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박광홍 · 인문학/사회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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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토박이이자 해병대 장교 출신의 저자는 한국군에 스며 있는 일본군의 정신주의를 파헤치고자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석사논문을 완성했다. 그 석사논문을 뼈대로 해서 재구성한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옛 피식민지인이었던 한국인이 지배국 일본의 군 관계자들을 직접 인터뷰 조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실제 전쟁 체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던 사람들의 의식과 심리, 사상통제를 통한 전체주의 국가의 사회통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독창적인 저작이다. 전쟁 수행에 ‘알맞게’ 폭력적인 개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입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인간 존재가 전쟁의 부속으로 가공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뒤틀림에 대해 들여다보며 전쟁의 본질과 인권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제국 시대 전쟁 체험자들을 통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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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다 제주 해안가에 있는 이상한 인공동굴 | 해병대의 ‘필사의 정신력’ ‘필승의 신념’ | 한국군에 남아 있는 일본군의 정신주의 |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1. ‘천황 폐하’의 신민으로 자라나다 ‘폐하의 자녀’로 ‘나라를 위해 죽는’ 것 | 삶이 파탄 난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다 | 교육의 군국주의화, 충성스런 신민 만들기 | 조선인의 ‘일본화’ 정책 | “천황은 일본의 상징일 뿐” | 사상통제의 위력, 복종하는 신민 2. 입대, 죽음의 운명공동체 만주사변, 15년 전쟁의 서막 | 그들에게 전쟁은 기회였다 | 총력전 시대, 죽음의 운명공동체 | 그들은 어떻게 입대하게 되었나 3. 군대교육, 천황의 군인으로 거듭나기 매일 밤 구타, ‘나 자신이 불쌍했다’ | 군인칙유, 천황제 국가관의 확립 |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각오를 다지다 4. 전쟁과 죽음 불침전함 야마토의 침몰 | 특공, 자살 공격을 명령받은 병사들 | “안심하고 죽어라,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질 테니” | 죽음을 앞둔 장병들의 심리 | “그래, 내가 제일 먼저 죽자” | ‘국가’에 ‘국민’은 없었다 5. 일본이 전쟁에서 항복한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 “천황 폐하를 지켜야 한다” |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까” 6. 어제의 적, 오늘의 친구 “헬로, 헬로”, “땡큐, 땡큐” | 중국군의 관대한 대우 7. 새로운 세계에 드리워진 제국의 그림자 “폐하는 전쟁을 원치 않으셨어요” | 만들어진 천황의 이미지 | 야스쿠니만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 기억되지 못한 전쟁 체험 | 왜 과거사는 정리되지 못했을까 8. 그들에게 전쟁은 무엇이었나 국체사상이 일본 장병들에게 끼친 영향 | 일본군은 왜 옥쇄 명령에 복종했는가 에필로그 | 나 또한 ‘국민’으로 빚어진 존재 감사의 글 주 참고문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왜 그들은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을 각오를 다지게 되었나? 왜 옥쇄 명령에 복종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게 되었는가? 근대국가의 사상통제, 주입된 이데올로기의 위력… 전쟁 수행에 ‘알맞게’ 폭력적인 개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개인들 제국 시대 군인들의 생애사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되돌아보다 한국인이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다 우리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 그야말로 자폭 공격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두고 그 잔인함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자살 공격을 해야만 했던 병사들의 심리에 관해서는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살 공격을 했을까? 왜 이 명령에 복종했을까? 이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었을까? 명령을 받은 순간 인간적인 동요는 전혀 없었을까? 무엇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전쟁을 했을까? 이 책은 제국 시대 일본군 병사를 직접 인터뷰해 이런 질문에 답한다. 제주도 토박이이자 해병대 장교 출신의 저자는 한국군에 스며 있는 일본군의 정신주의를 파헤치고자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석사논문(〈총력전 체제하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과 동요: 전 일본 군인·군속의 구술사를 중심으로〉)을 완성했다. 이 책은 그 석사논문을 뼈대로 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옛 피식민지인이었던 한국인이 지배국 일본의 군 관계자들을 직접 인터뷰 조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실제 전쟁 체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던 사람들의 의식과 심리, 사상통제를 통한 전체주의 국가의 사회통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독창적인 저작이다. 전쟁 수행에 ‘알맞게’ 폭력적인 개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입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인간 존재가 전쟁의 부속으로 가공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뒤틀림에 대해 들여다보며 전쟁의 본질과 인권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제국 시대 전쟁 체험자들을 통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다” 책은 제국 시대 일본군의 생애사를 바탕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전쟁을 수행한 당사자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당시의 시대상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즉 개인의 세계관이 전쟁 전에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전쟁기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전후에는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평범한 어린이가 ‘황국신민’으로 사회화된 이후 국가라는 ‘죽음의 운명공동체’를 위해 군에 입대하고, 매일 반복되는 구타 등을 이겨내며 군인이 되어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총력전 체제 안에서 인터뷰이들은 철저하게 전쟁 수행의 부속품으로 가공되었다. 