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고한’ 중편/경장편 소설 시리즈, 고블 씬 북 일곱 번째 작품.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충청도 농가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뱀파이어 소동과 그에 얽힌 음모를 다룬 코미디 SF 소설이다. 충청도 출신 스토리텔러 송경혁은 블랙코미디와 호러, SF와 한국형 갱스터 서사, 그리고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비극적 인간 드라마를 뒤섞어 ‘충정도 논두렁 SF 액션 드라마’를 창조해냈다. 『여섯 번째 2월 29일』로 한국형 하드보일드를 독자에게 선보인 송경혁 작가가 이번에는 어두운 유머 뒤섞인 충청도 로컬 스토리텔링의 모범을 보여준다.
충청도 농촌에서 벌어지는 멸망의 블랙코미디 호러 SF
충청도 출신 스토리텔러의 좌충우돌 흡혈 생존기
“지금 누구 찾고 그럴 때가 아니여. 동네 전체가 쑥대밭이여.”
그 이야기를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제 상일이와 왕슈잉이 내 발목에서 피를 빨려고 한 걸 생각하면 녀석들도 감염됐을 가능성이 컸다.
“아저씨는 괜찮으세요?”
“봐야 알지. 그나저나 지금 여기서 피해야겄는디.”
청년회장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들판을 가리켰다. 동네 사람 대여섯이 논두렁을 가로질러 이리로 뛰어오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잖아요.”
“너 피 빨아먹으러 오는겨. 지금 뛰지 않으면 우리도 위험햐.”
-89쪽
‘영길’은 친구 ‘상일’과 함께 농촌에서 살고 있다. 영길은 집안 대대로 입 냄새가 심해서 어릴 때부터 놀림을 당했다. 어느 날 부모님과 동승한 승용차가 트럭에 치이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영길은 근처 농가에서 일하던 상일에 의해 구출된다. 하지만 영길은 가족이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자살소동을 벌인다. 유일한 혈육이자 유명한 깡패였던 외삼촌에게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림받는다. 몇 년 뒤, 젊은 농장주가 된 상일과 재회하여 일을 돕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유럽발 전염병 뉴스로 도배되던 중, 상일이 루마니아 농촌 출장을 다녀온 뒤 불길한 사건이 터진다. 상일이 영길의 지독한 입 냄새가 좋다면서 달려든 뒤 흉터에서 피를 빨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전염병의 진원지는 루마니아였으며,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뱀파이어로 변이시키는 것이었다!
뱀파이어 사태 때문에 논밭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생하는 영길. 외삼촌을 비롯하여 인생에서 한자리씩 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고, 그 모든 인물은 이 사태와 알게 모르게 연관돼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는 진실. 뱀파이어 사태를 잠재울 핵심 도구는 영길의 몸속에 있었다!
영길은 어떻게 충청도 뱀파이어 사태를 이겨낼 것인가?!
하루아침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그 사람에게는 어떤 존재가 필요한가?
충청도 로컬 블랙코미디 SF 소설 속에 담긴 심대한 위안.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버린 것 같아도, 아니 실제로 버렸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한 명만 있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충청도라는 지역의 곳곳을 묘사하면서 특유 충청도 사투리가 주는 현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누구여?” “나 상일이여.”라는 반복되는 문답을 비롯한, 충청도 청주 출신 작가의 자연스러운 충청도 사투리 구현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뭔가 천박할 것이라는 지역 혐오적 의식을 벗겨내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폭’ 등 스테레오 타입형 캐릭터에게 사투리를 부여하는 것과 달리, 이 소설에서 사투리는 그저 다양한 인물이 사용하는 지역 고유 언어로 표현된다. (소설 속 대표적인 조폭 캐릭터인 박열망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소설은 각종 장르를 뒤섞어 새로운 시너지를 형성한다. 주인공의 어두운 과거사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내면서도, 서구식 호러 콘텐츠에서 오랜 주연이 되어왔던 뱀파이어를 전염병 아포칼립스라는 익숙한 장르적 설정을 차용해 충청도 농가에 출현시킨다. 주인공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전개되는 가운데, 무협지를 방불케하는 조폭들의 대결을 시현하기도 한다.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회복과 타인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삶의 목적을 하루아침에 잃었을 때, 내가 살아가게 해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인공 영길은 선천적인 구취에 의해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거기에 가족마저 불시에 잃게 된다.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만 살아가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타인’이 나타난다. 우리가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이 소설을 읽고 우리는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함께 걸음을 발맞춰 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이다. 혹은 그런 타인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사려 깊게 살펴볼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