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는 마녀가 등장하지 않는 마녀에 대한 극을 쓰고 싶었다. 악, 히스테리, 악마에게 사로잡힘에 대한 극이 아니라 가난, 멸시와 편견, 그리고 마녀로 몰린 여자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극 말이다.” _124쪽. 〈작가의 말〉 〈비네가 톰〉은 마녀사냥이라는 왜곡된 역사를 새로 쓰며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여성들을 우리 앞에 재현시킨다. 단순히 과거의 잔혹한 사건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여성 억압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지속되어 왔는지 고발한다. 이 작품은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마녀사냥의 광풍에 휩싸인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당시 마녀사냥은 고문 기술자와 처형 집행자, 마녀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생겨날 정도로 하나의 산업을 이루었다. 여성만이 공유해 오던 산파술과 약초 지식은 남성 의사들에게 빼앗기고, 분만과 치료 권한 역시 그들에게 넘어갔다. 남성 의사는 마녀 여부를 판정하는 막강한 권위를 가지며 여성의 몸과 생명에 대한 지배를 확립해 나갔다. 〈비네가 톰〉은 브레히트식 서사극 기법을 활용해, 관객이 극의 상황에 감정적으로 빠져들기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등장인물과 무관한 현대적 감각의 노래가 삽입되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효과를 낳는다. 노래는 무대 위에서 금기시됐던 초경과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고, 사악한 여인의 정체를 일깨운다. 이 노래들은 여성이 겪는 차별과 통제의 현실이 시대를 넘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내며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 ‘지금, 여기’의 문제를 묻는다. ‘비네가 톰’의 의미 ‘비네가’는 식초를 뜻하며, 사람의 말이나 태도가 까칠하고 비호의적일 때도 쓰인다. 작품 속에서 조운이 기르는 고양이 이름이 ‘비네가 톰’이며, 이는 조운 자신의 성격과 닮아 있다. 또한 마녀가 거느리는 작은 동물들을 ‘파밀리아’라고 불렀는데 그중 ‘비네가 톰’은 몸은 그레이하운드, 머리는 소 모양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순식간에 네 살 남자 어린이나 머리가 없는 어린이로 변신할 수 있었다. 1645년, 마녀사냥꾼 매슈 홉킨스가 마녀로 고발된 엘리자베스 클라크의 파밀리아 중 하나로 ‘비네가 톰’을 기록했고, 이는 괴상한 모습의 상상 속 동물로 묘사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존재인 ‘비네가 톰’과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비네가 톰’은 이 극이 “마녀가 등장하지 않는 마녀에 대한 극”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연결성을 갖는다. 〈비네가 톰〉은 여성들이 근거 없이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을 보여 주며 희생자와 가해자, 권력과 억압 관계의 실체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