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판 그리스 로마 신화, [봉신연의] 출간
"역사란 현실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믿느냐 하는 것이다"라는 어느 역사가의 말이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인식하게 되면 아마도 동일한 사건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역사적 재미도 가능해질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중국 역사를 180도 바꿔버릴 수 있는 소설이 [봉신연의]다.
{봉신연의}는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립되기까지의 역사적인 배경을 두고, 실제로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태어난 역사 소설이다. 하지만 도교적인 색채를 가미하여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 이야기에서, 현대의 독자들은 사가史家들이 주도했던 것과는 판이한 역사관을 맛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같은 중국의 3대 기서를 능가하는 스릴과 박진감 역시 느낄 수
있다.
⊙ [봉신연의]에 가해진 역사적 수난
[봉신연의]는 중국 최초의 역사적 대사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 '은주 역성 혁명'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국의 3대 기서를 제치고 실제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을
받았으며, 중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소설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나라 밖으로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고전 문학 전집에 빠지지 않는 [봉신연의]가 어째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소설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공자와 태공망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 국가로 생각하여 자신이 살던 춘추 전국 시대에 다시 세우겠다는 뜻을 품었다. 그 때문에 {논어}에 씌어 있듯이 스스로가 주공周公을
꿈꾸면서, 그를 이상적인 정치가임과 동시에 성인 군자의 거울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 태공망이었다. 흔히 강태공이라고 불리는 태공망은 교조로 받들어 마땅한 주공의 권위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태공망은 문왕의 군사軍師로 들어가 역성 혁명을 이끌고, 심지어는 공자가 성인으로 받드는 문왕에게 수레를 끌게 하는 모욕적인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태공망은 사상 최초로 공공연히 유교적인 현자賢者들을
죽이고 유교의 가치 기준에 침을 뱉은 사람인 동시에 공자가 이상적인 왕국이라고 여기는 주나라를 세운 최대 공로자이기도 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공자에게 태공망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결국 공자와 그 제자들에 의해 태공망은 역사에서 점점 그 흔적이 사라져, {사기}를 제외한 모든 문서에서 이름은 자취를 감추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태공망의 공적을 칭찬하는 이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태공망을 주인공으로 한 [봉신연의] 역시 역사가들로부터 수난을 당했다. 유학자들은 모든 3대 기서의 항목에서 [봉신연의]를 삭제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봉신연의]라는 항목에는 빠짐없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별 볼일 없는 소설"이라는 설명을 덧붙여놓았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여 일단 문서상으로는 하찮은 소설로 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비방을 아끼지 않은 그들 역시 그늘에서는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몰래 탐독할 정도로 [봉신연의]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이에서 구전되며 끊임없이 도교적으로 채색되고 각색되어갔다.
이 장대하고 호쾌한 은주역성혁명 드라마는 16세기 중반 명나라 중엽에 이르러 당시에 유행하던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상주연의'로 집대성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봉신연의'로 불리게 되면서 '봉신방'
또는 '봉신방연의'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 줄거리
천계와 선계, 인간계로 나뉘어 있던 우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게 되었다. 선계에는 자질이 뛰어나지 못한 선인들이 넘쳐나는 반면 인간계에는 인간으로서 그 능력이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천계에서는 이들 중 365명을 선발하여 신으로 책봉(봉신)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곧 신계 창설 계획이다. 그런데 봉신을 하기 위해서는 선인이든 인간이든 일단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벌어지는 사건이 이른바 은주 역성 혁명이다.
천계에서는 한 인물에게 이러한 봉신의 임무를 주어 인간계로 내려보내는데, 그 인물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강자아(태공망의 이름)다. 강자아는 문왕을 만나 그의 군사가 되어 역성 혁명을 수행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아울러 선계의 다른 유파인 절교의 선인들을 이 싸움에 끌어들여 그들을 봉신의 제물로 삼는다. 결국 우주 재편성 계획에 의한 은주 역성 혁명은 완수되고, 강자아 또한 봉신의 사제로서 그의 임무를
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