국가는 오직 ‘천황’만을 위해 존재했고, 국민의 안위는 단 한 번도 고려되지 않았다. 사상은 철저히 통제되었고, 개인의식은 집단의식 안에 고립되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개인의식의 동요도 있었지만 표출할 수는 없었다. 개인의 양심과 권리는 총력전 체제에서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야스쿠니신사’는 큰 위안거리였다. 천황이나 국가를 위해 죽으면 야스쿠니신사에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신으로 모셔지는 가운데 전우들과 재회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죽음에 직면한 장병들을 위로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야스쿠니신사의 존재로 인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장병들의 사생관에 야스쿠니신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엿볼 수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귀에 꽂혔던 단어였다. 야스쿠니신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야스쿠니 신앙은 일상화된 죽음의 동요를 억제하는 강력한 장치였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127쪽) “그래서 우리로서는 실로 야스쿠니신사라고 하는 것은 신성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굉장히 신성하니까, ‘죽으면 야스쿠니에 갈 수 있다고, 죽으면 모두 전우들과 만날 수 있다’고 했죠. 왠지 이제 꿈같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라는 식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네, 그러니까 뭐 야스쿠니신사에 들 테니까 무조건 이렇게 열심히 하라는 뜻이죠.”(127~128쪽) 책은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형성된 아이덴티티가 전후에도 개개인의 삶에 계속해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주목한다. 이를테면, 기시 우이치 씨는 천황은 전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천황 덕분에 일본이 성장했다는 신념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생각도 전몰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천황은 일본의 상징일 뿐”이라고 말하던 히로토 아키라 씨 또한 야스쿠니신사의 존재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는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을 위령하는 시설”이므로 이를 트집 잡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불합리하게 강요된 장병들의 죽음을 미화하면서 국민을 통합하는 사상전의 도구로 쓰였던 야스쿠니신사의 기능은 여전히 이들의 삶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천황 폐하’의 신민으로 자라나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그러한 교육을 받았던 것입니다만, 그 당시의 교육이란 결국 말이지요. ‘너희는 폐하의 자식이다.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라는 식의 교육이었어요.”(27쪽) 제국 시대 일본은 국민의 생명보다 천황의 안위가 더 중요했던 나라였다. 인터뷰이들의 증언에서 개개인을 황국신민으로 빚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에서 시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제국 일본의 교육 이념은 ‘천황 주권의 절대성’에 기초한 ‘황도주의 국체론’이었다. 학교에서부터 천황과 국체의 신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이뤄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890년에 포고된 ‘교육칙어’였다. 이를 통해 천황의 신성성을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유사시 나라와 천황을 위해 헌신할 것을 주문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시베리아 출정 등 대외전쟁이 진행되면서 국가주의 교육은 더욱 성행했고, 이와 함께 학교를 넘어 일상에서도 이런 교육이 실시되었다. 국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은 단순히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바로 사상통제의 영향도 컸다. 제국 일본은 천황 숭배·일본 국민으로서의 자각을 저해하는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조선독립론과 같은 ‘위험 사상’을 철저히 걸러냈다. 치안유지법의 제정과 특별고등경찰의 등장이 이런 사회의 분위기를 더욱 옥죄는 역할을 했다. 이로써 목소리를 내는 시민은 거의 사라졌고, 복종하는 ‘신민’만이 남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황국신민은 천황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것을 요구받았다. “이런 사회의 말로는 참담했다. 군부는 자기 자신의 출세와 보신을 위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전란의 수렁으로 끌고 갔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즉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던 것이다. 제국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벌였다는 ‘사상 탄압’이 결과적으로는 제국의 파멸에 일조한 셈이었다.”(51쪽) 천황의 군인으로 거듭나기 “이제는 우리가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71쪽) 만주사변, 중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계속해서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대외 팽창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진주만공습 이후 연전연승이 이어지긴 했으나 곧 전황은 악화되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해전에서의 치명적인 패배와 뒤이어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에서 패배한 뒤 일본의 국운은 급격히 기울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쟁 지도자들은 국민의 생명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것을 쥐어짜 어떻게든 전쟁을 이어가고자 했다. 이 시기에 기시 씨와 히로토 씨는 조국 일본이 만주사변 이래 10년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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