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와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동료들에게
자신만의 파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그 위에 올라타는 용기를 보여준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고
그는 내 손을 잡아준다. _김지은(문학평론가)
“너에게 어떤 말을 주었는지 내가 알고 있으니까.
기억하니까.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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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바라지 않는 편지가 실어 나르는 용기와 긍지의 마법,
너와 나의 어린 시절을 빛낸 단 한 사람의 이야기
여성, 퀴어, 노동을 소재로 디저트와 차처럼 달콤쌉싸름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조우리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이어달리기》는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서로를 이모와 조카로 칭하는 중년 레즈비언 ‘성희’와 일곱 명의 여성 이야기다. 성희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 보탬이 되는 미션 편지를 보내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면서,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든든한 삶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편지에 담긴 미션을 수행하며,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배우고 공유하는 정서적 공동체를 이룬다. 소설 일곱 편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좋은 어른’이자 ‘좋은 이모’가 되고 싶은 성희의 따뜻한 입김과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성희는 ‘살아서 하는’ 자신의 장례식에 조카들을 초대해 장례식 준비와 진행을 맡기며 마지막 미션을 수행한 그들에게 유산을 나눠 준다. 혈연과 세대를 초월해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 선뜻 손을 내밀며 세상의 선의와 연대를 몸소 보여준 그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갈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어린이들에게, 이미 나와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동료들에게. 나보다 더 어른이 된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지금의 나보다 덜 어른이었던, 그리고 아이였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성희 이모가 자신이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대신 해주었다. _작가의 말에서
첫 번째 미션: 폐업 위기에 놓인 가게 ‘엘리제’를 구하라!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 혜주는 성희의 친구 수진의 딸로, 인턴으로 근무하던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 불가 통보를 받는다. 같은 날 성희의 마지막 미션 편지를 받는데, 미션의 내용은 바로 성희의 추억이 깃든 장소인 ‘엘리제’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의 독후감 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미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과 당돌함을 습득한 조카로서, 성희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머리를 꽁꽁 싸맨다. 혜주는 미션을 성공해 유산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성희는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을까?
두 번째 미션: 정성을 다해 유기 거북을 돌보라!
〈고요한 생활〉의 주인공 수영은 어릴 때 성희의 옆집 이웃이었으며 보습학원 국어 강사로 일한다. 외동인 데다 부모가 집을 오래 비우는 바람에 극심한 외로움을 견디는 수영을 위해, 성희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도 “우린 헤어지는 게 아니야. 언제나 연결되어 있을 거야”라고 말하며 줄기차게 편지를 보냈었다. 수영은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린이에서, 정이 들기 전에 학원과 집을 주기적으로 옮기는 어른이 되었다. 그는 어느 날 거북을 돌보라는 뜬금없는 미션을 받는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성희는 왜 수영을 적임자로 지목했을까? 수영에게 주어진 미션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 번째 미션: 장례식 손님에게 알맞은 커피를 대접하라!
〈둘 둘 셋〉의 주인공 지애는 성희의 애인이었던 주현의 진짜 조카다. 셋이서 놀이공원을 갔다 온 이후로 성희에게 미션 편지를 통해 “펜팔을 가장한 후원”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성희 덕분에 “어린 시절에 만난 어른이 보여준 태도가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지애는 카페를 운영하며 어린이 손님을 존중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열세 살 생일이 지나고 성희가 데려간 음악다방에서, 취향을 가진 어엿한 손님으로 대접받은 경험이 그의 가치관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지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곁에는 어떤 어른이 있었는지, 나는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네 번째 미션: 장례식에서 성희 이모를 보고 웃어라!
〈쿠키가 두 개일 때〉의 주인공 예리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의 딸로, 이웃 피자집에서 일하던 성희와 어울려 새우 피자에 담긴 사랑을 듬뿍듬뿍 받으며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피자집이 문을 닫고 성희는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졌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아기자기한 미션 편지로 줄기차게 이어졌다. 성희의 마지막 미션 편지는, 예리가 영사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뒤 첫 영사실 근무를 마친 날 도착한다. 오랜만에 보는 이모를 반가워하며 웃어달라니…… 예리는 참 실없는 미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성희의 장례식에서 최선을 다해 배우처럼 웃음 연기를 해야 함을 깨닫는다. 자신의 유년에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준 존재의 죽음 앞에서 예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섯 번째 미션: 성희의 장례식 사회를 맡아라!
〈구르는 재주〉의 주인공 태리는 P그룹 빌딩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며 프로 작사가를 꿈꾸지만, 가사가 채택되지 않아 낙방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성희는 태리 엄마의 직장 동료였고 초등학교 체육 시간의 앞구르기 시험을 준비하는 태리에게 끈기와 용기를 심어줬다. 태리가 999번째, 1000번째 낙방에도 이를 악물고 계속 작사에 도전하는 모습에서, “넘어질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다 넘어”지고 결국 시험을 통과한 어린 태리가 보인다. 성희는 태리의 돌잔치에서 자신이 사회를 봤듯, 태리에게 장례식 사회를 부탁한다. 혈연이 아닌 애정으로 이어진 조카와 이모의 삶과 죽음이 아름다운 마법처럼 맞물리는 작품.
여섯 번째 미션: 중학생 서퍼인 지민의 하와이 여행에 동행하라!
〈파도가 온다〉의 주인공 소정은 6년 차 교양국 소속 방송 피디다. 새엄마의 동생인 성희를 따라 다른 조카들과 스키장에 간 경험을 계기로, 청소년 스키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성희의 미션으로 지민의 해외여행 보호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큰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의 병실을 매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성희였다. 그의 정성 어린 응원과 지지로 소정은 방송 피디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 것이다. 성희에게 난관을 헤쳐가는 힘을 배웠듯, 소정은 지민이 서핑 대회에 참가해 자신만의 파도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도움받던 사람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돕게 되는 순간이 하와이의 해변처럼 눈부시게 펼쳐진다.
일곱 번째 미션: 배턴 터치에 성공하라!
〈배턴 터치〉의 주인공 아름은 몸이 약해 소아병동에 입원했을 때 옆자리의 보호자인 성희를 만났다. 성희는 아름이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얘기를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아름은 다른 조카들과 달리, 배턴을 받기만 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건네보라는 똑같은 미션을 계속 받았고 그때마다 ‘배턴 터치’를 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에선 친구들이 비밀과 고민을 털어놓는 대상이었으며, 직장에선 동료의 푸념을 잠자코 들어주는 ‘인간 대나무숲’일 뿐이다. 마지막 미션으로 또다시 ‘배턴 터치’를 해야 하는 아름은 이번엔 미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미션의 보상으로 무엇을 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