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죽음으로 그린 사랑의 홀로그램
부서진 존재를 깨우는 빛의 의지
202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시산문집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를 비롯 『사랑과 탄생』, 『산책채집』을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사랑에 관한 단상과 사유를 내밀하게 전해온 시인 이유운의 첫 번째 시집 『유리유화』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는 4부 구성으로 총 44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삶의 매듭을 풀었다 묶었다를 반복하며, 자신의 존재적 근원을 찾아 떠나가는 이번 시집에는 신화적이면서도 소문처럼 무성하기만 했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데려와 새로이 구축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주 초대되는 ‘빛’에 관한 탐구는 화자의 의지로서, 세계와의 접촉으로서 발현되며 시를 읽어가는 주요한 주춧돌이 되기도 한다.
1부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이나 이웃의 자리를 뒤바꾸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이야기한다. 서로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일, 기르거나 보살피는 일과 같이 존재가 서로에 기대어 있을 때를 반추하며 나타나는 시의 새로운 배경들이기도 하다. ‘나’의 형상을 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낳은 아이가 되는 대상을 길러내고, 자라나는 환경 자체를 풍경으로 비추어 보기도 한다. “아이의 얼굴에 처음으로 여자의 이목구비가 떠오를 때, 표정이 모두 사라”(「상실의 집에서 자라는 여자아이의 얼굴은」)지는 순간, 시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한 ‘집’이라는 삶의 근원적 터전을 뒤흔드는 이야기의 각색을 통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이상적 세계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삶을 뒤흔들어보는 이야기의 방식으로 살아감에 새로운 의지를 재구성해나간다. “나 아름다운 집에 살고 싶어/ 빛이 살결처럼 흐르는”(「하지의 설계도」)이라고 말하며 구체적으로 ‘빛’을 경유해 삶과 죽음의 변죽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2부는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열린 시인의 세계이자 믿음과 의심, 신앙적으로 응시하며 탄생과 죽음을 극대화한다. “언제든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 함부로 사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고”(「도끼날과 혼동되는 유리잔」) 한 통로 속에서 드리워 있는 탄생과 죽음의 연결부를 잠, 순례, 소문과 같은 내러티브로 구성하며 새로 구축한 세계에 마침내 도착하게 된다.
탄생에 대한 빛의 종언
죽음에 관한 빛의 연장술
3, 4부에서는 세계에 대한 애도와 사랑의 대상이 좀 더 명확해진다. 그리고 ‘꿈’이라는 매체 속에서 상실과 죽음을 잇고 연결하는 모습도 읽어낼 수 있다. 소멸될 수밖에 없는 존재의 유한함을 꿈의 무한함으로 옮겨와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에 발언권을 주듯이, 시인은 그 경계를 오가며 중계자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탄생과 죽음을 혼동시켜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낡은 질서를 처치하고 새로운 사랑에 숨을 불어넣는다. 1, 2부에서 ‘빛’의 문법으로 세계를 거슬러 올라갔다면 3, 4부에서는 사랑의 연원을 헤집으며 사랑의 주체로서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된다. ‘유리유화’처럼 어떤 특정한 속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가변적 윤곽을 지니는 이야기들 끝에서 “나는 내가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다”(「나무상자 깊숙이」)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몸’이 된다. “나에게 짐승이란 내가 되고 싶은”(「유리유화」) 일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빛의 문법으로 새롭게 지은 세계에서 처음 한 일일지도 모른다. ‘태어남’의 역설은 대상을 더욱 흐릿한 존재로 만들면서도 바로 그 주체의 ‘사라짐’을 새로운 탄생으로 명명함으로써 삶과 죽음이 마치 하나의 줄로 팽팽히 연결되는 긴장감을 통해 세계 속 거대한 비의를 획득한다.
시인은 탄생 자체를 종언하듯 살아온 시간에 벌어진 틈새 같은 상처를 아프게 읽어내면서도, 동시에 그 틈으로 빛을 투과시키며 새로운 홀로그램 형체의 세계를 빚는다. 그곳에서는 죽음을 죽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살아가야 할 시간으로 환원한다. 사랑과 애도의 형태로 죽음을 연장시키는 이 빛의 의지가 우리 마음에 닿았을 때 어떤 풍경을 출력하게 될지, 우리는 이 이야기를 붙들고 『유리유화』의 풍경을 헤매도 좋을 것이다.
발문을 쓴 전영규 평론가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당신의 문장에서, 사랑하는 대상과 당신 사이의 미묘한 거리 두기를 감지”한다고 이야기한다. 무수한 사랑 속에서 일정한 거리를 남기며 “사랑이라는 잔상을 남기는 신비한 현상”을 시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들에 집중하며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당신은 나의 기대에 부응해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태도라는 것을 주목한다.
시인은 오랫동안 점유하고 있었던 존재와 감정의 자리를 뒤바꾼다. 그 혼돈을 스스로 야기하는 반투명 상태의 사랑을 통해 새롭게 믿고 싶은 것을 의심한다. ‘나’의 죽음과 애도를 통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빛의 문법으로 시인은 다시 반듯하고 가지런한 사랑을 향해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