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모두가 저마다 정의로워서 아무도 정의롭지 않은 사회
32년 차 기자가 파헤친 대한민국의 무책임과 몰염치
“김희원은 끝내 원칙의 힘을 긍정한다.
그는 그 긍정을 위해 존재하는 저널리스트다.”
― 손석희 (전 JTBC 총괄사장)
정의가 넘치는 나라, 한국이다. 모든 이가 저마다 자신의 정의를 내세운다. 자기만의 진실, 자기만의 도덕을 사수한다. 그래서 결과는? 심판과 비토, 비방과 린치, 끊임없는 내로남불의 악다구니가 우리 사회와 정치를 집어삼켰다.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에 관한 고발과 특검이 난무하고, 상대를 적(敵)으로 규정하는 혐오와 냉소가 온 사회에 일렁인다. 한국의 제도권 언론인들과 저널리즘은 철저하게 불신받는 중이다. 그 틈을 비집고 탄생한 사이버 레커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물어뜯으며 돈을 번다. 4년 넘게 ‘김희원 칼럼’을 연재하며 당대 최고의 글쟁이, 우리 언론계의 독보적인 칼럼니스트라 불리고 있는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김희원은 바로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그는 32년 차 기자의 눈으로 우리 사회의 무책임과 몰염치를 낱낱이 파헤친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어느 진영에도 기대지 않는다. 당연히, 자기 자신이 속한 언론계를 비판하는 데도 여념이 없다.
김희원은 이 책에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들 떳떳한지”를 묻는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묻는다. 전국민적 불신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범법과 준법의 선을 줄타기하며 정당을 방탄으로 이용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성하지 않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게, 윤석열 정권과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묻는다. 끊임없이 실패하는 기성 언론의 기자들에게 묻는다. 음모론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김어준과 가로세로연구소에 묻는다. 이준석과 홍준표에게 묻고, 유시민과 강준만에게 묻는다. 김희원의 서슬 퍼런 질문을 받는 대상은 정치인과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희원은 부동산 한탕주의에 적당히 눈을 감고, 이 사회를 지탱하는 육체노동을 은근하게 멸시하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팬덤 정치를 지탱하는 시민에게, 사이버 레커 유튜버들을 슈퍼챗으로 응원하는 시민에게,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해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시민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당신들은 누군가의 과오를 자신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건 아니냐고. 당신들은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성찰적인 자세와 지적 성실함을 잃어버린 건 아니냐고.
김희원은 2005년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며, 2013년 사측에 의해 뉴스룸이 폐쇄됐던 ‘《한국일보》 사태’를 겪으면서 벼랑 끝의 처지에 몰렸던 바 있다. 황우석이 국가 영웅으로 추앙받던 때 주위의 많은 사람이 “왜 잘 나가는 사람 곱게 봐주지 못하느냐”며 자신을 탓하거나, 사측에 선 뉴스룸 간부들이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와 노조를 없애야 할 적으로 취급하는 일을 직접 겪었다. 그래서 김희원은 단언한다. 비겁함은 죄라고. 반성하지 않고 자기 몫의 판단과 결정을 미루거나, 자신의 원칙을 조금씩 포기하며, 자기 진영과 지지자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죄라고. 누구나 그런 ‘쉬운 길’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오염된 정의』는 그처럼 모두의 정의와 진실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남은 건 ‘오직 우리만이 정의이고 대의’가 된 이 불우한 사회를 샅샅이 파헤치는 책이다. 30여 년간 뉴스룸을 지켰던 김희원은 뼈아프게 고백하고, 대담하게 비판한다. 정교한 분노의 언어를 벼려낸다. 위축돼 가는 ‘상식과 원칙의 편’에게 말을 건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지는 것이라는 거듭 강조한다. 끝내 우린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
한국 사회는 왜 내로남불에 포위되었는가?
저널리스트 김희원이 한국 사회의 비겁함에 주목하는 이유
30여 년간 뉴스룸에서 벼린 단단한 사유와 언어
한국에선 아무도 기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고 진실 규명에 기여해 대한민국과학문화상, 한국여성기자협회 올해의 여기자상,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기자상 등을 수상했던 김희원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의 칼럼을 읽고 자신을 신뢰해서 만난 어느 변호사가 “기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로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엉망인 기사를 쓰고서도 ‘데스크 지시’라는 핑계를 대며, 취재원 보호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았던 기자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기자뿐이랴. 현직 대통령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공당의 대표들은 검찰과 법원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검사들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병원의 의사는 어떻고, 학교의 교사는 또 어떤가. 군의 지휘관들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을 덮으려 안간힘을 쓴다. 우리 현대사를 진전시켰던 ‘민주인사’들은 줄줄이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편법적인 재산 증식 혹은 자녀의 입시 비리를 고발당했다. 사회의 법과 질서, 기틀을 잡아야 할 ‘보수의 아이콘’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귀 기울이거나 여성가족부 폐지에 동조하면서 동성애 혐오를 이어간다. 우리의 공론장엔 오로지 냉소와 비방, 파괴적인 공격만 남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체 누구를 존경해야 한단 말인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한결같이 유지하는 떳떳함이다. 권력을 가졌거나 자신의 스피커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다들 상대편을 악마화하며 모든 게 다 ‘네 탓’, ‘저쪽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김희원에 따르면, 그것은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지적인 나태이며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은 죄가 없다고 강변한다. 한 점 부끄럽지 않으며 당당하다고 잡아뗀다. 진영에 따라 무수히 다른 진실과 도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정의는 그렇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
위선과 냉소, 혐오와 탈진실의 시대를 뛰어넘는 법
그렇지만 그로 인해 온 사회에 만연한 냉소와 내로남불의 분위기는 이들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편적 정의와 진실을 내팽개치고 모두가 서로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는 상황에선, 심각한 허물이 있는 이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겐 도리어 더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와 언론을 비롯한 모든 공적 영역에 스며든 ‘정의의 오염’, 탈진실의 비극은 우리의 목전까지 차올랐다. 199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뉴스룸을 지켰던 김희원은 이처럼 정의와 진실이 송두리째 사라진 한국 사회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김희원은 “비겁함이 죄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의 첫머리를 연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직분과 책임을 다하다가 좌천되었던 관료들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가 한 사람의 사회인이자 직업인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는 게 때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털어놓는다. 저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과 2013년 ‘《한국일보》 뉴스룸 폐쇄 사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사건들의 회고로부터 책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등장한다. 정의는 힘들게 승리하고 진실은 가까스로 밝혀진다는 게 그것이다. 정의와 진실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타성에 젖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그저 기계적으로만 수행한다면, 때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누군가의 고뇌와 결단이 없다면, 거기에서 이 사회의 비극이 시작된다. 1,258명의 무고한 죽음을 낳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