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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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만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스승에게는 예를 갖추어야 한다. 애인 사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가족은 서로를 아껴야 한다. 하지만 스승이 승부를 조작해 나를 거꾸러뜨리고, 애인이 대놓고 나를 짐짝 취급하고, 가족이 진심으로 나를 깎아내리려 든다면 어떨까. 《사뭇 강펀치》의 주인공들은 말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보다는 그들의 태도를 보라고. 저쪽이 나를 몰아내려 한다면, 주먹에 힘을 실어 자신을 지키라고. 주인공들이 이길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사뭇 강펀치〉의 현진은 비인기 종목인 복싱에 투신한 중학생이다. 흙수저에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 복싱만이 살길이라 생각했는데, 하필 감독을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기를〉 속 주인공 주리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자기 삶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싶어도 당장의 생활고 해결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앙금〉의 미진은 대학원생이지만 경제력 면에서는 주리 못지않다. 그가 취업에 서른다섯 번 실패하는 사이, 쌍둥이 동생 미단은 전문대 졸업 후 일찌감치 취업해 대리 직함을 달았다. 밥만 축낸다는 동생의 비아냥을 듣는 것이 미진의 일상이다. 일상에서 함께 부대끼는 사람의 공격은 치명적이다. 그들은 나의 약점을 알고 있으며 나와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래도록 나를 비난하는 논리를 들은 나머지 그들의 평가를 내심 수긍할 정도다. 설재인 작가는 해묵은 상처 때문에 자기 비하와 자기방어를 오가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펼쳐 놓는다. 비밀 일기장에 적은 문장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내 마음 같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나라한 속내를 드러낸 표현들은 차라리 시원하다. 홀로 링 위에 설 때쯤이면 다 괜찮아진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주인공들은 자신의 전력을 잘 안다. 무작정 홀로 덤비는 대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지금은 나를 돕는 이들도 언젠가는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깨달음 뒤에 해야 할 일은 홀로서기다. 현진과 주리와 미진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람에게 선사할 ‘사뭇 강펀치’를 몸소 마련해 나간다. 힘을 갖고 나면 타인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학생에겐 세상의 전부인 학교가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좁은 세계인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과 결과에 영향받을 사람의 존재도 차츰 눈에 들어온다. 그의 손을 맞잡을 수도 있고 그를 이해하려 애쓸 수도 있다. 또는 손을 뿌리쳐도, 더한층 싫어하게 되어도 괜찮다. 어느 쪽이든 스스로 골랐다면 이후의 일은 감내하면 그만이다. 이 모든 과정을 스포츠 경기 생방송 볼 때처럼 집중하며 읽게 하는 원동력은 단연 현장감이다. 거짓된 느낌과 모르는 경험은 결코 전하지 않겠다는 듯한 작가의 태도는 어쩌면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체육 성적 최하위를 면치 못했던 작가는 현재 7년 경력의 복싱인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싸우는 이들이 무엇을 겪고 느끼는지 잘 알기에, 그토록 생생한 언어로 세 편의 이야기를 가득 채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