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국인들의 마지막 여행지이자 꿈의 여행지인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본격 문화예술기행 안내서로, 6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물 -최북단 멕시코에서 최남단 파타고니아까지 포괄하는 방대한 내용과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코드들을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 한국인들에게 라틴아메리카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세상 끝’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를 ‘우리 안의 세상 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둥근 지구본에서 한반도를 수직으로 뚫고 나가면 반대편에서 만나게 되는 땅, 그래서 계절은 물론 시차도 정반대라서 우리에게 더 매혹적이고, 알고 싶다는 유혹 또한 강렬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라틴아메리카는 그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다. ‘누군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다르더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꿈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더라고 답을 하고 싶다. ‘우리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우리 딸 1등 하게 해 주세요’ 하는 개인적인 꿈이 아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순진한 희망을 잃지 않고 가슴 한편에 여전히 이상향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시인이었다. 비록 작금의 세상에 전쟁이 그치지 않아도 언젠가는 평화로운 미래가 올 것이다 노래하고, 비록 가난하지만 사람의 뜨거운 정을 느낄 수 있는 자랑스러운 곳이 우리네 고향이라 노래하던 자존심 강한 그들 앞에 그들이 ‘자본주의 부자 나라’라고 부르는 동양의 경제 부국(?)에서 온 나는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 중에서 저자는 라틴아메리카도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거기도 착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세상의 일부였다. 하지만 적어도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평화의 아메리카’에의 이상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희망의 땅이었다. 저자에게 라틴아메리카와 함께 한 시간은 유명 정치인, 예술인, 사상가는 물론 민초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다시 자신이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와 자신은 물론 가족, 이웃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여행기지만 단순 관광이 아닌 전공 공부를 위한 3년간의 멕시코 체류와 6년여에 걸친 수 십 차례의 탐방, 연구를 바탕으로 역사, 문화적 배경 등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기초 지식을 제공하고 그곳 사람들의 정서와 꿈을 전달하여 한국과 라틴아메리카간의 문화적 이해를 돕고자 쓴 기본 교양서다. 따라서 멕시코와 페루, 카리브 해 연안 국가들 등 문화적인 연관이 있는 나라들을 묶어서 배치했고 각 나라나 문화권의 상징물, 멕시코의 독수리와 안데스의 콘도르, 브라질 국기의 의미 등을 전면에 배치하여 상식적으로 알아둬야 할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코드들을 독자들이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제목(우리들 꿈꾸는 아메리카)의 의미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존경 받는 사상가이자 쿠바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1853-1895)는 ‘우리들의 아메리카(Nuestra Am?rica)’라는 유명한 수필을 썼다. 마르티는 그 글에서 ‘우리들 혼혈의 아메리카는 여러 인종이 화합하고, 평화를 지키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도울 줄 아는 인류애의 아메리카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그의 ‘이상적 아메리카론’은 체 게바라를 비롯한 후대의 많은 이상주의자들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책 제목에 따라 북미의 미국, 캐나다를 제외한 남미지역을 ‘우리들의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일종의 명칭으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같은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에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독립 이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사사건건 개입해 왔다. 이에 대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19세기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국제 사회에서 사용한 ‘라틴아메리카’라는 표현을 받아들여 미국과 캐나다를 ‘앵글로아메리카’라고 지칭하면서 ‘우리는 결코 같은 아메리카가 아니다’라고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왜 하필 그 명칭이 ‘라틴’아메리카냐는 것은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 사상가들은 ‘라틴아메리카’라는 표현 대신 ‘우리들의 아메리카’라는 표현을 즐겨 쓰게 되었다. 그렇게 ‘너네들의 아메리카’(앵글로 문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우리들의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인종차별이 심한 앵글로아메리카와는 다른 ‘혼혈성’에서 찾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시몬 불리바르에서부터 호세 마르티,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상주의적 기질이요, 이상적 사회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라 느꼈다. 멕시코의 문호 카를로스 푸엔테스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사회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세상에 대한 꿈이라도 꿔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데, 남을 밟고 올라서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그들의 이상주의는 우리가 한 번쯤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이리라. 주요내용 나에게 제2의 고국이나 마찬가지인 멕시코는 독수리로 대변되는 아스텍과 마야인들의 문화에, 칼과 십자가를 들고 들어온 스페인 정복자들의 문화가 뒤섞인 혼혈의 땅이다. 미국과 국경을 접한 북부지역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신화와 반란의 땅으로 남아있는 마야인들의 땅 남부지역까지, 일곱 빛깔 문화를 자랑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축소판과 같은 곳이다. 나는 멕시코에 거주하며 라틴아메리카 다른 나라들을 골고루 둘러보았는데, 안데스의 콘도르로 대변되는 페루는 인디헤나들의 슬픈 현실과 그들과 다소 괴리된 태평양 바닷가 사람들 사이에 정서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카리브 해 쪽으로 넘어가 보면 닮았으나 대조적인 쿠바와 도미니카, 그리고 예전엔 한 나라였으나 두 나라로 갈라진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가 있다. 신나는 카리브 음악 속에 숨겨진 그들의 애닮은 삶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미래에의 희망은 호세 마르티의 말처럼 ‘우리들 꿈꾸는 아메리카’의 한 전형이 아닐 수 없었다. 브라질은 내가 멕시코에 도착하기 이전에도 한 번 가보았던 내 첫사랑과도 같은 나라로 그저 모든 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첫 방문 때와는 달리 두 번째 방문에서는 그들의 아름다운 자연과 미소 짓는 사람들 속에 숨겨진 현실의 단면들을 잘 엿볼 수 있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에서는 파라과이 사람들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는 지를 보여준다. 네루다의 시와 피노체트 시절의 어두운 역사가 그늘져 있는 칠레로부터 안데스 산맥을 넘어 무척이나 자주 드나들었던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민자들의 나라인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을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었고, 남쪽으로 가자 빙하와 눈의 땅 파타고니아가 나타났다.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우수아이아의 세상의 남쪽 등대에 섰을 때 나의 귀향은 시작되었고 열대의 더위와 남극의 추위를 딛고 그곳에 섰을 때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 그 세상의 끝으로부터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쓴다. 세상의 반대편 그 땅의 사람들이 어떤 꿈을 품고 사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