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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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뉴욕 타임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한계를 시험하는 유형의 작가들이 있다. 언어의 한계, 사고의 한계, 감정과 기억, 신체와 행위의 한계, 다시 말해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작가들. 그런 시도가 옳은 것인지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계와 부딪치려고 했을 때만 탄생하는 것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소설이 그 완벽한 사례다.” _정지돈 소설가 두 번째 장편소설 《무한한 재미infinite Jest》로 세계의 시선을 끌어 모은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소설집이자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픽션 “기가 막히게 기발하다.”_ 〈타임〉 “플로베르 이후 가장 빼어난 스타일리스트 중 하나이자 니체 이후 가장 깊은 곳까지 이른 허무주의자”(신형철 문학평론가)로 불리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학에서 월리스에게 철학을 가르친 한 교수는 "나는 그가 소설 쓰는 취미를 가진 철학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철학이 취미인, 당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하나였다"고 했을 만큼 철학에도 뛰어났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픽션과 에세이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벌여온 작가는 46세의 나이에 복용하던 우울증약이 더는 듣지 않자 자택에서 목을 매어 삶을 마감한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세 편의 장편소설(마지막 소설은 미완성 유작으로 사후에 출간)과 세 권의 소설집을 남겼는데, 《오블리비언》은 월리스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소설집이다. 월리스 소설의 스타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미경적인 관찰과 묘사, 소설의 오랜 관습을 타파하는 플롯과 형식, 결말에 이르러서도 기어코 해명되지 않는 진실의 실체…. 그의 소설들을 다 읽을 즈음에서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아득한 슬픔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설들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오블리비언(Oblivion)’은 소설집의 제목이자 일곱 번째 실린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데, 여덟 편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오블리비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a) 잊고 있는 혹은 잊은 상태, (1b) 방심 또는 부주의로 인한 건망, (1c) (특히 정치적인) 범법 행위에 대한 고의적 간과, (2a) 잊힌 상태, 모호함, 무(無), 공허, 죽음, (2b) 잊힌 무언가.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로서의 ‘오블리비언’은 (2a)의 뜻을 기저로 하되 얼마간 (1c)의 ‘고의성’이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의식의 가장자리’ ‘잠재의식’ ‘의식의 밖’이라는 표현이 결국 ‘오블리비언’이며, 이것이 ‘의식의 여러 층위’ 중 무의식과 가장 맞닿아 있는 상태, 즉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라는 점에서 각 단편에서 ‘오블리비언’의 ‘고의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_ 옮긴이의 말에서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할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한계가 명확한 질문에 죽기 직전까지 집착하기 또는 죽음과 함께 집착하기. 실비아 플라스의 말처럼,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할 때 그것이 우리가 무(無)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다는 신호라는 사실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소설은 그러한 한계의 흔적이자 망각의 신호다. _ 정지돈 《오블리비언》에는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마케팅 회사의 이면을 파헤친 첫 번째 소설 〈미스터 스퀴시〉는 마케팅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갑과 을 사이의 알력 관계, 을과 병 사이의 줄다리기 등을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점을 넘나들며 풀어낸다. 미스터 스퀴시사(社)의 신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한 타깃 포커스 그룹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회사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형상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이 소설은 1996년에 발표한 《무한한 재미》로 일약 미국 문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월리스가 1999년에 두 번째 소설집을 낸 후 ‘엘리자베스 클렘’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작품이지만 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박에 월리스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작가만의 집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두 번째 소설 〈영혼은 대장간이 아니다〉은 한 초등학교의 시민윤리 교실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사건은 정신착란에 빠진 대체교사 존슨이 칠판에 ‘죽여’라고 쓰면서 시작된다. 존슨은 점점 더 무섭게 열중하며 ‘죽여, 저들을 죽여’라고 쓰기를 멈추지 않고 그의 이상 행동에 공포에 질린 학생들의 집단 탈출을 시도한다. 특히 그 학생들 중 ‘무자각적 인질 4인방’의 이야기다. 교실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평생 트라우마를 겪는다. 무자각적 인질 4인방 중 한 명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사건은 회상되는데, 창밖 풍경으로 묘사된 온갖 기괴한 이야기들과 연루되며 ‘비극’은 모호해지는 동시에 강렬해진다. 세 번째 수록된 〈화상 입은 아이들의 현현〉은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 울부짖는 아이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와 이를 수습하는 아빠를 둘러싼 엽편소설이다. 비극은 부모의 간절한 바람에도 수습되지 않는다. 아빠는 불가항력적 슬픔의 와중에도 멈추지 않는 자신의 본능을 비난하며 죄책감을 직시한다. 아이는 자라고 어른이 되지만 “사물들 속의 사물로 주인이 떠나버린 삶을” 산다. 아이의 비극은 그날 벌어진 비극적 사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일까. 네 번째 소설 〈또 하나의 선구자〉는 화자의 비행기 좌석 앞에 앉은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범신론적 샤머니즘과 원시적인 수렵·채집 생존 방식의 구석기 시대의 한 우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외딴 마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느 날 마을에 등장한 비범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진 한 아이와 새로운 지배 세력이 권세를 누리다가 서서히 몰락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도입부-전개부-최고조부-대단원이라는 서사 구조를 충실히 다루며 서사를 전달하는 화자의 입말로만 작품 전체가 구성된다. 친구의 지인이 비행기에서 앞자리에 앉은 승객이 그 옆자리 승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엿들었다며 친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친구가 전해준 것을 청중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다. 다섯 번째 소설 〈굿 올드 네온〉은 2001년 처음 발표한 후 《2002 오 헨리상 수상 작품집(The O. Henry Prize Stories 2002)》에도 수록되었다. 이 소설은 평생을 기만적인 인간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주인공이 자살한 이후, 죽음 이후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자신이 자살에 이르게 된 이유와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기만적인 인간으로 사는 삶과 타자를 사랑할 수 없는 현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마치 관찰자처럼 들려준다. 주인공은 종교와 코카인과 성 중독에 빠져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자살을 결행하고 그 와중에 주인공의 동문 ‘데이비드 월리스’도 잠시 등장하는데, 그 서사 속에는 작가 스스로가 깊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죽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죽는 데는 영원한 시간이 걸린다는 게 진실이다.” 한편, 소설에서 주인공은 인간의 소통 도구로서 언어가 갖는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동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여섯 번째 소설 〈철학과 자연의 거울〉은 눈가 잔주름을 제거하는 성형수술을 받다 의료사고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 어머니를 모시고, 변호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얼굴이 “미친 듯한 공포로 영원히 일그러진 가면”처럼 보이는 까닭에, 버스 승객들은 깜짝 놀란다. 그럴 때면 아들은 “‘각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든 다른 사람이 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