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알랭 바디우, 에티엔 발리바르, 조르조 아감벤, 자크 랑시에르,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슬라보예 지젝을 경유·극복해 “공산주의의 재활성(reactivation)”을 선언하는 논쟁적 선언 1.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의 지평이라는 유령이.” : ‘유령’ 혹은 여전한 ‘플랜 A’로서의 공산주의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엥겔스는) ‘공산주의의 유령’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낡은 유럽의 모든 열강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유령이자, 그 당시에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었던 어떤 공산주의의 유령에 대해. 분명히 이미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의인 동맹이나 공산주의자 동맹보다 더 이전에) 공산주의지만, 그 이름을 넘어서 아직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던 어떤 공산주의에 대해. 이미 약속된, 하지만 단지 약속되기만 했던. 분명히 그렇지만, 단 이는 장래와, 어떤 유령의 되돌아옴을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그렇다.”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우리 시대의 일반적 지평은 공산주의적이다.” 『공산주의의 지평』은 자본주의 세계의 현상태(status quo)에서 ‘공산주의’라는 오래된 반대항을 이상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분할하면서도 이어놓는 지평으로 호명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우리의 현재 여건 속에서 대안적 현재-미래가 있음을 말하는 도발적·논쟁적 저작이다. 『공산당 선언』(1848)의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 또한 그러하지만― 너무나도 강렬하고 강력해서 아찔하기까지 하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이 책에 빗대어 『공산주의의 지평』의 첫 문장을 다음처럼 고쳐 써도 무방하겠다. (이 책의 저자 조디 딘은 2017년에 런던의 플루토출판사에서 다시금 출간된 『공산당 선언』 영어판 서문을 쓰기도 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후기를 썼다.)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의 지평이라는 유령이.” 2. “만국의 나머지 우리여, 공산주의를 욕망하라.” : 자유주의가 무릎 꿇린 공산주의? 역사의 종언? ― ‘역사의 종언’에 대한 적색경보(Red Alert) 「역사의 종언?」 ―프랜시스 후쿠야마, 『내셔널 인터레스트』(1989) “환멸: 역사의 끝은 연기되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자유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20세기를 지배한 세 이데올로기. 이들 중 자유주의가 파시즘에 이어 공산주의를 상대로도 승리했다는 ‘역사의 종언’인 선언된 지 올해로 30년째다. 그러나 역사의 끝은 연기된 듯 보인다. 유발 하라리의 진단처럼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친 이래 전 세계 사람들은 자유주의 이야기에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유주의는 성공할수록 실패한다”라는 자유주의에 대한 적색경보(패트릭 J. 드닌,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도 울리고 있고, “다른 사회를 꿈꿀 상상력마저 잠식한 자본주의 역시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실패한 체계”(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고, “‘공유경제’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플랫폼 자본주의의 기만과 글로벌 자본주의의 부패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가이 스탠딩, 『불로소득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색경보도 연이어 울리고 있다. 이와 짝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지각은 공산주의를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적인 전유를 거부하는 모든 순간과 집단적 재전유의 모든 실행 가운데 ‘이미 여기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브루노 보스틸스, 『공산주의의 현실성』)이라는 신호가 들린다. 과거의 ‘소음’이 아닌 현재적 대안의 ‘신호’로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적색경보(Red Alert)”다. 『공산주의의 지평』의 저자 조디 딘은 공산주의를 “현존하는, 점점 강력해지는 위력”으로 다룬다. “공산주의는 여전히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수반하는 극단적 불평등, 불안정, 그리고 인종주의적, 국가주의적 자민족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의 이름이다.” 딘에게 무엇이 공산주의[적]인가? “무엇이 공산주의적인가? 국가보건의료. 환경주의. 페미니즘. 공교육. 단체교섭. 누진과세. 유급휴가. 총기 규제. 월스트리트 점유가 그렇다. 자전거는 공산주의에 이르는 ‘습관형성약물’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일깨워낸 ‘개인의 자기실현이라는 매력적인 전망’을 드러내므로 웹 2.0은 공산주의적이다.” “누가 공산주의적인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국의 군사침략에 항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부자에게 과세하고, 법인세 체계의 틈을 메꾸고, 파생상품 시장을 규제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실업보험, 식품구입권, 공교육, 공공분야 노동자들의 단체교섭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 딘은 “정치적 대안으로서 공산주의를 활기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동적 그물망을 갈라 찢을 수 있는 집합적 욕망을 증폭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의 지평』의 마지막 문장을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에 빗대어― 다음처럼 고쳐 써도 무방하겠다. “만국의 나머지 우리여, 공산주의를 욕망하라!” 3. “나머지 우리로서 인민의 공산주의적 욕망”, 공산주의의 재再활성” : 민주주의적 충동과 공산주의적 욕망, 자본주의와의 멜랑콜리한 동거를 끝낼 시간 “소비에트연방은 별반 공산주의의 안정적 지시대상이 아니다.” 조디 딘은 『공산주의의 지평』에서 공산주의적 이상을 소비에트연방 실패의 족쇄로부터 풀어놓는다. 정보기술 네트워크로 엮인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소통하는 능력이 착취당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공통적·집합적 욕망들에 기초해서 조직한다면 혁명은 여전히 가능하다. 딘은 2011년의 “월스트리트를 점유하라(Occupy Wall Street)” 경험을 검토하면서, 당시와 같은 자발성이 혁명으로 발전되지는 않으며 자발성은 저 자신을 “정당”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독자들은 ‘월스트리트를 점유하라’의 자리에 ‘촛불의 물결’을 대비해 사유해볼 수 있음직하다.] 『공산주의의 지평』의 전언은 집합적 주권의 담지자인 “나머지 우리로서 인민”이 “소통 자본주의” 속의 “민주주의적 충동”을 되풀이함으로써 겪는 “좌파 멜랑콜리”를 뛰어넘어 “공산주의적 욕망”을 다시금 집합적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딘의 화두 혹은 논거 각각에 대해 좀 더 들어가보자. 4. “나머지 우리로서 인민” ― “우리가 99퍼센트다”, 인민주권 : “각자로부터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조딘 딘은, 극소수 부자들과 나머지 우리 사이 분할이 오늘날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환경에 비추어, 공산주의 주체의 명칭인 프롤레타리아트(마르크스), 다중(네그리·하트), 몫이 없는 몫(랑시에르)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분할적·분열적 위력으로서의 인민을 뜻하는 “나머지 우리로서 인민(he people as the rest of us, 나머지 우리)” 개념을 제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적대[살아남기 위해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하도록 강요받는 인간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사이 적대]를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부르주아지와 임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트 사이 투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