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이였다
여름특강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이였다”
온몸으로 겪어낸 여름의 투과성
투명한 통증이 일깨우는 선연한 믿음들
첫 시집 『맑고 높은 나의 이마』를 통해, 새로운 여름의 이미지를 출력하며 시인만의 맑고도 서늘한 서정을 인상 깊게 보여준 김영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이 출간되었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투명함’으로 거슬러 올라가 근원적인 이야기를 마주하며 헤어져 있던 의미와 재회하고 다시 또 이별하는 순간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한때 뒤돌아섰던 시간을 뒷모습으로 온전히 끌어안는 시인은 우리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시간들을 예리하게 감지한다. “길의 끝에 무엇을 두고 올까” 상실의 원점으로 돌아가 투명함 속에 엉켜 있던 내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명선’이라는 이름을 쥐고 헤아리는 오해와 이해 속에서 파다해지던 시간들이 여름으로 집합하며 투명함을 재구성한다. 우리는 그 투명함에 가려진 채로 시인의 건네는 새로운 풍경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투명이 가려낸 선연한 믿음들이 시의 언어로 세워져 있다.
“필기할 때마다 맨살이 닿았다”
투명함의 교집합—여름이라는 감각
시집 안에서 시인의 언어를 타고 흘러내리며 번지는 투명함은, 이번 시집을 열고 닫는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이다. 얼음의 윤곽처럼, 물방울의 속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고 가는 인기척처럼. 읽는 이마다 이 투명에 자신의 의미를 대입하며 시를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빌 수 없었던 시간의 안쪽까지 흐르는 시인 특유의 간결함은 ‘명선’과 ‘여름’의 교집합을 토대로 의미를 되찾고, 여집합으로 나아가 살아갈 시간이 되도록 다시 끈끈한 여백을 짓게 된다.
“필기할 때마다 맨살이 닿았다”(「청량」)는 밀접한 감각처럼, 시인의 여름은 몸에서 발화하는 또 다른 언어 중 하나이다. “개구리와 나는 땀을 흘리며 차가워졌다”(「개구리와 나」)는 사실은, 상상으로부터 그려온 여름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낸 여름임을 보여주며, 시인이 그려온 언어를 더욱 투명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여름을”(「방갈로」) 보듯 무심하기도 하면서 “모르는 사람의 텐트에서 수영복을 갈아입”(「방갈로」)고, 수영복 위에 겉옷을 입으며 겪게 된 마르지 않는 몸의 감각처럼 뜨겁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시인이 첫 시집부터 이어온 여름의 입체는, 살아냄의 통증처럼 몸에 입각해 있는 사실적인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여름은 생존의 기후이기도 해서 “사람은 여름을 위험하게 만든다”(「이터널」)는 사실을 잊지 않기도 한다. 살아 있게 만드는 인기척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경계 속에서의 이 ‘투명함’은 이번 시집 전반에 걸쳐 쏟아져 내린다.
첫 시집에서부터 시인이 예민하고 첨예하게 그려온 여름 이미지는, 이번 시집에서도 지속된다. 첫 시집이 상실의 자리를 복원하며 여름의 감각을 불러왔다면, 이번 시집은 상실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젖은 수영복 위로 겉옷을 입고 버스에 올라탔던 어떤 기억은, 시인이 언어 속에 간직하고 있는 몸이 마르지 않는 시간의 생경함이다. 우리는 이 여름의 기후를 함께 지나며 시인이 그 생경함으로 뒤바꿔 놓는 풍경에 함께 머물게 된다. 김영미 시인의 시로 하여금 우리는 그 낯선 여정 속에서 뒤돌아서 왔던 어떤 의미들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왜 명선의 모른 척을 모른 체했을까”
투명함의 교집합—명선에 대하여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는 2부를 구성하는 데 중심이 되기도 하는 ‘명선’이 시집을 읽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명선’이 누구인지에 대한 해석보다는 ‘명선’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그 서늘하면서도 가깝기만 했던 자리를 되찾아가는 화자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왜 명선의 모른 척을 모른 체했을까”(「어린아이의 신경증 같은」) 외면했던 한 시절로부터 걸어 나온 화자는 명선의 결혼식, 명선과의 산책, 명선과 함께 찍는 사진에 따라나서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지만, 그 떠올림은 ‘지금’이라는 자신의 투명한 자화상을 그리기 위한 중요한 재료가 된다. “우리의 토대가 즐겁지는 않지만”(「겨울의 내부」) 이 투명함의 가장 아래로 내려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듣는 명선의 마음이 어떻게 번져왔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된다. “우린 눈을 가리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기에”(「저녁의 마술쇼」) 알 수밖에 없는 진실은, 우리가 외면해왔던 어떤 시간을 정면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발문을 쓴 임승유 시인은 “우린 참 중간에 만났어. 그렇지?” 시인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이번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투명하게 무거운 말들 앞에서 울 것 같은 심정”이 드는 시인의 언어를 “‘말하는 여자’가 되어 말하지 않고도 다 말하는 방법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화자를 ‘말하는 여자’라고 호명하며 이번 시집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말을 듣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집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은 간결함 속에 벼려 있는 이야기와 행간에 스며들어 있던 여름의 이미지를 통해 생성된 투명함 속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보는 돌올한 여정이다. 살얼음처럼 아프기도, 막 태어난 유리를 만지듯 조심스럽기도 한 시간 속에 명선과 나, 명과 선이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복잡한 여름의 속내가 투명해지는 동안, 시인은 잊거나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마주하고 끌어안는 방식을 선택한다. 투명이 우리의 어떤 부분을 가려주었는지, 투명보다 더 투명했을지 모르는 여름의 입체 속으로 자신의 한 시절을 투신하며, ‘온몸으로 말하기’, ‘온몸으로 여름하기’를 실천하는 이번 시집의 땀방울은 마르지 않고 시의 자리마다 차갑게 맺혀 있다. 그 차가움을 만지면, 우리 안에서 얼어붙은 채로 살아가던 것들이 서서히 녹아가게 되고 투명한 여름의 국면에 서게 된다. 거기에는 시인이 “여럿이 혼자이지 않”(「여름비처럼 겨울비가」)길 바라던 어느 여름의 안부가 도착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