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왜 또 다시 ‘존 레논’ 인가? 2010년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지금,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존 레논을 다루는 기획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레논 열풍’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존 레논을 주제로 한 영화가 언론시사회를 거쳐 곧 상영할 예정이고, 그의 전 곡을 담은 앨범이 새로 출시되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물론 이 책 역시 지금의 이 열풍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시 ‘존 레논’ 일까? 이는 아마도 시기적 유의성이 어느 정도 작용한 듯하다. 2010년은 그가 사망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가 살아있었다면 (우리 식대로라면) 고희(古稀) 잔치를 벌일 해이기 때문이다. 21세기가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단지 레논 생사(生死) ‘몇 십 주년’이라는 시간적인 이유만으로 그를 기억하려는 것일까. 존 레논에 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상상들 이 책은 저자가 머리 글에서 밝히듯, 지금 “왜 또 다시 ‘존 레논’ 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평전이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이 책 『레논평전』은 “그는 누구인가?”에 앞서 “왜 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저자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크리스 모건(Chris Morgan)이라는 한 저널리스트의 위트 있는 기사를 인용한다. 모건은 (Imagine-How the world would be different had John Lennon lived?)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펼쳤다. 존 레논이 살아있다면, 첫째, 마이클 잭슨이 비틀즈 음악의 판권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 둘째, 비틀즈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재결합했을 것. 셋째,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살하지 않았을 것. 넷째, 리버풀 시장으로 선출되었을 것. 다섯째, 보노와 밥 겔도프의 정치적 멘토가 되었을 것. 여섯째, 베스트셀러 자서전을 저술했을 것. 일곱째, 레논 역시 나이가 들어 유행에서 밀려났을 것. 이 가운데 특히 이 책의 저자가 꼽은 가장 흥미로운 상상은 일곱 번째다. 저자 역시 모건과 마찬가지로 레논이 폴 매카트니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히트곡 행진을 계속할 확률을 그리 높게 보지 않은 것이다. 레논이 20세기 대중음악계 최고의 스타이자 뮤지션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모든 사람에게 원만하게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레논이 걸어 왔던 길은 대부분의 팝 스타가 걷는 일반적인 길, 즉 적당히 자기를 감추고 관리하면서 스타덤에 안전하게 머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감출 것도, 잃을 것도 하나 없다는 듯 모든 사람들이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들여다보기를 원했던 인물이었다. 여전히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레논의 삶과 음악 이처럼 레논의 자기고백적 작사·작곡 스타일은, 요즈음처럼 어린 세대를 대상으로 새로운 팬덤을 만들어 나가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레논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정치·사회 문제나 내적 성찰 등을 노래하려 애썼고, 그러다보니 그의 음악에는 달콤한 사랑 얘기보다는 급진적인 발언이나 명상적인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레논의 삶 역시 그의 음악만큼이나 ‘대중스타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논은 20대였던 비틀즈 시절부터, 권위주의 기독교를 비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거나 전쟁을 일삼는 패권정치 반대에 앞장서는 등 당시 기득권층을 불편하게 하는 대표적인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어쩌면 이처럼 불편한 음악과 삶의 궤적이 레논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는지도 모르지만. (레논의 죽음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왜 또 다시 존 레논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적확한 답이야말로 바로 레논의 불편한 삶과 음악이 배치해 있음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논쟁적이고 투쟁적인 레논의 삶과 음악은, 지난 수십년동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통의 대상으로 회자되어 왔다. 그가 세상을 향해 노래했던 담론들은 시공(時空)을 초월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메시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예컨대, <Revolution>이란 곡에서, 레논은 다음과 같이 특유의 짜증 섞인 비음으로 노래한다. “사회구조를 변혁시킨다고 말하시는군요. / 그래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 우리 모두는 당신 머리속에 든 생각부터 변혁시키고 싶군요.” 여기서 ‘당신은’ 당시의 수구 기득권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회자되지만, 곡 전체를 가만히 듣다보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진보연 하는 위선적인 지식인 계급을 꼬집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ltWokking Class Hero>는 좀 더 직설적이다. “집에서는 상처를 주고 학교에서는 매를 때리고 / 당신이 현명하면 미워하면서 바보라고 조롱하네.” 온화한 발라드곡의 대명사격인 <Imagine>도 따지고 보면 反체제·反종교·反자본주의를 노래하는 급진적인 곡이다. 레논은 <Imagine>에서 無소유와 無정부와 無신앙을 상상(imagine)할 것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읊조린다. 이처럼 레논이 세상을 향해 토해낸 불편한 메시지들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일상에서 부단히 접속한다. 그 불편함이 이렇게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회자되는 것은, 레논이 삶을 통해 보여준 ‘진정성’과 ‘솔직함’에 기인한다. 진정성이 있는 불편함이란, ‘쓰지만 달게 받아 먹어야 하는 약’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레논의 삶과 음악에서 추출할 수 있는 소통의 소재들은, 혁명적 좌파 정치에서 상업적 스타덤과 아방가르드 예술을 거쳐 명상과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다양한 영역을 주제로 진심을 담아 노래한 레논의 메시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소통하고 때론 논쟁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도입 부분에 제기한 “왜 ‘또 다시’ 존 레논 인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조금 고치는 게 맞을 것이다. “왜 ‘여전히’ 존 레논 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