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논술이 사형제 폐지는 아니지만’
5년 전 마중물 논술이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당시 논술교육은 사형제 폐지처럼 예측 가능한 시사문제에 대한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었다.이런교육방식에대해서논술을출제하고채점하는대학과 언론은 배경지식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중물 논술은 배경지식 논술교육에 대한 공격에 있어 선두에 서 있었다. 단순한 지식의 주입과 암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한 논술시험을 지식의 주입으로 접근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해의 산물이었다. 단순한지식의 암기에서 사고력 훈련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마중물 논술이 제시한 교육방식 이었다.
논술교육의 흐름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학원가에서는 배경지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뿐만 아니다. 유행에 민감한 대치동학원가에서 자신의 강의가 배경지식 위주의 강의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 그것은 곧 낡은 교육 이라는 낙인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배경지식을 터부시하는 교육도 배경지식을 전면에 내세운 교육만큼이나 오해의 산물이다.
‘문제를 출제하기 전에 강남 논술학원의 시험 문제들을 다 검토해 제외한다.’
논술이 사교육시장만 배부르게 할 거라는 우려에 대한 이장무 전 서울대 총장의 답변이다. 그렇다. 대학이, 적어도 서울대가 사형제 폐지나 FTA같이 알려진 쟁점들을 갖고 논술 문제를 만들 수 없었던 사연이기도 하다. 알려진 쟁점이 중심이 되면 누구도 사교육 시장의 경쟁력을 따라 올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코미디는 논술을 앞두고 신문에 발표하는 올해의 논술 예제들이다. 1년간의 시사 쟁점들을 정리해준다. 신문 데스크는 대학도 생각하는 생물임을 잠시 잊은 것 같다. 대학은 신문사가 찍은 예제를 출제하려 했다가도 신문에 나오면 없애고 다시 만든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학이 중요한 시사 쟁점을 논술문제의 재료로 삼는데 인색한 또 다른 이유이다.
‘논술 교육의 목표는 대학입시가 아니다.’
신입생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논술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떠들어대면 학부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논술교육의 수많은 병패가 바로 대학입시라는 목표에 기생해서 자라나고 있다. 예상문제를 뽑아 공부하고 선생이 써준 모범답안을 외우고 족집게 학원과 강사를 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모두 논술교육의 목표를 대학 입시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논술은 추가 부담이고 별도의 과목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논술은 별도의 과목이 아니다. 오히려 논술은 교과과정을 통해 배운 내용을 쏟아내서 아우르고 다시 정리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되면 교과목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나 논술공부나 차이가 없다. 제대로 된 논술공부는 교과목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게 된다. 교과목이 나무라면 논술은 숲이다. 숲을 보는 안목은 당연히 나무를 보고 싶은 흥미도 유발하고 나무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논술교육은 학생에게 문제의식을 자극한다. 문제의식을 갖고 단원을 공부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과의 생산력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
생물 과목에서는 처음부터 세포를 무작정 가르친다. 그러나 세포이론은 논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학자들이 300년 동안 논쟁했던 세포설이 생물학과 의학의 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다. 학생들은 세포이론의 의미보다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외우는데 바쁘다. 세포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과 어떻게 다른지는 유력한 ‘자연-인문통합’ 논술문제이다. 하지만 세포의 의미에 한동안 머물러 보는 것은 생물에 대한 흥미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제대로 목표를 설정한 논술공부는 학교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논술교육의 목표를 교과목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로 삼아야 한다.
‘논술은 가르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평가이다.’
서울대 출제위원 중 한분의 말씀이다. 실제로 논술 문제를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재능이 부족한 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쳐서 어떻게 해본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논술에 대한 대학의 주장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면 오히려 논술의 영역은 넓어진다. 논술교육은 원석을 가려내는 일이자 금광석을 발굴하는 일이기도 하다. 성적 때문에 서울대를 꿈도 못 꿔본 학생일지라도 생각하는 재능에서 탁월하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머리도 좋고 성실하고 성적도 좋은데 지나치게 관리형 공부에 익숙한 모범생들의 공부 방향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첨삭지도이다. 별로인 글에 선생이 칭찬을 해주었는데 그 학생이 대학에는 떨어질 수 있다. 실망이야 되겠지만 손해 본 것은 없다. 그러나 선생의 안목을 넘어서서 선생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학생은 어떨까? 대학이라면 탁월한 글쓰기라고 칭찬받을 글에 선생이 빨간 줄을 그어댄다면 학생은 선생에게 적응하느라 주눅이 들거나 좋지 않은 글쓰기를 익히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선생의 부족한 안목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