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개가 사라졌다. 개를 찾는 연극이 시작된다.
개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연극. 사라진 개의 이름은 ‘델마’라고 불러도 오지 않고, ‘그로토프스키’라고 불러도 오지 않는 ‘델마 혹은 그로토프스키’. 사라진 개를 찾는 캐롤과 그 뒤를 쫓아 바닥 아래로 향하는 그의 친구들이 있다. 책 첫머리에 실린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구자혜의 희곡에 진입하는 입구이자, 종국에는 전혀 다른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한다.
입구를 지나면 질문들이 기다린다. 빛, 소리, 움직임, 배우, 무대, 혹은 그들 모두가 얽힌 질문들이 중첩되어 쌓이기 시작한다. 기존 연극의 관습과 문법에 대한 질문, 결국 재연이거나 재현일 수밖에 없는 연극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질문들이 무대를 뚫고 현실을 향해 던져진다.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부터 예술계 내 성폭력 사태를 계기로 확산한 미투 운동,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갑질 논란, 여전히 편협한 시각에 머무는 성소수자 문제까지, 그는 “세계를 훑어보고, 강박적으로 취합하고, 허용되지 않는 논리를 재조합”하며 압도적인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 질문 한가운데 고통받는 존재들이 있다. 아마도 그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실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전의 연극 만들기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연극계를 휩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오직 관객만을 위한 두산아트 센터 스트리밍서비스공연」에서 보듯 연극은 환영이 아닌 현실의 일부이며, 사라진 개가 다시 돌아와 열어젖힐 암전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행히 그 개를 환대할 장소가 존재한다. 현재들의 사건을 똑똑히 “목도하고 겪으며 세계와 시대의 눈치를 보면서” 쓴 한국 연극의 증거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