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발레리 한센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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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중국사와 세계사,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 온 저명한 역사가 발레리 한센은 같은 시기에 일어났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서 공통된 흐름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팽창의 배후에는 기원후 1000년 무렵에 일어난 최초의 세계화가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기원을 추적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계가 1000년의 세계로부터 탄생했다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1000년 무렵, 두려움 없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 탐험과 교역에 나섰던 이들을 통해 마침내 위대한 문명들이 연결되었다. 그렇게 발견되고 개척된 새로운 통로들은 세계 각지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책은 최초의 세계화가 촉발한 갈등과 협력을 교차해 보여 준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함께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뀐 1000년에도 그 점은 다르지 않았고, 그 영향은 지금도 감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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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1장 1000년의 세계 2장 가자 서쪽으로, 젊은 바이킹들이여 3장 1000년의 팬아메리칸 하이웨이 4장 유럽의 노예들 5장 세계 최고의 부자 6장 둘로 갈라진 중앙아시아 7장 놀라운 항해 8장 지상에서 가장 세계화된 지역 에필로그 감사의 말 더 알고 싶으세요? 각 장의 주 삽화와 사진의 출처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기원후 1000년, 최초의 세계화가 시작되다 우리는 유럽인들이 희망봉을 돌고 아메리카로 향한 15세기 후반에 비로소 세계가 연결되었다고 믿는다. 또한 세계화를 20세기에 시작된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 30년간 중국사와 세계사, 문명 교류사를 연구해 온 저명한 역사가 발레리 한센(예일 대학 교수)은 요나라와 송나라가 맺은 전연의 맹, 카라한 왕조의 호탄 정복, 바이킹의 아메리카 상륙 등 같은 시기에 일어났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서 공통된 흐름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팽창의 배후에는 기원후 1000년 무렵에 일어난 최초의 세계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염병의 대유행과 전쟁으로 이제 세계화는 끝났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위기일까? 대관절 세계화란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 제기 속에서 이번에 출간되는 『1000년』은 세계화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기원을 추적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계가 1000년의 세계로부터 탄생했다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1000년의 세계화와 오늘날의 세계화 발레리 한센이 보여 주는 1000년 무렵의 삶은 21세기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오늘날 종교 신자의 92퍼센트는 1000년 무렵에 확립된 4대 종교(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불교) 중 한 가지를 믿는다. 세계화가 기술의 확산, 전통의 상실을 불러왔다는 점도 같다. 카이로와 콘스탄티노플, 광저우에서는 분노한 군중이 최초의 반(反)세계화 폭동을 일으켜 외국인들을 공격했다. 우리는 1000년의 세계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생소한 환경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다짜고짜 현지인을 살해한 바이킹보다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참을성 있게 우호 관계를 쌓은 사람들이 미지의 먼 땅에서도 성공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소함에 개방적인 사람들이 새것이라면 무조건 손사래를 친 사람들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어 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1000년 무렵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1000년』이 던지는 질문들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를 보완하고 구성해 내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발레리 한센은 『1000년』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바이킹은 어떻게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에 도착했을까?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정교회…… 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거란 황제가 아프가니스탄의 술탄에게 선물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마야 신전의 벽화에 묘사된 금발 포로들은 누구일까? 말리의 만사 무사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든 비밀은?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질문들이 이 책 『1000년』에서는 연결된다. 1000년의 세계화는 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들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했다. 