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공간에 대한 종합적 사유를 역사적으로 다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사실은 목차를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간에 대한 연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책은 더욱 아니다. 게다가 공간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를 모은 것도 아니다. 다만 목차를 이렇게 배치한 것은 공간에 대한 연구가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고, 공간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옮긴이가 밝힌 것처럼, 공간 및 이와 관련한 용어는 근대 사회 이론이나 철학에서 무시당하고 소홀히 취급되어왔다. 즉 공간을 현상이나 사물의 위치를 서술적으로 나열하거나 또는 수식하기 위한 보조용어로 사용하거나, 또는 중심인물의 활동 · 사건이나 현상이 전개되는 무대 또는 배경으로 간주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공간과 관련한 용어는 한쪽으로 치우치거거나 왜곡된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공간’에 관한 책은 흔히 기하학적 공간이나 건축 공간같이 도면이나 그림을 곁들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공간은 매우 철학적이고 사회 이론적인 개념이다.
이 책의 목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는 철학 및 사회 이론의 핵심적인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그 연구 범위 또한 도시나 지역에 관한 전통적 연구뿐만 아니라 젠더 연구에서 가상현실에 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공간과 장소에 대한 논의가 증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간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거론한 책은 많지 않다. 또한 공간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는 더더욱 많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 동향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두 편저자들이 이 책을 꾸민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 그리고 이런 활동으로 구성된 사회 체계는 추상화한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공간 속/위에서, 구체적인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밝힌다. 물론 이 책에서 논의한 철학자나 사회이론가는 ‘공간’ 또는 이와 관련한 개념이나 이론에 우선적인 관심을 둔 학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상이나 이론 속에서는 공간의 개념이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심원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공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이들의 저술에서 ‘공간이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가?’라는 의문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 책에서 논의한 저명한 학자들이 공간의 개념에 명시적이고 우선적인 초점을 두고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 각자의 사상 체계가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공간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이들의 ‘공간적 사유’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밝히기란 정말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과제에 도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공간적 사유’를 추구하는 철학이나 사회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간 연구의 전개
공간은 모든 근대 사상의 모든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문은 공간을 임의적으로 사용하거나 학문마다 공간을 다르게 정의한다. 예를 들어 문예 이론에서 공간은 흔히 문체를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 텍스트 조작자이다. 인류학에서 공간은 갈수록 심화하는 코즈모폴리턴 세계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한 수단이다. 매체 이론에서 공간은 우선적으로 시각적 매체를 구조화하기 위한 서사적―그리고 시간적―양식으로부터 미학적 이행을 드러내게끔 하는 경향이 있다. 지리학과 사회학에서 공간은 물질성을 탐구하는 수단이다. 예를 들어, ‘경험’에 좀더 가깝게 이동하기 위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학문마다 공간의 개념은 각기 다르다. 아울러 모든 학문에서 공간은 재현적 전략이다.
두 번째 문제는 시간과의 관계이다. 요컨대 시간과의 관계를 무시한 채 공간을 서술하기는 매우 어렵다. 많은 학문 분야에서 공간적 전환이 이루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사주의와 발전주의라는 전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 없는 공간은 공간 없는 시간만큼이나 있을 법하지 않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세계는 의심할 바 없이 “그 배경, 인접국과의 끝없는 격렬한 분쟁 속에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톱니 모양의 경계선, 단지 다시 충돌하기 위해 맹렬하게 부딪쳤다 흩어지는 뒤얽힌 시간으로부터 뜯겨나간 파편들로 구성된 영원히 움직이는 원격-이미지적인(teleimagistic) 지구적 콜라주”로 재현되기 때문이다(14~15쪽). 그러나 이러한 재현 자체는 공감을 얻기 위해 특정한 이론적 공간과 시간이라는 창의력을 요구한다(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공간을 사회적 실천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사상의 생태학은 결코 공간적인 것 바깥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공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지리학도 같은 길을 택했다. 따라서 각 분야는 행위의 활동력이 결연된 컨테이너라는 공간의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 다중성의 집합이라는 공간의 의미로 전환했다. 전자와 같은 공간의 의미는 두 가지 움직임과 결부되어 있으며, 그것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첫째, 지리학에서는 추상적 모형과 사상에 대해 오래전부터 비판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비판은 세계를 무공간적 추상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이론적 모형이 매우 제한적인 유용성을 갖고 있음을 거듭해서 보여주고 있다. 둘째, 방법론적 · 인식론적 실천으로서 추상화한 관찰 공간에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세계와 분리해 존재하는 이론은 존재할 수 없으며, 지식은 일정한 장소에서 구현되고 국지화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공간은 결국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 바깥에 존재하는 중립적 매개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상이한 형태의 지식과 사회 제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공간 조직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추적하고 논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론의 공간성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어떠한 사회적 과정도 지리적 범위와 역사적 기간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세계 속에 행위의 뿌리내림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모든 이론적인 노력은 지리적 · 역사적 · 제도적으로 위치가 정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이론이 진화하고 지구를 순회함에 따라 그리고 이론을 번역하고, 전환하고, 유통하고, 재생산함에 따라 우리는 사실상 이론의 여행과 고통을 해독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공간의 연구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 책은 무엇보다도 공간이 최근 철학적 · 사회 이론적 저술의 층위에서 나타나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데, 따라서 그것들은 과정으로서의 공간, 그리고 과정 중에 있는 공간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다면 어떤 공간의 종을 선정하고자 했는가? 그 과정은 최근에 철학과 사회과학에서 하는 일반적인 연구들과 비슷하다. 공간에 대한 사유는 언어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의 공간과 자아 및 타자의 공간에서 시작하여, ‘근대성’ 공간의 두 가지 종, 즉 장소의 공간과 요동(agitation)을 고찰한 후에, 이러한 구체적 공간의 성취를 통해 활기를 띠면서 앞선 공간의 이력에 반향하고 이를 확장하고자 하는 두 가지 공간, 즉 경험의 공간과 저술의 공간으로 나아가면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