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13초,
지구는 이대로
종말을 맞을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최초의
본격 SF 미스터리
“세계가 바뀌면 선악도 바뀐다. 살인이 선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그러한 이야기다.”
- 히가시노 게이고
오늘의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번에는 본격 SF 미스터리에 도전한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가 발간하는 잡지 『선데이 마이니치』에 연재되어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이 화제의 작품은, 이공계 출신답게 이미『용의자 X의 헌신』등을 통해 그 과학적 추론과 논리로서 미스터리 소설의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작가가 블랙홀과 초끈 이론, 병행 우주 등 첨단 현대 물리학 이론에 문학적 상상력을 접목해 거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한 서사로 한 편의 SF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울러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이 직면하게 되는 선택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가 믿는 ‘정의’와 ‘선악’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때부터 13초간이 지구로서는 운명의 시간입니다.”
JAXA, 즉 일본 우주 항공 개발 기구는 오쓰키 총리에게 긴급 면담을 요청해, 지구 전체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에너지파가 지구를 덮치고, 그 결과 시공간의 뒤틀림에 의해 13초간의 시간 공백이 발생하는 이른바 ‘P-13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정부는 사회 혼란을 우려해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한편, 범인 체포 작전에 나섰던 경시청 관리관 구가 세이야는 동생이자 관할 서 말단 형사인 후유키의 의욕이 앞선 무모한 행동 때문에 범인으로부터 총격을 당해 쓰러지고, 후유키 역시 범인의 총에 맞아 정신을 잃는다.
잠시 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유키는 주변을 둘러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범인들은 오간 데 없고 주변 거리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질주하며 충돌하는 차량들, 불타는 건물들……. 더 놀라운 것은 달리는 차량에도 그 어디에도 사람이라고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지구는 이대로 종말을 맞을 것인가?
후유키는 ‘다른 인간’을 찾아 폐허가 되어 버린 도쿄 거리를 헤맨다. 주인 잃은 자전거를 타고 도쿄 타워에 도착한 그는 다행히 그때까지는 작동하고 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꼭대기에 오른다. 거기서 바라본 도쿄는 마치 원자폭탄이라도 맞은 듯 처참한 광경이었다. 거리는 화염에 휩싸여 있고, 고속도로에는 파괴된 자동차과 추락한 항공기가 나뒹군다.
마치 세상의 종말과 같은 묵시론적 풍경 속에 홀로 남겨진 후유키는 절망감에 미친 듯이 울부짖지만, 곧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망용 망원경을 통해 거리를 구석구석 살피고, 마침내 사람으로 보이는 작은 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달려간 그는 마침내 모녀를 찾아내고, 이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생존자’를 찾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라디오 방송의 안내대로 도쿄 역으로 간 후유키는 그곳에서 놀랍게도 형 세이야와 재회하고, 형 외에도 몇 명의 생존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지진이 그들을 엄습한다. 13명의 생존자는 안전한 곳을 찾아 아파트와 호텔, 체육관 등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지만, 계속해서 밀어닥치는 지진과 홍수 등의 엄청난 자연재해는 시시각각 그들의 숨통을 조여 온다. 생존자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들만 남아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점점 절망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마치 왕따 당하는 기분이야. 이래도 버틸래? 이래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곤란한 상황으로 떼밀고 있는 것 같아.”
아스카가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후유키는 그 말을 단순한 푸념으로 듣고 말았지만 고미네는 뭔가 깨달은 듯한 얼굴로 아스카를 보며 말했다.
“그거 의외로 정확한 분석일지도 몰라.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이 세계를 파멸로 이끌려 하는 건지도. 인간이 만든 도시라는 추악한 존재를 세상에서 없애버리려고 하는 느낌이야.”
(본문 중에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정의란 무엇인가
생존자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가치’와 ‘정의’에 관한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개인과 집단의 이해가 충돌하고 서로의 가치관이 차이를 보이면서 내부적인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 중역이었던 도다 마사카쓰는 예전에 자신이 누리던 지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공동 작업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젊은이들과 충돌한다. 노인인 야마니시 시게오는 아내가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후 회생할 가능성이 없자 안락사를 제안하고, 이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야쿠자 가와세를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로 의견이 엇갈리는가 하면 한 여자 생존자를 강간하려 한 회사원 고미네의 파렴치한 행위를 둘러싸고 남녀 간에 갈등이 벌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계가 바뀌면 선악의 기준이 바뀐다는 것.” 즉, 살인이 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 이들 생존자에게 도덕적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서바이벌’, 더 나아가 인류의 존속이다. 이 기준에 따라 기존의 모든 도덕과 윤리적 가치는 재정립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개인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할 권리도 없다. 집단 전체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노동력의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생존자 집단의 리더로 매사에 이성적이고 강인하지만 냉혹한 성격의 형 세이야와, 감성적이고 우유부단하지만 인간적인 동생 후유키, 이 두 사람의 캐릭터를 대비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가치와 정의의 문제를 서로 상반된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세이야는 편의점 CC TV에 녹화된 장면을 통해 3월 13일 13시 13분 13초에 사람들이 일시에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그는 그날 범인 체포 작전 도중 상부로부터 13시 13분 전후로는 위험한 행동을 삼가라는 지시를 받았던 것을 기억해 낸다. 그 순간 “뭔가 있다”고 직감한 세이야는 자신이 근무하던 경시청 본부를 찾아가고, 수사 과장 책상에서 『P-13 현상에 대한 대응책』 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견한다. 작전 당일 상부로부터 받은 지시가 바로 이 문서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된 세이야는 문서 내용을 살펴보다가 ‘당일 해당 시간에 총리 관저에 P-13 현상 대책 본부가 설치될 예정’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총리 관저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 낸 책자에서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된다.
시종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연상시키는 묵시론적 잿빛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소설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덕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존의 보편적인 도덕률은 완전히 빛을 잃고 마는 것인가,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고 해도 생존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것이 정당한가, 그리고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존엄성은 무시돼도 좋은 것인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통해 해답을 찾으려고 시도하면서 한 편의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를 엮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