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기원전 5세기 중국 전국시대. 특이한 비공非攻(침략하지 아니함) 철학을 설파하고, 바야흐로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당하는 나라들을 구원하며 그 성을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어내는 수수께끼에 휩싸인 묵자 교단. 그 교단의 뛰어난 인재 혁리가 지방의 한 소국을 방어하기 위해 유일하게 홀로 양성으로 파견된다. 다가오는 적군인 조나라 군대는 2만이 넘지만 양성의 군사는 수천 명에 지나지 않고, 우유부단한 성주는 색욕에 빠져 있으며 성 안의 수비 상황도 말할 수 없을 만큼 흐트러져 있다.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2만 대군을 방어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혁리. 이 소설은 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군사들을 지도하고, 과학적 지식으로 전무후무한 방어용 무기를 제작해내는 그의 임협任俠 정신과 행동력이, 강대한 자의 침략을 막아내야 하는 약자의 편에서 얼마나 극대화되어 펼쳐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공非攻과 겸애兼愛 전쟁을 대하는 묵가 교단의 방식 기원전 5세기 때의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였다. 다시 말해 수많은 소국들이 존재해 있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한 나라는 주위의 타 국가에게 손을 뻗어 겨우겨우 연명을 하던 시기였다. 피와 혼돈이 끊임없이 반복되던 당시 상황에서 형이상학적인 윤리를 내세우는 공자나 노자의 가르침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백성에게는 다른 세상의 가르침일 뿐이었다. 그런 역사 속에서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나타난 이가 있으니 다름 아닌 묵자였다. 공자의 인(仁)을 차별적 사랑이라 비판한 그는, 양반에서부터 천민까지 구별 없는 사랑인 ‘겸애’를 외쳤고, 침략 전쟁을 비난하는 비공철학을 부르짖으며 약자의 편에 서서 그의 사상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며 살아갔다. 그를 따르던 묵가의 무리들은 학문적인 사상 연구보다는, 묵자의 앞선 발걸음을 좇으며 강자의 침입에 시달리는 약소국으로 들어가 아무런 보수도 없이 지원군이 되어 전쟁에 임했다. 절대로 침략하지 아니하고, 대신 그 침략을 막아내는 ‘방어로서의 전쟁’에만 임했던 그들. 그들은 곧 묵가의 병사들이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묵가 교단의 사상을 베이스로 염두에 두면서 펼쳐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전국시대’와 ‘묵가’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가상의 인물인 혁리라는 주인공의 활약과 고뇌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묵가의 현 지도자로부터 큰 신임을 받고 있던 혁리는 강자(조나라)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약자(양성)를 지켜주기 위해, 즉 비공 사상의 실천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약소국의 심장부로 부임해 와, 공격이 아닌 오로지 백성의 땅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소설은 평화와 박애로써 약자를 도우려는 주인공 묵가의 선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진 않다. 새로운 용병 지휘관에 대해 경계심과 미움을 숨기지 않는 성주의 아들, 순수했던 초기 묵자의 사상에서 이탈해 정치적으로 조금씩 모략을 꾀하는 현 묵가 수뇌부 등을 동시 묘사하는 등 전쟁 이면의 갈등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독자에게 주제를 강요하지 않는다. 박애 정신으로 무장한 묵가의 외로운 싸움에 박수를 보내든, 시종일관 ‘방어’만을 고집하는 한 가지 목표로 전쟁을 대하는 모습에서 묵가의 최후는 어쩔 수 없이 예정되었을 거라 단정하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고 자료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묵가이지만, 기원전 피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약자들 편에 서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지켜온 그들이 200년이란 시간 동안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음은 분명 사실이다. 〈묵공〉은 그 역사의 한 축에서 다시 또 하나의 감동의 축을 만든 한 묵가 인물을 통해 자기애를 넘어선 겸애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임협任俠’을 말하다 “약한 자를 구하러 가는 것이 우리의 규칙입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채 뛰어들고,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절대로 퇴각하지 않는 묵가군의 노력하는 모습은 소설 속에서 ‘묵가의 정신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묵수墨守’로 칭해졌다. 소설의 제목인 《묵공墨功》은 ‘묵수’와 통하는 의미로, 이 소설에서 처음 사용되는 단어이자 표현이다. 즉, 보다 공격적인 지략을 사용하여 적극적으로 수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묵자가 존중해야 하는 것은 ‘임任’이어야 한다. ‘임’은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스스로에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함으로써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임이란 다름 아닌 임협任俠이다. 남자라면 자기를 죽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 본문 중에서 사전에서는 ‘임협’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내답게 용감함’이라고 간단히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묵가 사상과 임협 정신이 만났을 때는 ‘사내로서의 용감함’이 다시 ‘제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데로 의미가 확대된다.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수많은 무협소설, 무협만화 등에서 보아왔던 ‘임협’의 세계가, 이 소설에서는 묵가교단의 희생적 사상과 결부되어 더 넓은 의미의 임협이 된 것이다. 그러한 임협의 실천 속에는 필수적으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인데, 주인공 혁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상대편 적국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보다도, 오히려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협조하지 않는 성주의 아들(양적)에게서, 그리고 자신을 파견한 묵가 교단의 수뇌부로부터 작은 나라를 버리고 속히 귀환할 것을 종용 받는 등 전쟁 이외의 것에 더더욱 고통과 분노를 겪었다. 이 소설의 작가는 그토록 내적 외적 갈등을 모두 극복하고 2만 군대라는 초강적 앞에서도 성공적으로 침입을 막아내는 주인공을 그려주었지만, 결국 소설의 말미에서는 주인공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로만 보아도, 묵가 교단의 자취가 진나라 이후 서서히 사라지고 있으며, 이후 어떠한 역사적 기록에서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미가 통하고 있다. 평화와 박애의 정신으로 수많은 약자들 편에서 대신 피를 흘리며 싸우던 묵가의 교단이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갔는지 지금도 일부에서는 연구 중이라 하지만 뚜렷이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다만 소설 속에서도 엄연히 서술된 바, 점차 초기 묵자의 정신과 사상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 타협하고 강자와도 결탁하는 후기 묵가 교단 수뇌부의 변절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나카지마 아쓰시 기념상 수상작 영화 및 만화 등 타 장르로까지 소개되다 저자는 본문 속 ‘저자의 글’에서, 언젠가 우연히 읽은 사료에서 묵가교단의 농성 전술이 매우 특이한 점에 흥미를 느낀 것이 계기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역사적 사실 속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입혀 주인공 혁리를 만들었고, 그 인물에게 박애의 정신과 기술적인 솜씨를 모두 겸비한 참된 직인職人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무협’이나 ‘전쟁’이라는 성격보다 ‘인간 유형’에 더 포커스를 두며 전개되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것이 원고지 400매 정도의 길지 않은 장편으로 구성되었지만, 묵가교단의 사상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인물의 고뇌와 행동력을 모두 다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의 특이한 매력을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1991년에 일본에서 발표된 사케미 켄이치의 원작소설 《묵공》은 발표 당시에는 일본 내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의 신작으로 소개되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미 그 전에 《후궁소설》로 환타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던 그였기에 새 신작에 대한 주목도도 높았고, 게다가 그 해 나카지마 아쓰시 기념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더더욱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작품이 일본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사케미 켄이치의 원작 소설을 그대로 극본화 하여 만들어진 영화 〈묵공〉과 동명의 만화 때문이기도 하다. 모리 히데키가 그린 만화 〈묵공〉은 국내에서 전 11권으로 완간되어 무협 만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