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강간, 학살, 고문, 생체 실험, 영아 살해……
전쟁터에서 잔악무도한 ‘악인’이 되어간 전범들
그들은 왜 그토록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악이란 과연 무엇인가?
악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악행을 막을 수 있는가?
국제인권도서상 수상
《매클린스Maclean’s》 선정 올해의 책 20
《프로스펙트Prospect》 선정 올해의 책
처음 강간을 했을 때 어떠셨어요. 느낌이 어떠셨어요?
거기엔 느낌이라고 할 게 없었어요. 그저 ‘해보고 싶다’라는 거였죠. 그게 다예요.(39쪽)
위안소는 돈이 들잖아요. 강간은 한 푼도 안 들고요…… 우리는 돈이 없어서 위안소에 가지 않은 거죠. 강간은 공짜니까. 그래서 전선에 가면 반드시 강간을 했죠. “몇 번이나 했어?” 이런 식으로 서로 말하곤 했어요. “나는 두 번 했어” 아니면 “나는 세 번 했어”라고 하면서요. 거기에서도 일종의 경쟁의식이 생겨나곤 했어요.(42쪽)
군인들 셋, 다섯, 여섯이 같이 여자를 끌고 가서 손과 다리를 꼼짝 못하게 잡고 다리를 벌리게 한 다음 막대기를 쑤셔 넣었어요. 막대기를 안에 넣었죠. 그런 다음 여자를 죽였어요.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42쪽)
그런 종류의 (생체) 수술 실습이 네다섯 〔기침〕 차례 진행되었어요. 처음에는 역겹게 느껴졌어요. 자신감이 없었죠. 두 번째에는 난, 두 번째에는 괜찮았어요. 세 번째 정도 되어서는 앞장서서 세심하게 계획을 세웠어요. 한번은 내가 계획해서 그런 식으로 스무 명을 훈련시켰어요. 그리고 헌병을 불러서, 헌병을 불러 수술 실습을 보여줬어요. 그런 것도 했죠.(55쪽)
상관들은 군인들에게 사람을 죽이는 훈련이 필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 몇 명, 한 열 명 정도를 끌고 왔어요.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모두 나무에 묶어뒀어요. 그들을 나무에 묶어둔 채 우리 중 열 명 정도를 나무 앞에 길게 줄지어 세웠어요. 그런 다음 “중국 놈들을 죽여라”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사람을 찔러요. 아마 서른 명이나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다 함께 칼로 찔렀을 거예요. 부대로 돌아가서 우리 중 절반 정도는 음식을 먹지도 못했어요. 저도 그랬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칼에 찔린 시체 모습이 떠오르면 음식을 먹을 수 없었죠. 그게 사실이에요. 그러고는 익숙해져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 익숙해지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걸 하면 실적이 올라갈 거야.”
〔머리를 베는 데〕 익숙해지지 않으면 당연히 손을 떨게 돼요. 그러면 머리를 다 베지도 못하죠. 그 중국인은 머리가 다 잘리지 않은 채 고통으로 몸부림치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칼로 찔러 죽이게 되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찌르게 되죠. 두 번, 세 번 하다보면 요령이 생겨 강인해져요. 이제 아무 문제없이 해내게 되는 거죠.(108쪽)
서둘러 갔더니 구덩이에…… 아…… 어머니와 아이가 있었어요. 〔소대장이〕 “구보테라 이등병! 사살해!”라고 소리쳤어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소대장의 명령에 불복종할 수는 없어서…… 흠…… 그들에게 총을 쐈어요.(109쪽)
모두가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의견이 없는 사람, 즉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건 몸이 순식간에 명령을 수행하는 거죠.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군대에 가면, 아까도 말했듯이 신병은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병훈련에서 훈련받은 대로 몸이 이성을 뛰어넘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거죠…… 결국 선생님이 물어보았던 것처럼 쾌락이 되는 거예요. 〔불명확함〕 이를테면 사람들을 집에 가둔 채 불을 지르고 불타는 걸 지켜보는 거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고, 잔인한 쾌락이죠.(125쪽)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에서 악마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때 의사였고, 철학을 전공한 교사였으며, 농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을 강간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난징에서만 30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생체 실험을 하고(731부대에서 가장 나이 어린 실험 대상은 세 살짜리 유아였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심지어는 아이들까지 살해했다.
그들이 처음부터 ‘악한 사람들’인 건 아니었다. 일본 사회에서 그들은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일본군 고참들이 그들에게 ‘살인’을 하라고 지시했을 때 그들은 멈칫대며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차례 성공하자,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더 나아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진급”을 하기 위해 스스로 앞장서서 잔혹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 책은 잔혹함에 대해 다룬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잔악무도한 가해자가 되는지를 분석한다. 하지만 저자는 쉽고 간편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뻔한 교훈을 얻고자 하지도 않는다. 전범들을 ‘악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그들이 한 행동은 ‘모두 나쁘다’고 결론 내리며 그들을 역사의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식으로 글을 전개해나가지 않는다. 그는 통찰의 방향을 전환해 악의 잔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행위가 ‘악의 포르노그래피’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악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라고만 치부하면 악을 꾸준히 발생시키는 구조적 특징을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을 악마로만 규정해버리면 단순히 증오하는 것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악에 대해 성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을 타자화하면 결국 타인을 악으로 만들게 된다.”
대신 저자는 그런 악이 이미 일어났고, 더욱 중요하게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그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가?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조직적, 구조적, 심리적 과정은 무엇인가? 왜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잔악무도한 일이 발생하는가? 악한 사람들이 대개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대량학살의 폭력에서 젠더는 어떤 역할을 할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철학, 심리학, 사회과학, 문학 등 다양한 문헌을 검토하며 ‘악의 개념’을 설명하는 이 책은 악한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런 질문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사유로 나아간다. 그 밖에 가해자의 증언, 인권, 트라우마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등도 담겨 있다.
이 책은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 회원들의 인터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은 전쟁 후 소련의 시베리아 수용소에 투옥되었다가 몇 년 후 중국 푸순 수용소에 인도된 전범들이었다. 시베리아 수용소는 비인간적이고 잔혹했던 데 반해, 푸순 수용소는 포로를 손님처럼 정중히 대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잘 먹고 잘 지냈으며, 사상 개조를 경험하기도 했다. 1956년 중국에서 마침내 군사재판이 열렸고, 그곳에서 사형될 거라 믿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석방되어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푸순의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귀국 후 그들은 1957년 중귀련을 결성,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더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책의 인터뷰도 그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악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대량학살genocide’이란 용어는 홀로코스트 이후에 만들어진 말이다. 물론 홀로코스트 이전에도 대량학살은 있어왔다. 이를테면 아테나가 멜로스를 침략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