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를렌 하우스호퍼 · 소설
3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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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어느 날 갑자기 화석으로 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자,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기록!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더불어 20세기 오스트리아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장편소설 ‘벽’이 출간되었다. 1952년 마릴리라는 여자아이의 성정체성 갈등을 그린 단편 ?다섯 살?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장편 ‘한 줌의 삶’ ‘비밀문’ ‘우리가 죽인 슈텔라’ 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외받는 여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가의 대표작이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본질적인 작품이라고 말한 ‘벽’은 어느 날 갑자기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에 혼자 남겨진 여자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삶을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소설이다. 죽음보다 깊은 고독, 생존보다 가혹한 노동을 견디며 주인공은 자신처럼 벽에 갇힌 동물들을 돌보며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꾸리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순수한 삶을 영위해나간다. ‘벽’은 1963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어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핵전쟁에 대한 위기의식과 유럽을 휩쓸던 여성 문학 붐에 힘입어 1983년 독일에서 재출간되면서 ‘하우스호퍼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이는 하우스호퍼가 이 소설에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아남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위해 무한히 강인해질 수 있는 모성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암울함과 화사함,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고 있는 ‘벽’에서 생명을 낳고 생명을 보살피는 모성의 고통과 희열은 계절의 순환과 함께 무한 반복된다. 훈훈한 봄바람, 쨍쨍 내리쬐는 여름 햇볕,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천둥과 소나기, 젖소가 풀을 뜯는 초원의 냄새, 감자가 단단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 흰 눈이 덮여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는 혹독한 겨울…… 그 고요한 순환 속에서 어느 하루도 특별하지는 않지만, 또한 다른 날과 같지도 않다. 암소와 암고양이의 배가 불러오고 새끼가 태어나고, 새끼들이 죽어가고, 또다시 배가 불러오는 과정의 반복과 주인공이 그들을 보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는 감각들, 모성을 지닌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하우스호퍼는 이 작품으로 1963년 아르투어 슈니츨러 문학상을 받았다. ‘벽’ 속으로 사촌 내외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산장으로 휴가를 떠난 ‘나’는 도착한 날 저녁, 사촌 내외가 마을에 볼일이 있다며 나간 뒤 혼자 산장에 남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지난 밤 돌아오지 않은 사촌 내외를 찾아 나섰다가 적막한 숲 속을 둘러싼 투명하고 차가운 벽을 발견하고 그 안에 갇혀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밤사이 벽 바깥의 세계는 죽음의 폐허가 되었고, 모든 생명체가 돌처럼 굳어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어느 날 아침 갑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하듯, 벽이 생긴 원인이나 과정은 수수께끼로 남은 채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할 수 없이 개를 옆으로 밀치고 혼자 걸음을 내딛었다. 개가 길을 막는 바람에 내 걸음이 느려진 것은 다행이었다. 몇 발짝도 못 가 나는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룩스가 다시 킁킁거리더니 내 다리를 물고 잡아당겼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보니 무언가 매끄럽고 차가운 것이 만져졌다. 공기 이외의 다른 것이 있을 리 없는 곳에 매끄럽고 차가운 장애물이라니!(15쪽) 벽은 차단과 고립을 의미하지만 보호의 기능도 갖는다. ‘나’는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이었고 결혼 뒤에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던 주부였다. 늘 시간에 쫓기고, 고독과 공허에 시달리는 삶,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한숨 돌릴 겨를도 없는 삶을 살아온 ‘나’는 그런 사회(또는 현실)가 파멸한 것에 대해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사십 년 넘게 자신을 이루어온 세계와 단절된 가운데 ‘나’는 이제 산장지기가 키우던 룩스라는 사냥개, 초원을 헤매다 자신을 찾아온 벨라라고 이름 붙여준 암소, 새끼 밴 고양이와 함께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주인공이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고, 암소와 암고양이를 돌보는 삶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벽’의 존재가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벽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부숴버릴 수도 없는’ 삶의 조건 같은 것일 뿐이다. 벽으로 단절된 주인공은 처음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고 데리러 올 것을 기대하지만 머지않아 이를 두려워하게 된다. 벽에 갇힌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손도끼를 들고 나타난 낯선 남자로 인해 가족 같은 동물들을 잃고 사방에서 엄습해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쓰는 것이 즐거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쓰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 나를 생각하고 염려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길고 어두운 몇 달 동안의 겨울을 혼자 견뎌야 한다.(5~6쪽) 지금까지도 나는 그 낯선 남자가 왜 송아지와 룩스를 죽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휘파람으로 룩스를 불러세웠었다. 룩스는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다가 머리를 관통당한 것이다. 그 낯선 남자가 왜 내 동물들을 죽였는지 알고 싶다. (……) 11월이 되어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마지막 시도였다.(356쪽) 그로부터 넉 달 동안 ‘나’는 종이가 바닥날 때까지 사냥개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암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며 살아온 ‘벽’ 속의 날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땔감 마련하기, 암소에게 먹일 건초 마련하기, 암소의 젖 짜주기, 사냥하기, 감자밭과 콩밭 일구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한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에 따라 기록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벽 속에 갇히기 전 주인공이 딸로,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았던 지난 삶의 기억이 뜻밖의 깨달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로서의 벽 벽 이편과 저편은 문명사회와 자연으로 대립된다. 주인공이 갇힌 세계는 사냥을 위한 산장이 있는 숲으로 된 자연 공간으로 여기에 남겨진 문명의 흔적들은 점차 자연으로 대체된다. 가스관, 화물차, 송유관 등등. 이제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것들은 실용적인 물건 이상으로 우상화되어왔다. 이 산속 한가운데에도 그런 물건이 하나 있다. 후고의 검은 벤츠 자동차가 그것이다. 우리가 그 차를 타고 여기 올 때 차는 거의 새것이었다. 지금 그것은 수풀이 우거진, 쥐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287쪽)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대변되는 문명이 자연으로 대변되는 산에서 볼품없는 잔재만 남기고 있다. 낡고 쓸모없이 버려진 기술 문명의 산물들은 인간의 이룩한 문명의 종말을 상징한다. 또한 잡초에 뒤덮여 쥐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검은 벤츠는 남성 중심 문화의 해체를 알리기도 한다. 문명이 남성으로 대변된다면 자연은 여성성, 모성의 반영이다. 주인공은 문명에서 단절된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 ‘벽’의 주인공이 처한 고독의 상태는 외적으로는 로빈슨 크루소와 흡사한 것으로 ‘여성판 로빈슨 크루소’로 불리기도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가 기존의 사회를 긍정하고 문명사회에서 배운 지식들로 자연을 이겨나가는 것과는 달리 ‘벽’의 주인공은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자연의 요소들을 배워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문명사회의 상징인 손목시계와 자명종이 멈추자 시계는 매일 오전 아홉시경에 날아오는 까마귀 소리로 대체된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동물들의 이름도 종을 표시하는 정도의 이름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인공의 문명에 대한 거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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