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는 반드시 죽은 자의 기억을 늘 새롭게 하고, 죽은 자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죽은 자를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그라진 생명을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산 자의 당연한 의무여야만 한다.”
《풀꽃》은 1954년에 출간된 전후파 작가 후쿠나가 다케히코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후쿠나가가 폐결핵 치료를 위해 7년 가까이 지낸 요양원에서 집필한 원고를 재구성하고 내용을 덧붙여 출간한 것으로, 후쿠나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지만, 삼십 대에 접어든 저자가 열여덟 살 때와 스물네 살 때의 자신을 회상하며 쓴 글로, 작중 인물들에게는 그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실제 인물이 존재한다. 주인공 시오미 시게시에는 저자 자신을 비롯해 요양원 동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고, 후지키 시노부의 실제 모델은 저자와 같은 궁술부 부원이었던 ‘기지마 나리노부’라는 고등학교 후배이다. 후쿠나가는 이미 고등학교 때 기지마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단편과 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의 동료의 회상에 따르면, 후쿠나가의 일방적인 사랑은 작품 속 시오미의 모습보다 훨씬 더 격정적이었고, 후지키의 고뇌와 곤혹스러움 또한 작품에 그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었다고 한다. 또한 지에코에는 기지마의 여동생뿐만 아니라, 투병 중 헤어진 첫 번째 아내이자 문학적 동지인 야마시타 스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죽은 자를 이 세상에 붙잡아두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표현하고 정착시켜 그 모습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다. …… 죽은 자에 대해 쓰는 것은 산 자의 의무이다.”
사소설에 부정적이었던 후쿠나가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풀꽃 같은 삶들을 기억하고 이 세상에 붙잡아두기 위한 의무로서의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전쟁, 가난, 병으로 고독하게 청춘을 겪어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그들 하나하나의 삶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청춘인 것이다. 희망 가득한 화려한 날들을 보내는 청년들에 비하면 그들의 청춘은 불행하고 일그러졌을지 몰라도, 그래도 그 역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살아남아 과거를 돌아본다면, 비록 잃어버린 청춘이라도 그 하나하나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란 늘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투병 중에도 필사적으로 써낸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풀꽃》은 출간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독자들의 손에 의해, 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지금은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청춘이란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기에 지금까지도 이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후쿠나가는 죽은 자는 산 자의 기억 속에 늘 함께 살고 있다고, 그리고 산 자의 죽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죽음을 맞는다고 했다.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또 자신의 이야기를 쓴 후쿠나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를 읽는 이들이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산 자의 마음속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