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이 대국이 명인의 생명을 빼앗았다.” 일본 바둑의 혼이 담긴 명승부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예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관전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슈사이 명인의 은퇴 바둑 관전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38년이었다. 65세의 명인이 30세의 젊은 신성과 벌인 일전은 장장 6개월간 이어졌다. 중도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대국을 이어갔던 명인은 결국 5집을 진다. ‘불패의 명인’이라는 기록이 깨지고 첫 패배를 떠안게 된 명인은 대국이 끝난 이듬해인 1940년 세상을 떠났다. 대국이 벌어진 6개월간 동행 취재한 가와바타가 신문에 연재한 관전기는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병약해진 몸으로 목숨을 건 마지막 대국에 전력을 다했던 슈사이 명인의 이야기는 가와바타가 소설 《명인》을 집필하는 과정과 꼭 닮아 있다. 가와바타는 1940년 명인이 사망할 때까지 소설을 집필하다가 건강 문제로 중단했다. 1942년에 다시 작품을 이어 나가 마무리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1951년부터 다시 연재를 시작해 1954년까지 집필했다. 그 과정에서 명인, 석일(夕日), 꽃, 미망인 등의 제목으로 여러 잡지에 실린 미완성본만 5편에 달했다. 완성판으로 소개되어 나온 버전도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총 4편이었다. 예도(藝道)에 순수하게 몰입하고 완전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가와바타의 모습은 한 수, 한 수에 혼을 실었던 승부사이자 예술가 슈사이 명인의 모습과 겹친다. 당시 노령의 명인이 30세의 기사와 맞선 것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고 한다. 30분 이상 장고를 거듭하는 젊은 강자의 전략에 명인의 체력과 정신력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가와바타는 소설에서 “이 바둑이 명인의 목숨을 빼앗은 셈이리라”고 썼다. 가와바타는 그러나 명인의 바둑에 대한 겸손한 자세와 진중한 승부에 깊이 감동했다. 작품에서 가와바타는 명인의 홀로 몰입하고 숙고하는 태도, 으스대지 않는 조용한 모습, 끈질기게 대국에 임하는 승부사 기질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명인의 표정,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명인과의 대화는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와바타가 수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인 만큼 41개의 장은 각각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뛰어난 완결성을 갖고 있다. 담담한 필치는 대국이 열리는 일본식 정원의 담백하고 정갈한 풍취와도 맞닿아 있다. 바둑을 모르는 독자들도 일본의 장인 정신과 예도, 미의식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