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여성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여성은 언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는가? 
여성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면 어떤일이 벌어지는가?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 
직접 삶을 쓰다
자신의 삶을 걸고 글을 쓴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온 문학연구자 장영은이 한국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글쓰기를 탐구하는 신작으로 돌아왔다. ‘여성들의 글쓰기’라는 화두를 이어가되,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쓰기’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한국의 여성 지식인들은 식민지 조선의 위태로운 현실과 맞닥뜨리며 자기 자신과 세계에 관해 적어내려갔다. 이들의 글은 ‘여성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궁리하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 지식인에게 글쓰기 혹은 문학이란 사상을 매개하고 실천하는 수단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하나의 사상이었다.    
김일엽, 최정희, 모윤숙, 김활란, 임영신, 박인덕, 이화림, 허정숙.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여성 지식인은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글을 쓰고, 공부하고, 사상을 벼리고, 누군가를 가르쳤으며, 때로는 권력을 획득했다. 이들은 그 치열한 공부와 여성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분투의 과정들에 대해,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직접 썼다. 이들이 직접 쓴 이야기는 여성이 ‘언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는지, 여성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선명히 보여준다. 
물론 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읽어낼지는 전적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덮어놓고 추종하거나 비난하는 방식 대신, 세간에 잘 알려진 사실과 이력을 넘어 그들이 무엇이 되기를 원했으며,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 왜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읽다보면, 읽는 사람의 삶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 ‘진실한 자서전’은 가능한가
『변신하는 여자들』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여성은 어떤 순간에 자신의 삶을 글로 쓰게 되는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다. 여성은 어떤 순간에 자신의 삶에 대해 침묵하게 되는가? 때로 침묵은 더욱더 강력한 발화가 되기도 한다. 자기서사의 화자는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숨기기도 한다. 자신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숨기고자 하는 이 복잡한 욕망이야말로 이 책이 주목하는 자기서사의 매우 독특한 지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여성들은 자기서사의 화자로서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탐구해나갔다. 
무엇보다, 수필집 『젊은 날의 증언』을 비롯해 팔순이 넘는 나이까지 왕성히 글을 쓴 소설가 최정희는 자신을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의 진실이 자기서사의 본질임을 예리하게 파악한 작가였다. 제2차 카프 검거 사건으로도 불리는 1934년 신건설사 사건은 그녀의 삶을 뒤흔들었다. 최정희는 9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며 그간 지니고 있던 종교적(기독교) 신념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를 구원할 길은 오직 문학밖에 없다는 목소리를 새롭게 내면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부터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를 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내 소설의 주인공들: 어머니일지도 모르고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라는 글로써 밝혔다.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는 굳이 변명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쓴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나’일 수도 있고 ‘나’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정희는 ‘굳이 변명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을 재현하고자 했다. 같은 맥락에서 사랑과 연애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도 그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호한 여성 주인공의 사랑을 다룬 소설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재기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진실한 자서전’이 여성에게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듯하다. 사회주의자(김유영)의 아내라는 이유로, 사회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야 했던 최정희에게 “진실한 자서전”은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정희는 정작 자신의 문학과 생애가 지닌 역사적 가능성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글쓰기가 “사는 보람”이고, 삶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소설 쓰기”라고 고백했음에도,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끝끝내 밝히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있는 자격: 언제, 어떻게
작가와 출판인으로 활동하다 승려의 길을 택했던 김일엽의 삶은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주어질 수 있는지/없는지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김일엽은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서야 글쓰기와 사상, 여성운동에 대한 자신의 뜨거운 진심을 고백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자신에게 주어지기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렸고, 출가한 지 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회고록을 발표하며 사회에 복귀하게 된다.  
김일엽은 식민지 조선의 여성 지식인에게 글쓰기와 문학이 사상을 매개하고 실천하는 수단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하나의 사상이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글을 쓰고 발표한다는 것은 곧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발화하는 행위이다. 당시에는 여성으로서 이러한 권한을 부여받는 것 자체가 극히 어렵고 드문 일이었던 데다가, 그런 기회를 얻는다 할지라도 수많은 공격과 위협을 감내해야 했다. 김일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사생활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적 입지가 점점 좁아져만 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출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불교는 곧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마련한 가장 안전한 처소였다. 
그래서였을까, 김일엽은 출가 이후에도 탈속의 글쓰기를 추구하지 않았다. 거듭되는 결혼과 이혼으로 스캔들에 시달리고 이동하며 살아가야 했던 김일엽에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불교에 귀의해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난 이후였다. 스스로의 불심을 입증하기 위해 장장 18년간 글을 발표하는 일을 중단한 그녀였지만, 자신이 스님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어느 정도 입증받았다고 판단한 순간 주저 없이 회고록을 집필하기 시작해 생애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남편과의 이혼으로 추문의 대상이 된 박인덕 역시 뭇사람들의 비난과 질시로 오랫동안 사회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미국과 유럽을 넘나드는 종교 연설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도 그런 사정과 맞닿아 있다. 박인덕은 파탄으로 치달은 결혼생활과 이혼으로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어머니의 격려에 마음을 다잡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기간 동안 그녀의 영어 실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그 실력을 기반으로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강연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귀국 이후 조선 사회에서 또다시 배척당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유럽을 넘나들며 7000여 회에 이르는 대중 순회강연을 펼친 박인덕은 그 체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서 발표했다. 더 나아가 자서전 『구월 원숭이』 집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친일/우익 인사로서 박인덕이 보인 면모에는 여러 한계가 있지만, 그녀의 삶은 ‘식민지 조선의 여성 지식인’이라는 주변적 지위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현실이 그녀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적 질문이 아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당면 과제를 찾아 나서도록 했던 것일까? 그러나 실용교육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비롯해 자신의 현실 인식과 역사관에 대한 침묵은 그녀의 자서전에 큰 공백으로 남아 있다.   
침묵의 수사학: 여성의 여성혐오
자기 자신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