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전쟁을 좋아했더란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 제국은 대체 왜 몰락했는가?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에 이르는 길은
독일 제국의 역사이며 동시에 그 몰락의 역사이다.”
독일 국민작가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79세에 발표한 역작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가 출간되었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어느 독일인 이야기』와 함께 하프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독일 제국의 건설부터 2차 대전 패전까지 ‘독일 제국 몰락의 역사’를 복기한다. 복잡다단한 역사를 거시적으로 읽어내는 데 탁월했던 하프너는 독일 제국이 넉넉잡아도 고작 81년간 존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독자들을 새로운 생각의 프레임으로 끌어들인다.
하프너에 따르면 독일 제국은 곧 ‘전쟁제국’이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연이어 벌인 전쟁으로 탄생했고, 두 번의 무시무시한 세계대전으로 파멸했으니, 전체 역사가 전쟁으로 얼룩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찬란한 정신 유산을 낳은 민족의 나라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에 몰두했다는 역설! 하프너는 통탄하듯이 묻는다. “이 모든 게 대체 무엇 때문인가 자문하게 된다. 도이치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전쟁을 좋아했더란 말인가?” 그리고 곧바로 이렇게 대답한다.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하프너는 그 전까지는 독일인들이 전쟁을 많이 하지 않았을뿐더러 전쟁을 도발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유럽의 중앙에 자리 잡은 이 나라가 1,000년 넘게 ‘거대한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외부의 침략을 받을지언정 공격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그들이 20세기에 이르러 두 번이나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끝에 자멸하다니, 대체 왜 그런 참극이 벌어진 것일까? 하프너는 책 전반에 걸쳐 그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이처럼 이 책은 독일 현대사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의문 “도대체 왜?”에 대한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대답을 들려준다. 노작가의 작별 인사라고 해도 무방할 말년의 결실이지만, 하프너 특유의 촌철살인과 명징함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시간적·공간적 거리로 인해 우리로선 더욱 이해하기 힘든 독일 근현대사를 조감하기에 이보다 나은 책은 흔치 않을 것이다.
책의 특징
■ ‘전쟁제국’의 탄생-완충지대에서 화약고로
거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역사와 세계를 거시적으로 읽어내고 압축하는 데 탁월했던 하프너는 독일 제국 건설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독일 제국의 팽창과 몰락’의 비밀을 파헤친다. 하프너에 따르면, 제국의 건설자인 비스마르크는 결코 ‘전쟁제국’을 의도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가 바란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제국이 아니라, 그저 ‘작은 도이칠란트’였다. 즉,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로 인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라는 두 강대국을 위시해 수많은 왕국과 작은 국가와 자유도시들로 분열된 상황에서, ‘골치 아픈 다민족국가 오스트리아’마저 배제하고 독일 민족만의 작은 통일 국가를 세우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애초 계획이었고, 실제로 결과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스마르크의 의도와 달리 독일 제국은 건설 당시부터 전쟁제국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고 또한 하프너는 분석한다.
제국이 거의 처음부터 스스로의 파괴를 추구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바로 이 역사에서 무시무시한 요소다. 점점 커지면서 점점 더 예측할 수 없게 되는 제국의 권력 행사와 더불어, 제국은 스스로 적들을 창조했다. 제국은 이 적들에 부딪쳐 부서졌고, 적들 사이에서 둘로 나뉘었다.
_19~20쪽(들어가는 말)
하프너는 그 원인을 우선은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찾는다. 독일 제국은 처음부터 다른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채, 마치 적들에게 꼼짝없이 포위당한 듯한 형국으로 탄생한다.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영국, 남쪽과 남동쪽에는 아직 강대국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쪽에는 강력한 러시아가 버티고 있었다. 어디로도 진출할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도이치 제국은 이제야 비로소 큰 나라가 되었고, 당연히 더 커져야겠다는 큰 나라의 본능도 함께 생겨났다. 이 본능은 말하자면 강대국으로 자라나는 요람 안에 이미 들어 있었던 셈이다.”(본문 18쪽)
게다가 독일 제국은 그들 자신에게는 ‘작은 도이칠란트’였지만, 주변 강대국들에게는 거대한 위협이었다. 주변 국가들은 자신들이 독일 제국보다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합을 맺고 동맹을 찾으려고 애썼다. 실제로 독일 제국은 “유럽의 다른 어떤 강대국보다 군사적으로는 아마도 더욱 강력했다. 하지만 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그 어떤 연합보다도 당연히 더 약했다.” 그리하여 이 신생 제국에게 연합은 늘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은 연합의 탄생을 방해하기 위해, 적들의 동맹에서 한 나라라도 떼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 당시에는 전쟁이 “궁극적 이성(理性)의 일, 곧 가장 진지한 최종 정책 수단”이었기에, 오랫동안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이 땅이 화약고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 화약고에 불을 당긴 민족주의
독일 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나, 전쟁도 불사하는 제국주의의 속성 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민족주의다. 물론 민족주의는 어느 날 별안간 생겨나지 않았다. 하프너는 초기 민족주의 운동에 이미 뒷날 나치즘의 전조가 되는 울림들이 담겨 있었다고 말한다. 끔찍한 자만심과 자기 숭배, 독일 민족이 현실적이고 참된 유럽 최고 민족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뿌리내린 것이었다. 예컨대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1811)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끔찍한 미움을 담아 일찍이 이렇게 일갈했다. “놈들을 때려죽여라! 세계 법정은 너희에게 그 원인을 묻지 않으리.”(본문 27~28쪽)
그리고 1890년, 비스마르크가 퇴임하고 빌헬름 2세 황제 시대가 시작되면서 독일인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민족주의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비스마르크가 물러난 다음에 일종의 ‘대국(大國) 감정’ 같은 것이 생겨났다. 빌헬름 황제 시대에 매우 많은 도이치 사람들이, 그것도 가능한 모든 계층 출신 사람들이 갑자기 원대한 민족적 전망, 민족적 목적을 눈앞에 그렸다. “우리는 세계적 강대국이 된다, 우리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도이칠란트가 전 세계의 앞장에 선다!”는 전망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애국심은 이전과는 다른 성격이 되었다. 이 시기 도이치 사람들을 고무한 ‘민족주의’는 이제 스스로 아주 특별한 존재, 미래의 강대국이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식이었다.
_90쪽(황제 시대)
독일 제국은 민족주의를 동력 삼아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승전보만 들려오던 1차 대전에서 패하자 대중들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낭설이 퍼진다. 즉 1차 대전 패배는 전방에서의 군사적인 패배가 아니라 후방에서 평화주의 캠페인을 통해 군의 사기를 떨어뜨려서 나온 것이라는 전설, 이른바 ‘배후에서 단도 휘두르기’ 전설이 창궐한 것이다. 이 낭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인물 중에는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1차 대전 패전과 그로 인한 독일 혁명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출범이라는 혼란 속에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도이치 제국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다는 것, 그 마지막 가장 성큼성큼 걷던 시대에 오스트리아 사람이[=히틀러] 총리로 재임했다는 것, 이 마지막 제국총리가 비스마르크의 작은 도이칠란트를 곧바로 큰 도이칠란트로 만들고, 이 큰 도이칠란트는 곧바로 비스마르크가 철저히 반대한 공격적인 확장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비스마르크의 작은 도이칠란트에서는 한 번도, 심지어 1870년에도 맛보지 못한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잘 생각해본다면―거의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비스마르크의 최고 승리가 자신의 실패의 뿌리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도이치 제국의 건설은 이미 그 붕괴의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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