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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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나의 오래된 숙제라면 나는 이 바다의 이름을 무어라 붙여야 할까” 나의 말이 너에게 닿기를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에게 손을 뻗으며 많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희망 없는 세대와 미래 없는 시대를 사유하는 작가 박솔뫼가 네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를 펴냈다. 다섯 권의 책을 내는 동안 박솔뫼는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에 네 번 선정되었으며 문지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소설에서도 박솔뫼 특유의 ‘쉼 없이 흘러가다가 익숙해질 무렵 덜컥 변하는 리듬 같은 문체’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공간”(금정연)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머리부터 천천히』 속에서 발밑을 디딘 공간이 어디인지 모르고 “흘러가버리는 사람들”, 세계를 헤매는 점 같은 존재들은 자신들이 지도 위에 그리는 선이 영영 겹쳐지지 않는다 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이야기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거한다. 사실 박솔뫼의 소설과 ‘세대’나 ‘시대’ 같은 거창한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시제가 증발한 시공간과, 어디에서든 하루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표지판(묘비명)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저마다의 역사인 ‘기억’으로 시간과 공간을 증언하는 사람과 사물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주 당연하고 평평하게 바로 그렇게” 전하는 문장들의 “어디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의 선명함”이 박솔뫼의 이야기를 ‘오늘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현대문학이란, 재현이라는 배우를 위해 문학적 평면의 무대를 제공하던 언어가 스스로 배우가 되는 순간에 성립된 것이라고 이해한다. 대신 문학은 그만의 물리학을, 즉 텍스트의 물리학을 지니게 되었다. 박솔뫼는 문학적 텍스트의 물리학에 걸맞은 사교의 양식을 보여준다. 이것을 텍스트 소셜리즘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사교주의’, 이는 이름들 간의 무한한 사교의 양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모색하는 문학적 실천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_유운성(영화평론가) 지도 위를 걷는 사람들 『머리부터 천천히』에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헤매는 ‘어떤 세계’가 있다. 세계와 어떤 세계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우경은, 혼수상태에 빠져 ‘어떤 부산’을 맴도는 옛 애인 병준을 계기로 ‘부산’을 걷게 된다. 소설은 총 여덟 부분으로 나뉜다. 01의 화자는 ‘나’이고, 02부터 04는 각각 번갈아 우경과 병준의 이야기다. 05, 06은 병준, 07은 우경, 08은 다시 병준이 화자인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먼저, ‘나’의 이야기가 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났다 하는 아버지”는 정신이 들 때마다 “속리산에서 빨래를 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내게 그걸 꼭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버지 “자신의 소설이지만 자신도 모를 수 있”는, “길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다. ‘나’는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병준’은 큰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중환자실 뒤쪽 벽에 붙어 있는 큰 세계지도 위에는 환자들의 이름이 씌어져 있다. 온 세계에 점점이 찍힌 이름은 환자들이 어떤 도시에 머물거나 헤매고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병준의 이름은 몇 개의 점이 되어 ‘부산’과 ‘오키나와’ 두 곳을 맴돈다. “시제가 지워진 시간”(금정연)이자 시간이 뒤섞인 공간일 ‘그곳’은 거의 늘 여름이며, 카프카가 “혼자 흑백 화면 속에 종이처럼 앉아 흑맥주를 마시고 있는” ‘더블린’이라는 술집이 있고, 중앙동 노천카페에서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함께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공간이다. 대체로 “8,90년대의 모든 번화가”를 형상화한 듯하며, “여러 번 접어 만든 동서남북 같은 형태”로, “이 세계인 듯하지만 곧 다른 면을 보여주”곤 한다. “아무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아서 이곳이 어디일까 이곳의 이름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야만 했”던, “발을 디디면 금세 다른쪽 면으로 바뀌어버리는” 그곳은 원래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길을 걷다 보면 도달할 수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무리 걸어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뒤로 ‘여름의 부산’과 멀어져 오래 걷던 병준은 한 주유소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도미’와 ‘전구’ ‘물고기’와 단발머리 ‘여자애’를 순차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도착한 ‘어떤 국제’는 남자와 여자, 전구라는 사물과 물고기라는 이종의 생물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의 국제시장과 오키나와의 국제거리와 그리고 모든 국제들, […] 전혀 다른 곳 같지 않을 것 같은 모든 국제들의 길과 역 상점과 풍경, 바람과 그런 것들. 실제로는 다들 제각기 다른 표정이겠지만” 병준은 ”어떤 국제라는 곳을 마치 종로를 혜화동을 산책하듯이” 활보한다. 한편, 5년 전 병준과 헤어진 옛 애인 ‘우경’이 병준의 보호자로 중환자실을 드나들고 있다. 병준이 가족과 오래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자신과도 몇 년 전 완전히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어째서 자신이 병준의 보호자가 되었는지는 우경도 모른다. “아무런 성격도 능력도 추악함도 치졸함도 보이지 않”고, “기계를 통해 숨만 겨우 쉬고 있는” 병준을 “이전처럼 커다란 감정은 없지만 아주 아무런 마음도 없다고 할 수 없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심정으로 매일 면회하러 오던 우경은, 주말에 시간을 내 병준의 이름이 적힌 지도 위 장소들 중 부산의 작은 동네부터 찾아가보기로 한다. “병준은 우경을 걸어가게 하고 있었다. 좀더 먼 곳으로. 그 먼 곳은 전적으로 거리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이어지는 길들을 걸었다. 보이는 모든 골목에 들어갔다. 우경은 스스로가 정말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걷는 것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서로를 증언하는 존재들의 ‘이야기’ 지금의 자신도 지금의 자신이 손잡고 있는 많은 것들도 그랬다. 매일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고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거기서 또 연결된 각종 연락 수단들은 의외로 마음먹으면 간단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텅 빈 계정들이 누추하게 남아 있겠지. 아니면 그것조차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p. 80) 겨울이 딱 하루 있는 그 세계, ‘여름의 부산’에서 누군가가 말했듯 춥다는 것의 의미가 입을 열지 않고 “비밀과 함께 죽어가는 것”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행동은 죽어가는 존재가 춥지 않도록 돕는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자의 그림은 훌륭하지만 이덕자는 조용하고 깨끗하지만 누구도 이덕자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덕자는 죽고 이덕자는 너무 조용했으니까.” 그렇다.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있었던 누군가나 무언가에 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질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아주 쓸쓸한 기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병준과 우경은 헤매고 머물다 누군가(혹은 무언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듣는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 잊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란 이 소설에서 ‘벌판에 “이름”을 붙이고 “표지판”을 세워놓는 일’이 된다. “우리는 가장 적합하고 알맞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인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게 될까.” 『머리부터 천천히』에서는 또한,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들 역시 그곳을 거쳐가는 사람들과 함께 사건을 경험하고 시간과 기억을 나눠 가지며 살아간다. “침대가 된 이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내 위에서 죽어버렸다”고 괴로워하는 중환자실의 침대와 의자 위에 앉은 사람들의 악몽을 함께 꾸는 보호자 대기실의 의자가 거기 눕고 앉았던 사람들에 공감하고, 대도시 구도심 오래된 국숫집 화장실에 달려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