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이 될 수 없지만 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_ 장일호 『시사IN』 기자 추천!
『한겨레21』 독자가 선정한 다시 만나고 싶은 필자,
캘리포니아주립대 소아과 교수 스텔라 황의 신생아중환자실 이야기
엄마 배 속에서 나와 집으로 가지 못하는 아기들이 있다. 탄생과 동시에 생사의 경계에 선 아기들은 신생아중환자실로 향한다. 신생아중환자실은 병원에서도 매우 특별한 곳이다. 의료진은 하나같이 환자가 아닌 ‘아기’라는 호칭을 쓰며, 병원에서의 엄마 아빠가 되어 아기들을 보호한다. 아기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에 응급 상황마다 의료진의 고뇌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모든 처치를 해서라도 아기를 살리길 바라지만, 이르게 태어난 아기들은 엄지손가락으로 겨우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만큼 작고 연약하기 때문이다.
생의 기적을 목격하는 동시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곳이 신생아중환자실이다. “환자가 죽어도 살아 있어야 하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불면의 밤에 괴로워하면서도 스텔라 황 교수는 어김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아기 가족의 마음을 보듬으며 애도의 여정을 함께한다. 환자의 몸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환자와 가족의 마음도 치유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긴 수련을 거쳐 교수가 된 지금도 저자는 여전히 모든 죽음이 힘겹다고 고백한다. 환자의 죽음에 무뎌지지 않고 매번 슬퍼하는 그에게서, 흔들리고, 울고, 차트를 붙들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뜨거운 희망을 본다.
“아기가 신생아중환자실에 도착하는 순간, 하나의 세계가 도착한다.”
환자를 환자라 부르지 않는 유일한 병동, 신생아중환자실
산모들은 아기를 안는 순간, 출산의 고통을 거짓말처럼 잊고 엄마가 됐다는 걸 실감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원히 기억될 아기와의 첫 만남이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질환을 가진 채 태어나거나 예정보다 너무 빨리 태어난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채 신생아중환자실(NICU)로 가게 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소아과 교수 스텔라 황은 “아기가 신생아중환자실에 도착하는 순간, 하나의 세계가 도착한다”고 말한다.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은 이 세계를 환자가 아닌 ‘아기’라 부른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의료진에게도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로 자리하는 것이다.
신생아중환자실 아기들은 혼자 힘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미숙아가 많아 매우 섬세한 케어가 필요하다. 원래라면 안전한 태내에 있어야 했기에, 소음과 빛 등 외부 자극을 최소화해 정상적인 발달을 돕고, 온도와 습도 역시 철저하게 관리한다. 특히 28주 미만의 초미숙아는 몸무게가 채 1킬로그램도 되지 않아 약물을 투여할 때 소수점 단위까지 용량을 맞춰야 한다. 아기가 기기의 도움 없이도 호흡하고 체온을 조절하며 모유(분유)를 먹을 수 있으면 마침내 집으로 갈 수 있다. 저자가 근무하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작은 몸으로 어려운 고비를 잘 버텨준 아기들에게 퇴원이 아닌 ‘졸업’이란 이름을 헌정한다.
“아기와 함께 온 가족도 우리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기에.”
의사와 보호자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신생아중환자실을 배경으로 한 이 책에는 환자뿐 아니라 환자의 가족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다. 의료진이 치료하는 대상은 아기지만, 아기 가족을 통해 경과를 알리고 치료 방향을 논의하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연명치료를 할지 완화치료로 전향할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픈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자식이, 그것도 핏덩이 같은 아기가 아픈 걸 그저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더 이상의 고통 없이 아기를 보내줄 것을 권하는 의사에게 의자를 던지며 위협하다 경비에게 끌려 나간 아기 아빠, 상담을 마친 뒤 의사를 쫓아 나와 차가운 복도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애소하는 부모, 사망 선고 뒤 병실을 다시 찾은 의사에게 아기를 안은 채 심장이 아직 뛰고 있다고 말하는 가족…. 분노, 슬픔, 혼란에 휩싸여 혼란스러워하는 가족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스텔라 황 교수는 아기 가족도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치료를 종료하는 것으로 의사의 역할은 끝나지만, 저자는 아기를 잃은 가족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린다. 가족이 병원을 떠난 뒤에도 연락해 안부를 묻는다. 짧은 생을 살다 간 아기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가족을 잃었던 한 사람이 건네는 인간적인 위로다.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
그 누구도 혼자 아프고 혼자 힘들지 않게
이 책은 ‘아픈 아이를 돌볼 의사가 없는 사회에 과연 미래는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기획되었다. 아이 진료를 위해 부모들이 새벽같이 줄을 서고,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소아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로 목숨을 잃고, 전공의 미달로 소아과가 붕괴 위기에 놓인 현실은 비단 아픈 아이를 둔 부모만이 아닌 전체 사회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다. 소아과는 번아웃이 일상화된 업무 강도와 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낮은 보상, 어느 과보다도 의료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소아과를 선택하고 또 남기로 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는 스텔라 황이라는 한 소아과 의사의 이야기지만 소아과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의료진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생사의 기로에 선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순수한 헌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 가족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 생명의 가치와 존엄한 삶 사이에서의 끝없는 성찰을 담은 이 한 권의 책은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한다. 여전히 환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의사가 분명 우리 가까이에 있기에. 그 누구도 혼자 아프고 혼자 힘들지 않도록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