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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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흑인, 불가리아의 집시, 네팔의 불가촉민 등 최하층민의 음식을 찾아 세계 뒷골목으로 떠나다 프라이드치킨은 흑인 노예들이 백인 농장주가 먹지 않는 닭의 날개를 뼈째 먹기 위해 바싹 튀기면서 시작된 음식이다. 프라이드치킨이 흑인의 음식이라면, 다른 사회 하층민들에게도 그들만의 음식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는 차별과 핍박을 견뎌온 사람들만의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미국의 흑인, 불가리아의 로마(집시), 네팔의 불가촉민(不可觸民) 등 신분 제도가 거의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알게 모르게 차별받아온 이들의 음식을 찾아 세계 곳곳을 뒤진다. 그를 따라 독자들은 흑인 문화의 메카인 미국 뉴올리언스의 항구, 도망친 노예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브라질의 킬롬보, 네팔 최대 규모의 불가촉민 마을인 사르키 토루 등의 ‘뒷골목’에 이른다. ◆ 천민의 후예, 천민의 음식을 맛보다 저자가 이 같은 주제에 천착한 이유는 바로 그 자신이 일본의 부락민 출신, 즉 전근대 신분 제도 아래 최하층에 자리했던 천민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고백한 이 여정에서 저자는 자신을 ‘일본의 로마’, ‘일본의 불가촉민’ 등으로 소개한다. 그런 그 앞에 오랜 차별에 폐쇄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최하층민들은 진짜 그들만의 음식을 내놓는다. 외부인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불가리아의 로마들이 고슴도치 요리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소고기를 먹어 차별받은 네팔의 불가촉민이 자신이 좋아하는 소고기 부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 고슴도치, 소의 내장, 돼지의 귀와 발……., 차별받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한 ‘못 먹을 것들’의 만찬 콜라드그린, 페이조아다, 칼루루, 토마스, 토라하나, 아부라카스, 고우고리, 사이보시……. 저자는 이름도 생소한 요리들을 차례차례 맛보며 그 역사와 기원을 살핀다. 페이조아다는 백인들이 먹지 않는 돼지의 귀와 발을 콩과 삶은 요리이며, 아부라카스는 살코기를 노릴 수 없던 일본의 부락민들이 소의 내장을 튀겨 먹은 요리이다. 이 내장마저 팔려나가면 얇은 내장 껍질을 쇠힘줄과 함께 끓여 굳혀 먹은 요리인 고우고리도 있다. 저자는 이렇게 이 음식들이 모두 일반 사람들은 먹지 않고 버리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을 식재료로 궁리한 음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들이 고슴도치가 가장 깨끗한 동물이라서 먹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왜 먹었는지를, 폐사한 소의 고기를 쓰면서 왜 매운 향신료를 쓰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또한 도저히 먹을 수 없겠다 싶은 음식들, 혹은 어디서 맛봄직한 음식들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의 삶을 달래 온 족발, 곱창 등의 음식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도 짐작게 된다. ◆ 차별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저자의 시야는 최하층민의 생활사까지 아우른다. 술기운을 빌어야만 견딜 수 있던 도축장의 고된 노동, 흑인 시장이 나오자 곧바로 세워진 KKK 창설자의 동상, 똥오줌으로 가득한 방 옆에 누워 있는 환자 등 ‘차별받은 삶’을 되돌아본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최하층민들의 뿌리를 추적하며 천민의 후예로서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변화된 이들의 음식문화를 살피는 일도 그 일부이다. 흑인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듯 프라이드치킨은 더 이상 흑인만의 음식이 아니며, 집시들이 더 이상 유랑하지 않듯, 고슴도치를 먹는 이들의 식문화도 사라져간다. 반면 여전히 극심한 차별에 놓인 네팔의 불가촉민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이 부조리를 타계하려 하고 있다. 또 페이조아다나 아부라카스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나머지 그 재료가 비싸져 정작 그 요리의 ‘주인’들은 먹기 어려운 우스운 현실을 맞이하기도 했다. 삶이 어떻게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음식문화가 있다면, 이 책은 그 반대편에서 자라온 음식문화를 통해 가장 낮은 곳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