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뇌구조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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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 그가 수업 중 간간히 내뱉는 ‘야함’에 대한 철학적 아포리즘. 이 책에서 마광수 교수는 말한다. “명예, 돈, 권력 등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지만 그것은 결국 성욕과 식욕의 원활한 충족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고. 그는 우리가 흔히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배우자의 외모가 바뀐다’고 빙빙 돌려 말하고 있는 이 세상 돌아가는 법칙을 그만의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말한다. “남자든 여자든 이성을 볼 때 우선 상대방을 성적 대상으로 파악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니 ‘영혼’이니 부르짖으며 ‘정신적 사랑’을 희구하는 척 한다. 모든 만남의 밑바탕은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관능적 경탄’에서 비롯되는데 말이다. 도대체 상대방의 마음이나 영혼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솔직하다. 그래서 욕을 먹는다. 밤에는 야동을 보고 낮에는 야동을 단속하는 인간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면서 “좀 더 솔직해지자”고 부르짖는다. 마광수 교수는 이미 대중 앞에서 가식은 물론 마음의 팬티까지 벗어 던졌다. 남은 것은 독자 자신도 책과 마주앉아 마음의 팬티를 벗어 던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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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마광수의 세계관 이 세상은 섹스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Ⅱ. 마광수의 여성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저는 손톱이 무지 긴 여자한테 맥을 못 춥니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현란한 피어싱, 염색, 뾰족 구두 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속’이 야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핥고 잘 빨아야 해요.” Ⅲ. 마광수의 섹스관 섹스는 재밌는 놀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섹스 왜 했냐’ 물으면 ‘허무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쓰는 수법.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류가 그렇지. 나는 그게 아니거든. 성은 무조건 즐겁다는 거야. 그래서 명랑하게 나가잖아.『돌아온 사라』도 얼마나 명랑해. 사회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섹스로 도피한다는 건 핑계야. 면죄부를 받는 수단이지. 신나게 야하게 묘사한 뒤에 ‘아, 허무하다’ 이거면 돼? 섹스는 만날 소외되어 있을 때만 하나? 즐거울 때도 하지. 나는 다만 섹스는 즐겁다 이거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아?” Ⅳ. 마광수의 문학관 한국은 문화적으로 촌스럽다 “나한테 문학은 그냥 카타르시스야. 나도 좋고 독자도 좋자 이거지. 나도 대리배설하고 너희도 대리배설해라 이거야. 교훈? 그런 거 없어. 문학은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소설이고 뭐고 사랑 빼면 시체야. 근데 사랑이 뭐야, 따지고 보면 성욕이야.” Ⅴ. 마광수의 추억관 내가 흡입한 여자들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국문과 교수 ‘한지섭(사라 애인)’은 저의 분신이죠. 실제로 홍대 교수 시절, 사라 같은 미술대 여학생과 진한 연애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자들과 연애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필화 사건 이후론 사건 후유증 때문에 쭉 굶었지요.” Ⅵ. 마광수의 철학관 권태는 권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 “쾌락은 어떤 쾌락이든지 질리게 되어 있어. 그러나! 섹스만은 안 질린다. 인생도 뭐든 질려. 심지어 밥도 먹다 보면 질려. 하지만 섹스 자체는 절대 안 질려. 물론 한 여자 한 남자하고만 하면 질리겠지. 당연한 거 아냐? 사랑을 해도 권태가 있잖아. 권태와 변태. 권태로워지면 변태로워지고, 변태로워지면 창조가 나온다. 그게 내 명제야.” Ⅶ. 마광수의 미술관 예술은 ‘위압적 양심’과 ‘격노하는 본능’을 비폭력적으로 중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으로 비비고 문지르며 나이프로 긁어댈 수도 있는 캔버스 작업은 내게 진짜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었다. 그림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우선 나 스스로 카타르시스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붓을 휘둘러대었는데, 그러다보니 캔버스 작업은 대부분 즉흥성에 의존한 것들이 많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간의 행복 조건에 대한 위험한 단언 돈, 건강, 친구, 직업, 신앙, 배우자, 명예, 권력, 정신적 만족… 많은 예술가와 학자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을 누가 전적으로 부정할 것인가. 가중치를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이지 결국 같은 재료의 다른 요리일 뿐일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행복 레서피에는 주재료가 한 가지다. 동물적 본능의 충족. 그중 단연 ‘섹스’. 그에게 동물적 인간 대 정신적 인간이란 이분법적 개념 사이의 갈등이란 없다. 