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레오폴트 폰 랑케
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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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역자 서문 5 편집자 서문 25 [제1강-1854년 9월 25일] 31 입문:출발점과 중요 개념들 31 1. 역사에서 ‘진보’라는 개념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 32 2. 역사에서 이른바 ‘지도적 이념들’은 무엇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36 <대화> 38 [제2강-1854년 9월 26일] 40 제1장 로마제국의 기초들 ― 우리들 기원의 첫 4세기들에 관한 개관 45 [제3강-1854년 9월 27일] 53 1. 보편적 세계문학의 형성 54 2. 법률적 발전 57 3. 군주체제와 강력한 행정의 형성 59 4. 세계종교의 형성 62 [제4강-1854년 9월 28일] 66 [제5강-1854년 9월 30일] 71 제2장 게르만인들의 유입과 아랍인들의 침공에 의한 로마제국의 변화 71 [제6강-1854년 10월 1일] 79 [제7강-1854년 10월 2일] 86 [제8강-1854년 10월 3일] 88 제3장 카롤링 시기와 독일 황제권 시대 93 [제9강-1854년 10월 4일] 97 [제10강-1854년 10월 5일] 106 [제11강-1854년 10월 6일] 111 제4장 교권시대-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113 1. 황제권으로부터 교황권의 해방 113 [제12강-1854년 10월 7일] 122 2. 십자군원정 124 [제13강-1854년 10월 8일] 130 3. 교황권에 의한 세속권력의 제압 130 [제14강-1854년 10월 3일] 145 제5장 다섯 번째 시기-14세기와 15세기 149 [제15강-1854년 10월 10일] 161 제6장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시기-15세기 말부터 17세기 중엽까지 161 [제16강-1854년 10월 11일 ] 178 <계속된 대화의 요지> 188 [제17강-1854년 10월 12일] 191 제7장 강대 세력들의 등장과 발전의 시대-17세기·18세기 191 <대화의 초록> 201 [제18강 -1854년 10월 13일 아침] 202 <대화> 217 <대화> 226 [제19강-1854년 10월 13일 저녁] 227 제8장 혁명의 시대 241 1. 군주제적 경향의 형성 241 <대화> 244 2. 북아메리카의 혁명 246 <대화> 250 3. 프랑스 혁명 252 <대화> 260 4. 나폴레옹 시기 261 5. 입헌적 시기 265 <마지막 대화> 269 찾아보기 275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역사에서 하나의 물질적 진보는 … 본질적 관심들의 영역에서는 인정될 수 있으나, … 도덕적인 면에서는 진보가 추적될 수 없다.” “모든 시대는 신(神)과 직접적으로 접해 있으며, 그 시대의 가치는 그 시대로부터 출현한 바 위에 근거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시대의 실존 그 자체 속에, 그 시대의 고유한 자신 속에 있다.”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이 작품은 그가 1854년 9월 25일부터 10월 13일까지, 19일 동안 9회에 걸쳐 바이에른(Bayern)의 국왕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Ⅱ)에게 행했던 세계사에 관한 연속강의들의 내용이다. 막시밀리안 2세는 바이에른의 국왕으로 되기 전 1831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할 때 랑케의 강의를 들은 바 있었고, 1848년부터 국왕이 된 후로는 바이에른의 수도인 뮌헨(M?nchen)대학으로 랑케를 초빙하고자 했으나, 그가 사양하므로, 특별히 그를 초청하여 이와같은 연속강의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랑케는 1824년에 『라틴적·게르만적 민족들의 역사』를 발표한 후 베를린대학의 초빙을 받고서 1825년부터 이 대학의 비정규 교수로 강의를 시작했다가 1834년에는 정교수로 되었고, 1841년부터는 프로이센 사관(史官)직을 겸임했다. 그는 베를린대학을 중심으로 영향력있는 역사가로 되었으며, 이른바 "랑케학파"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는 많은 저술들에서 유럽사를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관찰함으로써 역사발전을 그 과정 속에서 주도적으로 작용하는 기존 세력들 사이의, 또는 신·구세력들 사이의 상호관계와 작용을 중심으로 하여 이원론(二元論)적, 변증법적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관찰에서 그는 기존 체제와 문화의 역사적 역할과 의미를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함으로써 보수적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로이 등장하는 요소들 및 세력들의 역사적 역할과 의미도 인정함으로써 결국 이들에게도 역사적 권리를 부여했다. 그에게는 기존 세력들 사이의, 또한 신·구세력들 사이의 대립투쟁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그들 사이의 상호투쟁에서 어느 한쪽 편의 일방적인 몰락이나 승리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타협과 점진적인 해결을 진정한 역사적 운동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19세기 늦게까지 장수하면서 산업화, 노동운동, 계급화의 현실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국가주의화 현상을 겪으면서도 역사를 정치사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을 중요시하면서 관찰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역사학적 시야에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대중의 역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그의 객관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그의 강의를 들었던 드로이젠(Droysen)이, 그의 정치사에 대해서는 그의 사후에 람프레히트(Lamprecht)가 비판을 제기한 바 있으며, 20세기에 와서는 다른 나라들에서뿐만 아니라 독일 내에서도 그의 국가주의적, 보수적 역사서술에 대해 비판이 일어났으며, 특히 구조사적, 사회사적 역사가들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의 많은 저술들의 내용, 역사의 매 국면에 대한 깊은 통찰, 개체사상(個體思想)과 범신론(汎神論)에 근거하는 경건한 접근 태도와 객관적 방법 등에 있어서 그는 탁월한 역사가였다. 무엇보다도 니부르(Niebuhr)와 함께 문헌학적·비판적 방법(die philologisch-kritische Methode)을 세웠고, 19세기 초의 낭만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주의(Historismus)를 세계관으로서, 또한 역사연구의 방법론으로서 완성시켰던 점에서, 실로 그는 19세기 유럽에서 최대의 역사가였을 뿐만 아니라, 서양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작품은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실제의 내용은 유럽의 근세사로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시기들뿐만 아니라 고대사와 중세시기도 포괄하고 있으며, 더 소급하여 고대 동방의 국가들과 유대민족들의 역사도 유럽사와의 관계 속에 취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이 연속강의의 여러 곳에서 기원 후(A. D.)부터 자신이 살고 있던 19세기까지를 전체적으로 "우리의 기원(Unsere ?ra)"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듯이, 그에게는 로마제국의 성립부터 19세기까지의 모든 역사국면들이 "우리의 시대", 또는 "우리의 세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근세"라는 하나의 역사학적 범주 속에 포함되는 시기들이다. 그에게는 근세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대사와 중세사에 대한 해설이 전제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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