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노가다꾼’이 아닌 ‘노동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이들의
일과 삶과 투쟁의 연대기
윤석열 정부의 건폭 몰이 탄압 정치에 맞선
건설 노동자 12인의 생생한 증언
영원한 건설 노동자 양회동 열사 2주기 특별기획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 2023년 2월 2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경찰청, 국토교통부, 법무부, 고용노동부와 보수 언론들은 합세해 건설 노동자를 ‘폭력배’로 몰아세우고 전방위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총 22차례의 압수수색을 당했고 2250여 명의 건설 노동자가 소환 조사를 받았으며 그중 42명이 구속되었다. 그해 5월, 부당한 노동 탄압과 혐오 정치를 중단하라는 외침과 함께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공갈과 협박으로 몰아세운 정권에 맞선 양회동 열사의 죽음은 많은 이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과 경남도민일보는 부산·울산·경남 건설 노동자의 탄압 실태를 조사하고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기록하기로 했다. 인권 활동가, 이주 활동가, 기자들이 함께해 굴착기, 덤프, 레미콘, 철근, 형틀, 알폼, 갱폼, 비계, 타설, 내장 공정 분야에서 일하는 12명의 건설 노동자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구술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남의 건물을 지으면서 내 마음은 무너졌던’ 이들의 일·삶·투쟁의 연대기다.
이 책은 쉬운 일 하면서 돈 벌어 간다며 차별받는 여성 건설 노동자의 시선으로, 차별과 배제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의 시선으로, 가족 부양의 의무를 기본값으로 여겨야 했던 남성 노동자의 시선으로 건설 현장의 일과 일상을 그린다.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를 위해, 힘든 일 한다고 천대받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노동조합원들의 진솔한 목소리도 담았다. 지난 3년간 많은 건설 노동자가, 자본과 권력의 탄압으로 단가 경쟁과 임금 체불이 보편이 되고 조합원 채용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를 휩쓴 혐오 정치의 민낯은 물론 보수 언론이 가리고자 했던 진실이 무엇인지, ‘불법’과 ‘폭력’을 무기 삼아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다.
2025년 5월, 양회동 열사 2주기를 기리며 세상에 나온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짓는 건설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건설 노동자의 노동과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또 폭력적인 통치,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짓밟힌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다시 세워 내는 저항의 연대가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건설 노동자를 옥죄는 불법 재하도급 구조와 부조리한 관행
‘노가다’라는 말은 건설 노동자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비하의 의미가 크다. 건설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 장시간·저임금 노동, 위험천만한 환경까지 감당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삶과 노동을 인정해 주기는커녕 인생 막장이나 하는 일, 거칠고 험한 일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해 있다.
한국의 건설 산업은 로비와 임금 착취와 저가·불법 하도급을 통해 건설사의 이윤을 보장하는 형태로 고착되어 있다. 원청사에서 시공사로, 다시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로, 그 밑에 각 공정별 팀장들로 이어지는 부조리한 구조 때문에 정작 노동자들의 임금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건설사가 만든 이 불합리한 구조 안에서 애꿎은 노동자들만 갈등하고 싸우고 있어요. 이 불법 재하도급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45쪽)
이러한 하도급 구조의 아래로 갈수록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는 멀어지고 위험은 증가한다. 산업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은 업종이 바로 건설업이다. “현장이 안전하지 않은 것도 문제예요. 자꾸 사고가 납니다. 개인의 부주의 탓이 아니에요. 공사비가 올라가다 보니 안전 관리비에 들이는 돈이 줄었어요. 공기 단축으로 이익을 남기려고 서두르다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요.”(98쪽)
여기에 더해 건설 현장의 임금 체불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 건설업계 임금 체불 규모는 약 1조 5850억 원, 임금 체불 피해자는 40만 2584명에 이른다. “이 일 하면서 한 번도 체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보면 돼요. 책임지고 데려온 사람만 여덟 명 정도였어요. 두 곳 현장을 합해서 못 받은 돈이 1억 가까이 됐어요. 제 통장을 탈탈 털어서 나눠주었죠. 다들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막상 그러고 나니 참 막막하더라고요.”(96쪽) “노동청에 고소하면 받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근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당장 하루하루 일해서 먹고사는 입장에서는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복잡해요. 무엇보다 다음 일거리가 줄어들까 봐 무서워서 신고 못 하는 것도 있어요.”(137쪽)
세상이 수많은 도로와 건물은 건설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고 목숨까지 담보로 잡히면서 완공된다. 그리고 건설사의 이윤이 채워진다. 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값싼 노임이라도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감지덕지해야 했고,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주말도 없이 소처럼 일해야 했다. 일이 있다면 어디든 집과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체불된 임금의 반쪽이라도 주겠다는 사장에게는 오히려 감사를 표해야 했다. 이처럼 건설 산업 전반에 팽배해 있는 오래된 악습과 관행, 부조리를 바로잡고 건설 현장을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든 건설노조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그들은 진로를 고민한 끝에 혹은 우연히 건설 노동 현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현장은 녹록지 않았고 고된 노동과 끊이지 않는 사고, 자행되는 불법과 편법은 이들의 삶을 괴롭혔다.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대우받지 못하는 노동 혐오를 깨고자 노동자들은 단결했고 그 결실이 바로 2007년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탄생이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정부도 바꾸지 못한 부당한 노동 여건과 현장 곳곳에 만연한 부조리를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임금 체불과 단가 후려치기 등을 단결된 투쟁으로 막아냈다. 또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임금 착취 구조 속에서도 단체 교섭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얻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 근무 시간이 현저히 줄었어요. 8시간 외에 추가로 일하는 부분은 수당으로 받을 수 있고요. 노조는 일자리 창출도 많이 했어요. 우리 조합원들 더 써달라고 요구하면 현장에서 많이 받아줬어요. 건설사 갑질도 줄었어요.”(99쪽)
현장에서 인간답게 일하고 일과를 마치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하는 것, 이 당연한 일상을 위해서는 현장에 최소한의 안전장비와 휴식공간이 필요하다. “타워크레인을 이용한 호퍼 작업은 정말 위험해요. 3~4톤 되는 쇳덩어리에 깔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그냥 형체가 없어져요. CPB를 쓰면 호퍼 작업을 안 해도 되거든요. 그래서 ‘CPB 좀 도입해 달라. 기존 현장 너무 위험하다. 이런 식이면 일 못 한다’고 말했어요. 그 결과 CPB를 도입하겠다는 현장이 22곳이나 됐어요.”(35쪽) “회사가 노동조합 눈치를 보면서 서서히 부당한 지시가 없어졌어요. 노동자 복지가 좋아졌죠. 50분 일하면 10분은 쉴 수 있어요. 점심시간이랑 간식 시간도 있고요. 현장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177쪽)
건설 노동자에게 노조 활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투쟁이었고, 노동조합은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했던 건설 노동자의 자부심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노동자와 노동 현장으로 하여금 오늘을 넘어 내일을 기대하게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