그에겐 ‘육체적 쾌락만이 선(善)’이며, 진정한 행복은 야한 섹스로부터 오는 부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적 본능의 핵심인 섹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잣대, 제도적 규제는 성적 본능의 삐뚤어진 발산만 낳는 지배층의 무기일 뿐이다. 그는 본문에서 “극단적 쾌락주의(원나잇스탠드, 그룹섹스, 부부교환 섹스 등)를 악덕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결국 죽을 때까지 쾌락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므로 갖가지 보수적 윤리와 도덕에 기초하는 성에 대한 금기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스와핑이나 SM섹스, 그리고 성적 표현물에 관한 각종 규제가 풀리면 강간 같은 것은 차츰 없어지게 되고 성범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성적 권태를 벌충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에 불과하다. 우울증과 권태를 포함한 현대인의 정신적 고통 또한 성적 불만족이 원인이라고 본다. 그의 존재 기반, 행복의 조건은 절대적으로 섹스다. 그는 말한다. “나는 섹스한다, 그래야만 내가 존재한다.” 마광수가 솔직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척’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욕망의 버벌(verbal) 배설구인가 마광수 교수에게 ‘인간에게 동물적 본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이성으로 적절히 통제해야 이 사회가 유지되지 않겠냐’라는 식의 절충안을 내밀 틈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즐거운 사라』(1991년) 외설시비로 1992년 검찰에 구속되는 사건을 대표로 그의 지금까지 행보는 ‘성(性)’과 관련된 우리 시대의 통념에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관념적 굴레일 뿐 실상 인간은 ‘개인적’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마광수의 뇌구조』에서도 국가가 통제하는 지금의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부정하는 대신, 개인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성욕구를 표출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 및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사랑’을 ‘성욕’의 다른 이름으로 보며, 궁극적 성적 만족은 종족보존의 욕구를 극복할 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성적 표현과 관련해 우리 시대 문학적, 미적 기준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소위 포르노그라피에서 통용되는 성 용어를 이 책에서도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흔히 도덕적 정화를 뜻하는 ‘카타르시스’를 ‘사디스틱한 성욕과 마조히스틱한 성욕의 대리배설’로 재정의하며, 부도덕한 쾌락 욕구의 직접적 배출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예술)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얼굴보다는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구호는 지극히 위선적일뿐 아니라 ‘마음’이나 ‘영혼’을 부르짖으며 ‘정신적 사랑’ 운운하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받으려면 자칫 천박해 보일 정도로 야하고 진하게 화장해야 한다는 도발적 제안을 하는가 하면, ‘밤에는 포르노 보고 낮에는 금욕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질타하면서 이는 문화 후진국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꼬집는다. 마광수는 변태다 그의 사고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는 변태다.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는 그의 주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관능적 허기증을 앓고 있는 그가 변태적 판타지를 긍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하이힐처럼 뾰족하고 시스루룩처럼 엿보이며, 임자있는 사람과의 데이트처럼 아슬아슬하고 사팔뜨기 눈처럼 짝짝이(언밸런스)이고 젖꼭지를 피어싱해 어쩐지 으스스하며, 파운데이션을 두텁게 발라 목과 얼굴이 분리된 과장스러움”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런 여자를 아름다운 여자라고 지칭하는 그의 여성관은 변태스럽다. (아니 후각, 촉각 등 오감 전체가 그렇다.) “알고 보면 사랑은 별 게 아니다. 사랑은 오로지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접촉감’일 뿐이다. Love is Touch!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만지는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대화가 아니라 살갗끼리의 대화이다. 사랑은 정신적 신뢰감이 아니라 육체적 신뢰감이다. 사랑은 살갗끼리의 접촉이지 성기끼리의 접촉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그의 사랑관은 변태스럽다. “나의 외로움, 나의 사랑, 내가 살아가는 실존적 이유의 정체가 ‘섹스’라는 것을 파악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남이 뭐라고 하든, 나의 심리가 혹 변태든 아니든,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며 살아가는 방법이며 목표이기 때문에”라고 육체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읊조리는 그의 내밀한 고백도 어쩐지 변태스럽다. 마광수, 그의 뇌구조는 정말 변태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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