오늘날의 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과 포인트를 몇 가지 짚자면 다음과 같다. - 1000년 전에 결정된 신장 위구르와 러시아의 운명 10세기에 이르러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부족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했다. 카라한 왕조도 그중 하나였다. 개종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종교적 열정이 넘쳤던 카라한 왕조는 1006년에 오랜 경쟁자였던 동쪽의 불교 왕국 호탄을 정복했다. 이 사건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 이슬람화하는 출발점이었다. 같은 시기에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루스인들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1세는 전통 신앙을 대신할 적절한 종교를 찾고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네 가지 종교가 후보군에 올랐다. 유대교, 이슬람, 로마가톨릭, 동방정교회였다. 블라디미르 1세는 정교회를 선택했다. 동시대인들에게 이 선택은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루스인들의 개종은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오늘날 유럽이 정교회 영역과 가톨릭 영역으로 나뉜 일은 그 결과 중 하나다. - 거란 황제가 아프가니스탄의 술탄에게 선물을 보내다 1026년, 요나라 사절이 선물을 들고 가즈나 왕조의 궁정에 도착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가즈나 왕조도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였다. 우호 관계를 수립하자는 요나라 황제의 요청에 가즈나 왕조의 군주인 술탄 마흐무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두 나라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야말로 상대방의 속임수로부터 서로를 지킬 수 있는 보호막입니다. 가즈나는 요나라와 밀접하게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귀하가 이슬람교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솔직한 태도였다. 종교가 1000년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인식도 보인다.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은 불교도들이었다. 거란족과 튀르크족은 유목 민족이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종교가 이들의 정체성을 구분했다. 1000년 무렵, 전 세계의 왕국들은 앞다투어 주요 종교로 개종했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지역이나 혈통 외에 새로운 정체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바로 종교다.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자기를 종교 블록의 일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계화의 핵심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 발트해의 호박이 요나라 공주의 무덤에서 나오다 1005년, 요나라와 송나라의 협상단이 중국 황허강(황하) 유역의 도시 전연에서 만났다. 전연 부근까지 진출한 요나라 대군이 바로 남쪽에 있는 송의 수도 카이펑(개봉)을 위협하는 상황에서였다. 협상 결과, 송나라는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요나라에 보내는 조건으로 평화를 얻었다. 요나라 황제의 손녀였던 진국공주가 1018년에 사망했을 때, 온갖 화려한 물건이 공주와 함께 묻혔다. 유리 용기와 황동 그릇은 시리아와 이집트, 이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수정으로 만든 소품은 수마트라와 인도에서 온 것들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호박(琥珀)으로 만든 장식품들이었다. 재료인 호박 원석이 ‘슬라브인의 바다’, 즉 발트해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국공주의 묘에서 나온 부장품은 전연의 맹 이후에 요나라가 누린 번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1000년의 세계가 얼마나 세계화되어 있었는지도 보여 준다. 북유럽의 발트해와 중국 북쪽의 요나라 궁정 사이의 거리는 무려 6500킬로미터가 넘었다. 호박 유통로는 1000년의 세계에서 가장 긴 육로 중 하나였다. - 중국의 도기가 이슬람 도공들을 위협하다 1000년 무렵에 상인들의 주요 고객은 서쪽이 아닌 동쪽에 있었다. 특히 송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세계화된 지역’이었다. 요나라에 바치는 적지 않은 세폐조차도 송나라의 풍요로움에 아무런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했다. 국제무역항인 광저우(광주)와 취안저우(천주)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상인들이 온갖 상품을 거래했다. 일본의 고전소설 『겐지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이 피우는 향도 이렇게 들어온 수입품이었다. 최초의 세계화는 각지에서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던 동남아시아의 토착민들은 이제 중국 고객들을 위해 향신료를 재배했다. 중국인들도 상품을 생산했다.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르면 푸젠성(복건성) 인구의 7.5퍼센트가량이 수출용 도자기 생산업에 종사할 정도였다. 광저우에서 페르시아만의 바스라 항구까지 이어지는 해로는 그 길이가 약 1만 2700킬로미터에 달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가로지를 때 이동한 약 7000킬로미터의 두 배에 가까운 거리였다. 무슬림 소비자를 겨냥한 중국 도기에는 아랍 문자를 흉내 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슬람 도공들은 진주광택을 내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 응수했지만, 그래도 중국 도기를 당해 내지 못했다. - 지리상의 발견 이전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는 남북 간 교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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