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공포,
그림으로 되살아나다
악몽, 질병, 필멸, 폐허, 괴물, 유령, 마법…
150여 점의 예술작품으로 살펴보는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
끔찍한 악몽, 피할 수 없는 죽음, 적막한 폐허
으스스한 유령, 신비로운 마법, 흉측한 괴물…
한 번 보면 무섭고, 두 번 보면 빠져드는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의 갤러리
『오컬트 미술』을 통해 독자들에게 신비하고 기묘한 예술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는 S. 엘리자베스가 이번에는 어둡고 기괴한 예술작품들을 모아 『어둠의 미술』로 돌아왔다. 총 4부로 나뉘며 순서대로 ‘악몽과 정신 착란’, ‘고통과 죽음’, ‘야생과 자연’, ‘괴물과 마녀’를 큰 주제로 삼는다. 저자는 각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명화 150여 점을 엄선하고, 그림을 그린 화가와 그림의 배경, 눈여겨볼 만한 지점을 짚어 설명한다. 수록된 그림을 통해 독자는 오랜 세월 예술가들을 사로잡았던 ‘어둠’의 본질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으며, 이를 스스로에게 투영해 새로운 ‘어둠’을 창조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단지 공포를 위한 공포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유혹적이면서도 소름 끼치는 그림들에 다가가다 물러서다 하면서 우리 내면의 악마와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두려움에 푹 젖어 있는 나의 반쪽을 발견하는 데 있다.
뭉크의 〈불안〉(1894)이라는 그림을 살펴보자.
한눈에 보아도 왠지 모르게 섬뜩하고 기이한 인상을 풍기는 이 그림에는 어떤 어둠이 담겨 있을까? 뭉크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사실 뭉크는 아주 불행한 청년기를 보냈다. 가장 가까운 누이와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했고, 또 다른 누이는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뭉크 본인도 고열과 기관지염에 자주 시달렸다. 훗날 뭉크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폐결핵과 정신 이상이라는 유산이다.” 이러한 불안 요소들이 뭉크의 초기 작품에 스며들었고, 뭉크는 이 주제를 죽을 때까지 거듭 탐색했다. 〈절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 그림은 이유 모를 공포의 절망감,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섬뜩한 얼굴들이 내뿜는 미묘한 편집증, 불편함, 불신의 느낌을 보여준다. 이는 〈절규〉의 고립된 개인이 경험하는 날카로운 고뇌보다 더 길게 지속하는 집단적 절망의 표현이다. 이들 작품은 아직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며 오늘날의 관람객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삶의 어느 시점에선가 이러한 괴로운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당신이라면 이 감정을 어떻게 표출하겠는가? 이 그림에서 당신은 무엇이 느껴지는가?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선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모든 어둠이 사라진다면 지상은 어떤 모습이겠는가?”
공존할 때에야 비로소 가치 있는 선과 악
그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그림들
“인간 조간의 이 어두운 측면을 파헤치는 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골치 아프지만 꼭 필요한 단계이다. 인간의 나약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불행하게도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감사하기 위해서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끔찍한 우리 마음의 모든 측면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본문 65쪽) 삶은 24시간 365일 아름답지 않다. 고통의 순간도, 좌절의 순간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는 밝고 화사한 그림을 보며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 오히려 어둡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드러나는 그림을 보며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또한 나와 비슷한 길을 갔음을, 그리고 그림을 통해 구원을 얻었음을 깨달으며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페이지를 뒤적이다 왠지 모르게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을 만나면, 가만히 멈춰서 그저 바라보라. 이 그림은 당신에게 즉각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몸서리쳐지는 공포를 선사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즐기고 바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도 좋고, 조금 더 머물러 그림의 배경과 화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좋다. 그 그림은 어떤 식으로는 당신의 뇌리에 남아 어둠의 근원을 탐구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