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시문학의 정통 계승자
프랑스 시인 이브 본푸아는 보들레르와 랭보, 말라르메의 뒤를 잇는 시인으로, 오랫동안 프랑스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주목받았다. 또한 첫 시집 머리글을 헤겔의 『정신 현상학』의 한 구절로 대신할 만큼 독일 관념 철학에 정통한 시인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자연스레 생과 사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시의 주제로 삼곤 했다. 그 결과 그의 시집은 지극히 난해하고 다의적인 텍스트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 철학자 시인의 언어와 육체
이브 본푸아의 첫 시집 『움직이는 말, 머무르는 몸』은 한 편 한 편 읽는 시가 아니라, 시집 전체의 구성을 참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본푸아에게 시란 세계의 이러저러한 단면들의 미메시스(모방)도 아니고 감정의 토로는 더더욱 아니며 일종의 시적인 형식으로 써내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1부의 시들은 1에서 19까지 번호만 매겨진 무제 시편이다. 드라마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시상을 전개했다. 2부 '마지막 몸짓'에서도 이러한 연극성은 계속 유지된다. 여기에는 「나무들에게」,「유일한 증인」,「진정한 이름」, 「불사조」등 죽음의 상황을 연출한 아홉 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3부 '두브는 말한다'는 아예 주연 배우 '두브'를 등장시켜 독백하는 형식을 취했다. 2부가 죽음의 상황을 보여 줬다면, 3부는 '두브'의 목소리를 빌어 부활을 노래한다. 죽음의 비애를 애써 감추는 듯한 두브의 목소리는 삶과 죽음의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4부 '오랑주리'는 도롱뇽을 통해 죽음 속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도룡뇽은 부동(不動)과 동(動)-죽음과 삶-사이에서 표류하는 인간의 불안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5부 '진정한 장소'는 본푸아의 시 쓰기와 시를 정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여기서 '진정한 장소'는 시(詩) 또는 '시 쓰기'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원작 시집명을 직역하면 ‘두브의 운동과 부동에 관하여’가 될 것이다. 때문에 2001년 이 시집을 처음으로 번역 소개할 당시에는 『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라 번역하였다. 그런데 본푸아는 움직임과 머무름 외에 ‘언어’와 ‘육체’도 이 시집의 두 기둥 테마로 여겼다. 이 모두를 강조하기 위해 개정판에는 제목을 『움직이는 말, 머무르는 몸』이라고 바꾸어 번역하였다.
1973년 시작한 역사적인 <세계시인선>
43년간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온 시리즈
민음사 50주년 기념 리뉴얼 발간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 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 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품은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