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장진호 전투(長津湖 戰鬪)는 미 해병대가 6·25 전쟁에 참가하여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근처의 산 속에 숨어있던 중공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 12만 명 규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를 겪었다가, 간신히 성공한 후퇴작전이다. 장진(長津)은 영어로는 일본어 독음을 따서 Chosin이라 부르는데 이는 당시 한국어 지도가 없고 일본어 지도뿐이었기 때문이다.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불리는 장진호 전투는 미군의 전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 전투로 유명하다.
장진호는 개마고원에 있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악지대로 당시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가 계속됐다. 병기는 얼어붙고 방한복이 절대 부족한 양쪽 군대 절반 이상이 심한 동상에 걸렸다. 이러한 최악의 조건 속에서 미 제1해병사단은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an attack in another direction)’이라는 스미스 사단장의 강철 같은 의지 아래 과감한 돌파작전을 전개, 함흥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함흥 진출이 2주일이나 지연됨으로써 동북지방으로 진격하던 국군과 유엔군들이 흥남으로 집결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됐으며 곧이어 개시된 흥남철수작전도 기능케 됐다.
중공군 제9병단은 이때의 피해로 3차 공세에 참여하지 못해, 3차 공세는 후속병력 부족으로 전선을 확대하지 못하고 수원 일대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의 기틀을 마련해 전장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6·26 전쟁은 오랫동안 미국인의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들 스스로도 이 전쟁을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했다. 6·25 전쟁에서 미국은 사망 3만6940명, 부상 9만2134명, 실종 3737명, 포로 4439명 둥 총 13만7250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1995년 7월 27일,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공원.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6·25 당시 북한의 침략을 반대하는 유엔 결의를 지지한 21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제막됐다.
그 기념비에는 “우리나라는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요청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는 추모의 글이 새겨져 있다. ‘6·25 전쟁은 너무 과소평가되고 이해되지 못했다’는 조지 부시의 말처럼 6·25 전쟁에 대한 망각이 이 제막식을 통해 비로소 돌아온 것이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이 기념비의 글귀처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바친 희생은 거룩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종연(李鍾淵)은 고려대학교 재학 중에 전쟁을 만나 학병으로 지원해 낙동강전투, 서울수복전투, 장진호전투 등에 참가했다. 통역장교로 배속되어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희생을 강요하는 전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부모 형제를 후방에 두고, 부상한 전우와 전사한 전우들과 더불어 무엇을 위하여 누구와 싸웠는지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