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위태롭게 환상을 꿈꾸는 시대의 영화 읽기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들려주는 80편의 영화 이야기 그녀의 평론을 읽으면, 그 영화가 보고 싶다! 영화평론, 정치적인 영화적 순간들에 대한 공감을 언어화하는 작업 지금은 이미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국의 여러 영화감독의 가능성을 1990년대 초부터 일찍이 알아보고 평론해온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10여 년간 여러 매체에 발표한 대중적 영화평들을 집대성했다. 재난이 일상화된 ‘파국’의 시대에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사회, 문화적 움직임을 영화적으로 예견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피고, 아시아 영화 연구의 역할과 의미, 나아갈 방향과 함께 영화가 여성을 보여주는 방식을 모색하는 등 아시아 여성 영화인으로서 세계의 동시대 영화 80편에 관한 이야기를, 봉준호, 박찬욱, 허진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에릭 쿠 등 유명 감독과의 인터뷰 5편과 함께 방대하게 엮어나간다.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감정구조를 탐구한 비평집 와 함께 출간되는 이 평론집을 통해 독자는 이미 알고 있는 영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며, 치열하게 세계와 관계 맺는 각국의 귀한 영화들을 소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의 장르를 스릴러에서 공포로 바꿔 읽으면 달리 보이는 것,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지니는 편집.구성상의 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가 드러내는 인종주의적 허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김소영은 자신만의 앵글을 통해 80편의 영화를 들여다보며 블록버스터 관객과 시네필들의 지적 호기심을 한껏 충족시켜준다. 재앙의 스펙터클은 어떻게 관객을 현실로부터 눈멀게 하는가? ‘카타스트로프: 위태로운 희망 정치’라는 제목을 단 1장과 4장 ‘영화와 재난 사회: 남자의 몸은 부서지고, 하늘은 무너지고’에서 조명하는 영화들은 세계가 위기 상황에 봉착했음을 알린다. 미국의 9.11, 일본의 3?11, 아이티 대지진, 한국의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 너무 자주 일어나는 재앙에 우리는 어떤 면에서 익숙하다. 함께 출간된 저자의 비평집 가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비롯한 한국의 특수한 맥락에서 비상사태가 국가의 통치 수단으로 연출되었음을 진단했다면, 이 평론집에 등장하는 영화들에서는 좀 더 경고성이 강한 위기 상황을 읽어낼 수 있다. 그 위기는 전쟁, 테러, 기상이변, 국가폭력, 강력범죄 등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더 로드]에서처럼 뚜렷한 원인이 없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재앙은 일어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향을 상상해내지 못할 때 재앙영화는 이미 현실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보는 재앙의 스펙터클은 영화가 현실에 관한 이야기로 인식되기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전쟁영화를 통해 위기 상황이 잠재되어 있는 사회에서 재난이라는 비상(非常)은 어떻게 환상과 만나는지 분석한다. 가령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에서 직립 병기 T-800과 같은 판타스틱한 SF적 구성요소를 이용해 벌어지는 참상은 또다시 초현실적일 정도로 파괴적인 장관을 펼쳐놓는데, 관객은 곧장 이 환상적인 스펙터클에 눈멀어 재앙을 현실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재난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결정적인 파괴적 장면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호평하며, 그것이 매체를 통한 2차적 폭력이라는 또 하나의 참사를 막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분석한다. [두 개의 문]은 경찰이 철거민들과 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었던 곳에서 마치 테러 상황, 전시 상황과 같은 비상사태가 ‘연출’되고 사고의 책임이 거꾸로 철거민들에게 부과되는 과정을 증언한다. 다른 재난영화들과 달리 [두 개의 문]은 관객에게 스펙터클을 안겨주기 위해 사건의 피해자에게 2차 폭력을 가하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이다. ‘서구 vs 비서구’ 구도를 벗어나 아시아 영화의 지도 그리기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서 아시아의 인식론적 지도를 그리는 연구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는 저자는 아시아 영화,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 영화에 대해서도 책의 많은 장을 할애한다. 아시아인인 우리에게 ‘아시아 영화’는 그 이름 때문에 익숙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동시에 바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리라는 추정 때문에 오히려 서구인이 아는 만큼조차 아시아를 모르고 있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를 사유하는 영화연구를 통해 서구중심주의로부터 탈식민화할 가능성을 펼쳐놓는 글들이 이 책의 또 한 가지 주된 줄기다. 저자는 대만영화 국제심포지엄, 싱가포르에서 열린 허우샤오시엔 학술회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해외 영화인 초청 행사 등 자신이 참가한 동아시아의 여러 학술 심포지엄의 기록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아시아 영화 담론의 필요와 의미를 되짚는다. 저자는 아시아 영화의 비교 대상을 서구 영화에 한정해온 그동안의 관습에서 벗어나, 아시아 영화를 또 다른 아시아 영화와 비교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아시아 각국 영화인들의 상호연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도의 탈식민 이론가 디페시 차크라바티가 주장한 ‘유럽을 지방화하기’와 같은 기획은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실제로 아시아 내에서 상호간의 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2005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에 관한 학술회의 기록에서 아시아의 내셔널 시네마를 자국 비평가도 서구 비평가도 아닌 다른 아시아 국가의 비평가가 읽어낸 순간은 뜻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아시아 영화인 연대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기부터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저자가 아시아의 여성 영화인들을 초청해 서구중심적 페미니즘, 일본과 중국의 영토주의, 신유교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평론은 “정치적인 영화적 순간들에 대한 분석적, 정서적 지각, 공감을 언어화하는 작업”(12쪽)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우리가 손쉽게 접하는, 혹은 드물게 발견하게 되는 80편의 영화가 어떤 말해지지 않은 질문에 응답하고 있는지 풀어낸다. 영화 관람이라는 경험은 영화에 내재한 의미가 관객에게 투명하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가 던지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영화가 관객의 사회문화적 위치, 그리고 “미처 언어를 찾지 못한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트라우마”(247쪽)와 함께 얽혀 화학작용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한국, 그곳의 여성 영화평론가 김소영의 눈으로 보는 영화 한 편 한 편은 다른 이가 보는 그것과 결코 같은 것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