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자퇴는 학교에서 궁지에 몰린 저한테 마지막으로 남은 선택지였어요. 그걸 고르는 게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혐오와 차별이 만든 어떤 청소년기에 관하여 학업과 진로, 미래를 고민해야 할 청소년기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없어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많은 청소년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생활 깊숙이 들어오는 성별 이분법의 세계를 맞닥뜨린다. 남녀학교, 남녀학번, 남녀분반, 남녀교복, 남녀기숙사 등 사사건건 남녀를 나누고 구분하는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정 성별과 다른 성별로 인식하는 청소년들은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학교는 안전하게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울타리는커녕 혐오와 차별의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이다.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는 등 제도적 지원은 전무하고, 학교생활 대부분이 여자 아니면 남자로 구분될 것을 강제하는 상황에서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을 숨기며 생존에 모든 힘을 소진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중받고자 홀로 분투에 나서다 지쳐 학교를 떠난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는 바로 이 시기, 혐오와 차별 때문에 친구들과는 너무도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는 트랜스젠더들의 삶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구체화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정, 학교, 사회 어디에서도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진 저자들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인권 실태를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심층 취재에 나섰다. 약 6개월에 걸친 취재 끝에 대한민국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 실태 보고서라 할 만한 기획연재가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2021년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8명과의 대면 인터뷰와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이 참여한 양적 조사를 아우르며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와 사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선생님, 부모,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하며, 성소수자 인권단체 및 법조계, 의료계 등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ㆍ의료적ㆍ제도적으로 어떤 대책과 변화가 필요한지까지 제시한 심층 보도였다. 이는 그간 트랜스젠더가 침해받는 인권문제가 성인 트랜스젠더의 의료권, 노동권 등 특정 권리의 침해를 중심으로 논의됨으로써 불가피하게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던 혐오와 차별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특정 상황이 아니고서는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혐오와 차별은 ‘청소년기’로 시간 축을 이동하자 매서운 영향력을 드러냈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영향을 미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연재는 2021년 12월 13일 첫 기사가 온라인에 송출된 이후 약 3개월 만에 3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읽혔고, 혐오와 차별이 만든, 그러나 이전에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을 마주한 독자들은 사회적ㆍ제도적 변화를 촉구하며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이 책은 바로 그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보도 이후 저자들은 지면의 한계로 기사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비롯해 약 5개월간의 추가 인터뷰와 취재를 거쳐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인권 실태를 기록한 한 권의 책을 새롭게 써냈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를 떠나다 저자들은 청소년 트랜스젠더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트랜스 남성 4명과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2명, 트랜스 여성 2명이다.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탈학교, 탈가정, 저임금ㆍ고강도 노동으로 내몰린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장은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마지막으로 남는 선택지가 어째서 탈학교가 되는지 알게 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드러낸 이들은 친구들의 폭언이나 괴롭힘에 시달렸다. 늘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화장실에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생활할수록 주변의 편견은 더욱 공고해지고 ‘너는 남자냐, 여자냐?’라는 동급생들의 질문은 일상처럼 반복됐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육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답지/남자답지 않은’ 트랜스젠더 학생들을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 중 68.8%는 교사의 혐오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희원씨는 담임선생님에게 자퇴를 ‘권유’받았고,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주먹을 휘두른 박영씨는 선생님에게 “때린 네가 잘못했다”는 질책을 받았다. 이들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에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애초에 학교가 자신을 이해할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아 벽장 속으로 숨는다. 머리 하나 기르는 것도 온갖 지적에 시달려야 하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너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출석에만 의의를 둔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던 윤슬(21세, 가명)씨의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는 먼저 자퇴 이야기를 꺼냈다. 2차 성징과 함께 성별 불쾌감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일상적 차별과 혐오는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등교 준비를 하는 아침마다, 출석이 불릴 때마다, 화장실에 가야 할 때마다 계속해서 내가 아닌 다른 성별이길 강요되는 일에 지쳐가지만 학교 안에서 도움을 줄 만한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교 밖에서는 어떨까. 저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나 지역별 학생인권교육센터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이 공고한 상황에서 아우팅을 우려하는 청소년들은 쉽사리 권리구제를 신청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입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을 염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의 내용이 담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총 6개 지역에 불과하다. 조례가 제정된 곳과 제정되지 않은 곳의 차이도 있지만, 앞서 권리구제 신청을 어려워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조례가 있다 한들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게 이들은 오로지 주변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며 홀로 견디다 결국은 포기하듯 학교를 떠난다. 저자들이 만난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6명은 중고등학교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보다는 적은 비율이지만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1.9%는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재학 중 연령인 15~18세로 범위를 좁혀도 학업중단율은 13.6%에 이르렀다.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설문조사와 동일한 시점인 2020년 기준 전체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무려 17배의 차이다. 커밍아웃에 등 돌린 부모, 살기 위한 노동에 뛰어드는 아이들 혐오와 차별의 일상은 가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장은 탈가정과 함께 저임금ㆍ고강도 노동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저자들에게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들은 일단 커밍아웃을 회피하다가, ‘알겠다’고 하고는, 이내 없었던 일처럼 무시한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소년 트랜스젠더 중 약 70%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도 지난한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모자라 부모에게까지 자신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숨긴다. 커밍아웃이든 아우팅이든 성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은 대개 그 사실 자체를 모른 체하거나(55.2%)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