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우리에게도 친숙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화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이며 의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위생학, 생물학, 의학의 역사를 크게 바꾼 명실공히 프랑스의 국가대표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파스퇴르가 미생물의 존재를 실험실에서 밝혀낸 일과 그 일이 실험실 밖에서 프랑스 사회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을 연구한 것이다. 미생물의 존재에 대한 실험실 속 확인이 프랑스의 공공 위생 체계, 의료 체계, 질병 관리 체계 등을 바꾸어가는 과정을 상세히 파헤쳤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위생학자, 공무원, 정치인을 포괄하는 위생주의자와 의사 집단 내부의 군의(軍醫), 내과의, 외과의의 입장이 모두 달랐으나 결국 파스퇴르주의(Pasteurism)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과정과 결과가 바로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다. 저자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유명한 행위자-연결망(actor-network) 개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실험실, 실험 도구, 미생물, 과학자, 공무원, 정치인, 의사, 일반 국민 등이 함께 참여하는 행위자-연결망 속에서 백신 개발을 포함하는 박테리아학이 등장했으며, 이것이 결국 실험실 밖의 프랑스 사회를 크게 바꾸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파스퇴르 개인의 영웅적 천재성으로 실험실 안에서 과학이 바뀌었고, 그렇게 바뀐 과학을 기초로 사회도 바뀌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는 이러한 ‘여러 행위자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미생물’과 ‘비환원’ 이 책의 프랑스어 원서는 원래 별개의 책이었던 『미생물: 전쟁과 평화』와 『비환원: 과학-정치학 논고』를 1984년에 하나로 합쳐 출간한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어 원서의 제목도 『『미생물: 전쟁과 평화』, 이어서 『『비환원』』으로 원래의 책 제목들을 합친 형태다. 그러다가 1988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이때 영어판 제목이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로 보다 대중적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한국어판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어판의 제목을 따랐다. 그럼에도 원래의 두 책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어 『미생물』은 이 책의 제1부를 이루며 『비환원』은 제2부를 구성한다. 제1부 ‘미생물의 전쟁과 평화’는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될 때부터 독자들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제1부는 미생물과 백신에 대해 다루는데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근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비약적으로 늘어났는지라 앞으로도 지속적인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제1부에 비해 제2부 ‘비환원’은 출간 초기에는 독자들의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비환원’은 라투르의 핵심적인 철학 저술로 대중의 시선을 끌게 되었다. 제2부에서는 당시까지의 라투르의 연구와 함께 그 뒤에 이어질 그의 연구를 위한 방법론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제2부는 이 책의 전작인『실험실 생활』의 연구를 철학적으로 음미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 책과 『실험실 생활』과의 연계 이 책은 과학학(science studies)의 현대 고전 가운데 하나다. 저자 라투르의 첫 저서인 『실험실 생활』 못지않게 독자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이 책의 전작인 『실험실 생활』이 실험실 ‘내부’에서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생산되느냐에 관한 연구라면,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는 그렇게 생산된 과학적 사실이 실험실을 넘어 ‘외부’ 프랑스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느냐를 연구한 책이다. 자연히 이 두 책은 한 쌍을 이루는 과학학 도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과학 실험실에서 멈추지 않고 외부 사회까지 다루기에 과학학 도서이면서 동시에 사회과학 도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과학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쪽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되고 40년 동안 인문학, 사회학, 인류학, 행정학, 과학정책학 등을 포괄하는 사회과학, 예술학, 신학 등 여러 학제에서 큰 관심을 받아온 것이 그 증거다. 2022년 타계한 과학기술학의 세계적 석학 브루노 라투르의 두 번째 저서로 과학철학, 보다 넓게 과학학은 물론 사회과학, 나아가 여러 차원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