의 필명인데, 도미니크 오리는 또 안 데클로스의 필명이다. 데클로스는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번역가로 1954년 『O 이야기』를 출간하면서 역사상 여성작가의 입장에서 가장 치밀하게 그린 포르노그래피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레아주’란 특별히 『O 이야기』를 위해서 지은 필명으로, 작가는 애인인 장 폴랑이 여자는 에로소설을 쓸 수 없다고 말하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 소설은 아마 애인들 사이의 말다툼이 낳은 가장 철저하고 도전적인 반격일 것이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중에서
흔히 현대 에로티시즘 문학의 걸작이라 불리는 이 소설을 막상 저자 자신은 연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로 애당초 규정했었다. 프랑스 굴지의 문예지 《누벨 르뷔 프랑세즈》의 사장 비서이자 작가이기도 한 도미니크 오리(Dominique Aury, 이 또한 필명이며 본명은 안 데클로스 Anne Desclos)는 당대 문단의 거장인, 사장 장 폴랑에 대한 절절한 연모의 정을 한 편의 지독한 소설로 빚어낸 셈이다. 당시 이미 60대 나이에 접어든 기혼자 장 폴랑과 30대 미혼이었던 오리의 관계는 장 폴랑이 숨을 거두는 1968년까지 위태위태하게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름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폴린 레아주), 워낙 저자 자신이 철저한 침묵을 견지했기에, 장 폴랑을 포함해 그 누구도 설마 이 고전적 외모의 엘리트 여성이 웬만한 남성도 혀를 내두를 소설의 저자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적어도 지식인층에 속한 특정 남성작가의 솜씨일 거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심지어 장 폴랑 본인이 저자일지 모른다는 억측에서부터 레이몽 크노나 앙드레 말로, 앙리 드 몽테를랑 같은 저명인사가 숨은 주인공으로 의심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어언 40여 해, 1994년 여든여섯 살 할머니가 되고서야 공식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 저자의 변이 솔직한 만큼 가슴 찡하다. “(그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당시 나는 젊지도 않았고, 예쁘지도 않았답니다. 그래서 다른 무기를 찾아야 했어요. 육체가 전부는 아니었으니까요. 무기는 정신 속에도 존재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 이 소설은 연인을 향해 쓸 수 있는 가장 절절한 연애편지일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일개 에로틱한 내용의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는 정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예컨대, 이 책 속에 난무하는 사도-마조히즘적 담론들은 단순히 성적 쾌락의 수행으로 읽히기보다는 어떤 극한의 추구, 절대를 향한 자아의 완전한 헌정(獻呈) 의지로 해석된다. 마치 노예처럼, 용해되는 원소처럼 연인이라는 존재에, 사랑 자체에 완전히 속해버리고자 하는 작가의, 아니 O의 연애편지…
3. 이 소설의 대부분 묘사는 완곡어법의 수사적 장치
이 소설의 문체와 절제된 문장은, 특히 O가 고문과 모욕에 굴복한 후 홀로 생각에 잠기는 부분에서 레아주가 보여준 절제는 상당히 훌륭하다. 언어와 심리적 만족 사이의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효과를 낳았다. 만약 작가가 O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격렬함에 맞먹는 언어를 사용했다면, 아마도 조각조각 흐트러진 비명소리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절제된 문장과 차분한 진행, 그리고 타락한 성적 에피소드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속도 조절 덕분에 O는 또 다른 가면?이번에는 올빼미?뒤로 사라지게 된다. 『O 이야기』는 충격적인 한편, 훌륭하리만치 지루한 소설이기도 하다. 고통의 깊은 성적 환희는 지겨움의 공포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역자인 성귀수 씨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에 대한 사춘기적 기대만으로 이 책을 들춰보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우려한다. 성 해방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기 훨씬 전인 1954년 작품인 만큼 구체적인 성애묘사가 오늘날에도 모두에게 자극적인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실제로 대부분 묘사가 완곡어법(euphemism)이라는 수사적 장치에 기대 있다. “번역을 하면서, 이 작품에 내재하는 치열한 메시지와 섬세한 미학이 그처럼 에두른 표현들에 의해 혹시라도 희석될까 많은 걱정과 노력을 쏟아야 했다.”고 한다.
첫 판 프롤로그를 썼던 장 폴랑은 이야기 속에 내재하는 위험요소를 거론하면서 이 소설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왜 위험하다고 말하는가? 적어도 경솔한 표현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