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사랑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용기
사랑받고 싶은 두 존재의 특별한 성장담
『한국에 태어나서』 『못 배운 세계』 『펄프픽션』 등 장르의 제약 없이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 류연웅의 신작 소설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2019년 등장 이래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이어온 류연웅은 판타지, 스릴러, 블랙코미디를 넘나들며 독자들과 만나왔다.
이번 신작 『몇 번 산책하면 헤어지는 아는 강아지』는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배신으로 마음을 잃게 된 강아지 ‘베리’와 사랑받고 싶고, 또 사랑하고 싶은 ‘유나’가 진정한 사랑과 자유의 의미를 깨닫는 성장담이자 우정담이다.
“인간한테 우리는,
그냥 쓰다 버리는 물건일 뿐이야.”
지방 소도시의 한 유기견 보호소는 방문객이 오면 온통 주문을 외는 소리로 가득해진다. “도기도기총총!” 사람들에게는 그저 짖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이 주문이 발동되는 순간 강아지들에게는 ‘숫자’가 보인다. 때로는 세 자리 숫자가 나오기도 하고, 드물게는 네 자리의 숫자가, 또 가끔은 한 자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숫자의 정체는 바로 ‘앞으로 이 사람과 몇 번의 산책을 더 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 사람에겐 사소한 숫자일지 모르지만, 강아지들에게 이 숫자는 자신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의미다.
오늘 보호소에는 특별한 사람이 찾아왔다. 모든 강아지에게 네 자리 숫자를 띄운 보기 드문 손님이었다. 누가 선택될지를 두고 강아지들이 설렘 가득한 토론을 벌이던 찰나, 불쑥 뾰족한 말이 끼어든다.
—그래봤자 뭐 해, 또 버려질 텐데.
순간, 강아지들의 꼬리가 뚝, 하고 일제히 멈췄다.
—무슨 말이야아.
—인간한테 우리는, 그냥 쓰다 버리는 물건이잖아.
—왜애애?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10쪽)
베리였다. 베리는 얼마 전 이동 장에 갇혀 공원에 버려졌다. 베리의 첫 주인은 ‘민수’였다. 베리는 민수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주문이 알려준 민수와의 산책은 세 자리였지만 베리는 개의치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기에 최선을 다했다. 숫자가 줄어들어도 늘릴 방법이 있을 거라 믿고 가진 사랑을 다 주었다. 심지어 ‘0’이 되는 순간에도. 하지만 돌아온 건 배신이었다. 베리는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다. 사람을 너무 사랑했기에,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했기에. 이제 베리는 말한다. 이제 사랑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중요한 건 자유라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끝에는 텅 빈 마음이 남을 거야
그런 베리에게 얼떨결에 두 번째 보호자가 생겼다. 보호자의 이름은 ‘유나’. 연애 예능프로그램에 나갔던 유나는 프로그램에서 보인 모습으로 예상치 못한 악플 테러를 받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나간 것뿐인데, 사람들은 화면에서의 유나의 모습만 보고 유나를 비난하고 ‘0표녀’라 수군거렸다. 유나에게 세상은 감옥이다. 유나에게 주어진 자유는 집 안에서뿐. 하지만 이제 유나는 혼자가 아니다. 베리의 보호자가 된 유나는 베리를 위해서 용기 내기로 한다. 유나는 베리를 위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옥죄던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간다.
산책은 베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유나는 베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베리는 얼마나 신난 건지 계속해서 팡, 팡 뛰쳐나갔다. 이게 베리를 산책시키는 건지, 베리가 자신을 산책시키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지금 이 순간 유나는 자신이 베리를 가두고 있다고 느꼈다.
‘베리에게라도 자유를 주고 싶어.’ (64~65쪽)
자유는 마음먹기에 따른 것,
그러니까 자유로운 건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
한편 베리는 유나와의 산책 중 사라진다. 자신을 애타게 찾는 유나는 모른다는 듯 베리는 실컷 자유를 맛본다. 해방감도 잠시, 갈 곳도 잘 곳도 없는 현실에서 베리는 한 진돗개를 만난다. 공장 한편에 놓인 좁고 허름한 플라스틱 집과 개집에 매인 목줄의 길이만큼이 전부인 진돗개의 세상이지만, 베리는 진돗개와의 대화를 통해 “좁은 개집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개와의 만남은 베리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미뿐만 아니라 이미 끊어진 것이라 믿었던 인연의 실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데…….
산책 횟수를 안다고 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불안했기 때문에 확인할 게 필요했다. 확인한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란 걸 알아도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랬던 자신과 다르게 살아가는 강아지를 보니 베리는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럴걸.
—응?
—확인하지 말걸 그랬어. (84쪽)
새로운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는
오롯이 텅 빈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람이든 강아지든 모든 존재는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 한편에는 더 큰 사랑을 받고 싶고, 주는 것 이상으로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상대의 마음을 재고 따진다. 그러나 사랑의 크기는 잴 수 없고, 온 마음을 쏟아부어야 비로소 다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몇 번 산책하면 헤어지는지 아는 강아지』는 인간을 사랑했지만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강아지 ‘베리’와 사랑받고 싶어 불안 속으로 숨어버린 ‘유나’의 이야기다. 미성숙하고 서툴지만 결국 성장해가는 이들의 여정은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유나는 다시 한 걸음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앞으로 두 존재가 마주할 날들에 비록 행복만 가득하진 않을지라도 괜찮다. 때론 사랑을 준 걸 후회하고 또 미워하는 날이 오더라도 진심을 다한다면 더 큰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니까.
이 책은, 만약 제가 신이 된다면 마주하고 싶은 세계를 그려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강아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산책 횟수를 알 수 있는 세계. 그런 특별한 배려가 있는 세계 말입니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