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진짜 중국은 민중의 일상 속에 있다 중국 최고의 지성 쑨 거의 첫 에세이집 격변하는 전환기를 살아가는 중국 민중을 재발견하다 문화대혁명(문혁) 50주년과 1차 톈안먼사건 40주년을 맞아, 중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쑨 거(孫歌)의 첫 에세이집 『중국의 체온: 중국 민중은 어떻게 살아가는가(北京便り)』가 출간됐다. 사상사 연구자인 쑨 거가 기존의 무거운 글쓰기 대신 에세이를 택한 이유는 “진짜 중국인을 그려내고 싶어서”다. 냉전구조가 붕괴된 이후에도 중국을 인식하는 태도는 냉전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동아시아 각국의 언론이 그려내는 중국 이미지도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진정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쑨 거는 지식인의 머릿속에만 있는 중국 담론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서구가 걸어온 근대화의 틀 그대로 중국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비판한다. 직접 경험한 서민의 일상생활을 담담히 그려낼 뿐이다. 이 책 속 스물다섯편의 이야기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조화를 이루며 ‘오늘날 중국 민중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가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는 기성관념과 투쟁하며 얻어낸 반짝이는 통찰력의 산물 그 자체다. 문혁을 돌아보고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국내외에서 활발한 이때 『중국의 체온』은 우리 중국관의 틈새를 메워준다. 『중국의 체온』은 일본 잡지 『토쇼(圖書)』에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격월로 연재된 글을 한데 묶은 책이다. 중·일 지식공동체 회의를 이끌며 중국 지식인으로는 드물게 동아시아를 지적 화두로 삼고 있는 저자가 직접 중국·일본·대만 등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문화대혁명 50년, 민중은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극복하는가 이 책에는 유년 시절 둥베이(東北) 지방으로 하방(下放)당한 쑨 거 자신의 체험이 곳곳에 묻어 있다. 그는 ‘문혁 시기의 노동자는 스스로 국가의 주인공이라는 이념 때문에 헌신했다’라는 보수적인 기존 입장을 거부(3장 <24시티>와 노동자의 존엄)하면서 문혁의 고통을 인정한다. 하지만 문혁을 고통뿐이었다고 말하는 데에도 반대한다. 문혁은 곧 고통이라는 생각은, ‘미디어가 주조해놓은 중국 이미지’일 뿐이다. 문혁의 양면성을 설명하기 위해 쑨 거는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바로 새해 둥베이지방에서 만들어 먹던 ‘팥떡’이다(18장 중국인의 식생활). 노년이 된 저자는 하방 시기에 맛본 둥베이의 전통 팥떡을 찾아다니다가 하나의 깨달음과 마주한다. 문혁의 고통과 문혁의 추억은 결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얼굴이라는 것이다. 함께 하방됐던 친구들과 다시 하방 당시의 마을을 찾아가는 장면(15장 귀향)은 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쑨 거는 문혁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나눈 정열을 떠올리며 그 안에서 일종의 순수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기의 청춘시대를 단련한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인정한다. 이 외에도 문혁 시기 ‘유능한 농부’가 되지 못했을 때 느낀 좌절(4장 농민의 얼굴)이나, 하방됐던 빈곤한 농촌으로 돌아가 ‘유기농업 관광’을 출시한 농민의 이야기(7장 작은 당나귀 시민공원)는 문혁이 중국인에게 어떤 기억이었는지, 그리고 중국의 민중은 이 기억을 딛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접하던 문혁 이야기에서는 찾기 힘든 생생하고 진솔한 증언이다. 제도와 정치를 넘어서는 ‘서민의 역동성’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서민의 역동성은 빛이 난다. 쑨 거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맹목적인 소비문화를 거부하고, 전통과 조화를 꾀하는 중국인의 모습이다. 산채(山寨)문화, 즉 일종의 모조품 문화가 대표적인 예다(2장 산채문화). 단종된 자신의 휴대폰 배터리를 ‘산채판’으로 바꾸면서 시장경제 이후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빠른 제품 변화’에 저항하는 서민의 생활양식을 읽어내는 장면은 흥미롭다. 아무리 새로운 제품이 나오더라도 기존의 제품을 쓰는 문화가 자본주의의 속도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가 될 수 있음을 포착한다. 중국과 대만의 민감한 관계를 풀어내는 키워드도 서민이다. 양안(兩岸)의 역사와 정치적 쟁점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섬 진먼(金門)에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니 양국 간의 긴장을 어렵잖게 실감할 수 있다(12장 진먼 이야기). 전쟁 시기 군사요새였던 이 섬에서 ‘사람들이 하는 욕’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읽어내고, ‘포탄으로 만든 칼’ ‘군사 건조물이 굴 채취 도구가 되는 모습’ 등을 통해 평화란 무엇인지 스케치한다. 대만 곳곳에서 만난 시민운동가들이 외치는 ‘불통불독, 불람불록(不統不獨 不藍不綠, 통일도 독립도 아니고 국민당도 민진당도 아니다)’이라는 구호를 통해, 민족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가 따르는 제3의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6장 직항편으로 대만에 가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TV드라마가 일본인을 그려내는 방식을 보며(19장 TV드라마에서 ‘중·일’) 중국 내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일본인 이미지를 포착하고, 댜오위다오-센까꾸열도 문제로 격렬한 반일 시위가 일었을 때 중국과 일본을 오간 경험을 풀어내며(23장 우리 민중의 ‘불혹’) 국가 간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간의 유대에 감동받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정치나 제도의 바깥에서 꾸준히 움직이는 서민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쑨 거는 중국에서 생겨나는 질서의식과 시민의식(8장 서민의 ‘계약정신’), 위기 상황에서 보인 상호부조(22장 베이징은 큰비), 중국에 새로 등장한 독특한 시위 방식인 ‘산보’(9장 산보원년), 여성운동 ‘평화부녀’(16장 평화부녀의 목소리) 등을 통해 이 역동성을 포착해냈다. “중국의 체온을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 지금 한국인에게 중국인은 유커(遊客, 중국인 관광객)로 대표된다. ‘한국에서 많은 돈을 쓰고 가는 고마운 관광객’이자 ‘질서도 예의도 없는 미개인’인 중국인을 언론을 통해 접하며 양가감정을 느낀다. 직접 소통의 부족은 ‘진짜 중국인’이 누구인지 사유할 기회를 빼앗는다. 현실의 중국인은 세계대전과 내전, 문화대혁명 같은 폭력을 온 몸으로 견뎌냈으면서도 그때의 역사기억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폭력을 견뎌내며 지키고자 한 것은 ‘국가’도 ‘이념’도 아닌 일상생활이다. 쑨 거는 이 투쟁과 적응 과정에서 “민중의 존엄”을 본다. “중국 역사는 왕조 교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왕조의 몰락으로 중국이 망한 적은 한번도 없다. 평범한 생활인인 중국 민중이 늘 자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쑨 거가 발견한 민중의 존엄은 때로는 할머니 행상의 모습으로, 때로는 운동가의 투쟁으로 그려진다. 그 다양한 모습 각각이 ‘중국’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은 어디인지’를 물어가며, ‘중국의 체온’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욱 커져가는 중국의 존재를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한국인에게도, 진짜 중국인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