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감정과 에너지가 폭발하는 곳, 무대
음악과 춤, 이야기가 있는 곳, 그 위에서 에너지와 감정이 순간 폭발하고 머물다 사라지는 곳, 그렇기에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배우, 스태프, 연주자, 관객만이 가질 수 있는 기억과 감정, 경험이 공유되는 곳이 바로 무대다.
저자는 바로 그 무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정과 진중한 생각들을 골라 담았다. 무대 위의 감동뿐 아니라 무대 뒤 스태프들의 진땀 나는 순간들, 또 커튼이 내려지고 난 뒤에 흐르는 안도와 성취의 공기들도 충분히 전한다. 음악의 길로 들어선 후로 맞닥뜨린 갈등과 고뇌의 순간들, 그 결과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은 깨달음들 또한 단정한 글로 써내려갔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겪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무대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위의 황홀한 순간이나 찬탄할 수밖에 없는 빼어난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위에서 일하는 이들의 기쁨과 슬픔이 소중하게 담겨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에 관한 글, 아니 <돈 조반니>를 공연을 무사히 올리기 위한 스태프들의 백스테이지 이야기가 특히 그러하다. 런던에서 공수한 무대세트가, 클라이맥스에서 터져야 할 불꽃이, 승강기가, 공연에 올라야 할 배우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를 관객들은 전혀 알지 못하도록, 오로지 완벽한 공연을 즐겼다 느끼도록 스태프들이 동분서주한다. 그것이 쇼이기 때문이고, 쇼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며 배우와 스태프가 만나는 대본 리딩 날 풍경, 오페라 자막을 고르고 고르는 그린룸 풍경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커튼 뒤, 무대 뒤 내밀한 이야기의 매력이, 자기 일에 흠뻑 빠져 몰두하는 이들의 매력이 이 에세이에 담겼다.
‘정답’을 찾아 떠나온 길에서 발견한 것들
이 책은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사랑을 찾아 돌고 돌아온 한 사람의 긴 여정의 기행문과도 같다.
저자는 과학도의 길을 착실히 걷다 돌연 음악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바꾼 경로를 따라 공연 기획 일을 하다가 또 오페라를 공부하러 유학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전혀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기억과 경험으로 삶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발견한다.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휘청거리더라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도, 스스로를 믿어주고 천천히 내 이야기를, 내 세계를, 나만의 바다를 만들어 넓혀가겠다는 결심도 방황과 고뇌 속에서 얻은 결론이다. 누구나 생에서 거듭 겪을 이 좌충우돌 이야기를 저자는 무대 위에서 만난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 등과 교차하며 글의 깊이를 더한다.
절벽이 아니라 넓게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두었다면 물속으로 뛰어들 때 큰 결단이 필요하긴 해도 의외로 할 만하다. 순간적으로 바짝 마음을 굳게 다지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음은 도약 이후로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물이 깊어지고 뜻밖의 해류를 만나 휘청이게 되더라도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을 간직할 때라야만 우리는 헤엄치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_‘내가 속한 곳을 찾아’,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