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에서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세 번째 책
27편 영화에서 읽어낸 사랑, 욕망, 윤리, 성장의 이야기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3년 만에 세 번째 책을 선보인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약 2년간 <씨네21>에 발표했던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연재 글 19편과, 2011년 웹진 ‘민연’에 발표했던 글 2편, 2013년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발표했던 글 1편을 묶어 27편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총 22편의 글을 주제와 성격에 따라 4부로 나누고, 연재 외 발표 글을 5부 ‘부록’으로 엮었다. 4부로 묶은 글의 주제는 각각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성장과 의미’다. 저자는 ‘책머리에’에서, “네 개의 주제로 나눠 묶고 보니 비평가로서의 내 관심사가 대개 이 넷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알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문학비평으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신형철이다. 문학평론가로서 영화평론을 쓴다는 일이 과연 쉬웠을까. 어두운 극장에서 메모를 하고 같은 영화를 대여섯 번 반복해서 보며 이 글을 쓴 신형철은 <씨네21> 연재 당시 이런 글을 덧붙이기도 했다.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 영화를 일종의 활동서사로 간주하고,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그가 쓰는 영화평론은 결국 ‘좋은 이야기’에 대한 글이며 그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비밀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눈이 깊은 저자는 그 비밀을 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한 노력을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확한 논리가 주는 쾌감
정확한 인식을 담은 문장
이 책의 1부는 ‘사랑의 논리’라는 주제로, ‘정확한’이라는 형용사를 ‘사랑’ 앞에 세워두게 되면 어떠한 깊이에 도달하게 되는지 <러스트 앤 본> <케빈에 대하여> <아무르>를 통해 이야기한다.
2부는 ‘욕망의 병리’라는 주제로, 김기덕과 홍상수 영화에서 드러나는 욕망의 문제, 불안과 우울의 정서로 드러나는 종말의 서사를 <피에타> <다른나라에서> <뫼비우스> <우리 선희> <멜랑콜리아> <테이크 셸터>를 통해 이야기한다.
3부는 ‘윤리와 사회’라는 주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논의들을 이야기하는데 대상 영화는 순서대로 <더 헌트> <시> <늑대소년> <설국열차>다.
4부는 ‘성장과 의미’라는 주제로, 살인과도 같은 성장의 의미와 희망 없이도 살아나가야 하는 삶의 의미를 <스토커> <머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 <노예12년>을 통해 그리고 있다. 그리고 5부 ‘부록’에서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에서야 밝혀진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성경 속 배신자 유다의 서사와 겹쳐 읽고, 영화를 보며 “순수한 쾌감으로 행복해한” 관객으로서의 이야기를 영화 <사랑니>를 통해 풀어놓는다.
둔한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을 때처럼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것뿐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대여섯 번 보고 나서 열 줄로 이루어진 단락 열네 개를 쓰고 나면 한 달이 갔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부정확한 사랑의 폐허로 보이겠지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책머리에’에서
저자 신형철은 정확하게 쓰는 비평가가 되기를 원한다. 정확한 논리가 주는 쾌감이 그의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다. 정확한 인식을 담은 정확한 문장은 결국 아름다움을 획득하고야 만다. 정확한 글이 곧 미문인 것이다.
해석자의 꿈,
더 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한 노력
신형철은 지난해 한 매체에 발표한 글에서, 어떤 비평가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하여’, <한겨레21>, 948호) “칭찬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뜻”을 밝히며 어째서 “정확한 칭찬”인지에 대해서도 짧게 썼는데 어쩌면 이 책 한 권이 그 질문에 대한 긴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맨 앞자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이 책의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엄격한 사색의 결과를 이렇게 정확하고 유려하게 표현한 글을 얻는다면 그 영화는 복되다.” ‘정확하다’라는 말의 미덕은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의 추천사에서 또한 잘 드러나 있다. “어떤 부류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정확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랑이다.” 저자에게 정확하게 사랑하기/받기 위한 노력으로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정확한 문장을 쓰는 일은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 노력의 결과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제목이 태어났다.
신형철의 영화 서사론은 곧 그만의 섬세한 눈으로 포착한 인간에 대한 탐사다. 그 두렵고도 매혹적인 심해를 밀도 있는 글을 통해 누구라도 잘 들을 수 있게끔 펼쳐놓는다. 그 글은 끝내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좀 더 잘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을.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 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 찾는 와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
―214쪽에서
그 질문/실험의 결과를 담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끝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남겨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