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주저(主著)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제3권 이 출간되었다. 1998년 초판 발행 이후 역자가 그간 미흡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수정을 가하여 새롭게 펴냈다.
흄은 로크와 버클리의 철학에서 순수한 경험적 요소를 취하고 형이상학을 배제함으로써 가장 확실하고 엄밀한 구조를 갖춘 경험론을 완성한 철학자로 평가받아 왔다.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는 흄이 23세 때 집필한 첫 번째 철학적 저술로서, 인식 작용 이외의 도덕적 감정과 예술적 감정 및 그 밖의 모든 심리적 사실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제1권은 신념의 기원과 그 변이 등을 해명했고, 제2권에서는 정념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도덕적·미적 취향과 행동 원리 등을 밝혔다. 제3권에서는 인간의 연합 원리를 개인 및 집단 간의 관계에 적용하여 사회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제3권 <도덕에 관하여>의 출발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편파성’의 문제이다. 흄에 따르면, 인간은 원초적으로 고립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의 모든 가치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확정되지만,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으며, 모든 사회 원리 또한 인간의 자기 중심성에 기초한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과 가까운 혈연이나 친지의 편을 들게 되어 있다. 그 편파성 때문에 정의와 도덕의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 상호 간의 편파성이 서로 충돌하고 대립될 때 이성의 반성 작용이 개입됨으로써, 자연적 존재인 인간은 정의의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흄의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에 흄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의 내용을 보완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최근 간행된 어떤 책에 대한 초록>(An Abstract of a Book lately Published, 1740)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초록>이 바로 그 것이다. 이후 흄은 서서히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철학자이면서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흄의 또 다른 장점은 자신의 도덕 이론에 시민혁명 이후의 영국 상황을 반영하여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인간의 본성상 어쩔 수 없이 내포할 수 밖에 없는 편파성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합리적인 시민의 저항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민주주의의 올바른 실천을 중요한 과제로 떠안고 있는 우리의 지식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