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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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를 돌파하며,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다. 그가 이 책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분노'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뜨거운 호소다. <분노하라>는 원서 34쪽의 소책자다. 저자의 글이 담긴 본문은 불과 13쪽. 특히 이번 한국어판에는 비교적 긴 인터뷰 글을 실었다. 열 가지 문답으로 이뤄진 인터뷰에는 에셀의 흥미로운 성장 배경, 책의 출간 전후 이야기, 본문에서 모두 담아내지 못했던 저자의 세계관과 윤리관이 담겨 있다. 특히 현재 이슬람.아랍 세계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혁명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국관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출발은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의 성지(聖地) 글리에르 고원이었다. 저자는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앵디젠 출판사의 편집인들(실비 크로스만, 장 피에르 바루)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곧장 에셀에게 달려갔다. 이 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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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레지스탕스의 동기, 그것은 분노 역사를 보는 두 관점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평화적 봉기를 위하여 주(註) 편집자 후기 - 스테판 에셀, 그는 누구인가?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 저자와의 인터뷰 추천사 - ‘분노’와 ‘평화적 봉기’가 세상을 바꾼다(조국) 옮긴이의 말 - 어느 행복한 투사의 분노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전 세계를 감전시킨 93세 레지스탕스 노투사의 외침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를 돌파하며,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INDIGNEZ VOUS!)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93세 노인이다. 그가 이 책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분노’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 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뜨거운 호소다. 『분노하라』의 원서는 표지 포함 34쪽의 소책자다. 이 책의 출발은 나치에 맞섰던 레지스탕스의 성지(聖地) 글리에르 고원이었다. 저자는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앵디젠 출판사의 편집인들(실비 크로스만, 장 피에르 바루)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곧장 에셀에게 달려갔다. 이 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이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2010년 10월 초판 8,000부를 찍어낸 책은, 불과 7개월 만에 200만 부가 팔려나갔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출판사로 저자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프랑스 언론은 100년 전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버금가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흥분했다. 레지스탕스의 동기, 그것은 분노 그렇다면 『분노하라』의 무엇이 프랑스인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 것일까? 프랑스 『르몽드』 지는 서평 1면에 ‘전달의 몸짓으로서 더욱더 관심을 끄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레지스탕스의 노투사의 호소가 21세기의 젊은 세대에게로 70년 전 레지스탕스 정신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1943년 프랑스의 주요 레지스탕스 단체들은 반나치 투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평의회’를 결성했다. 이 평의회에서는 1944년 3월 15일 프랑스 해방에 대비하여 새롭게 구성될 정부의 개혁안을 채택했다(본문 40쪽). 에셀은 이 개혁안이야말로 “자유 프랑스가 지켜나갈 원칙과 가치, 곧 프랑스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가치”였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이 시기에 구축된 것이 사회보장제, 퇴직연금제도, 공공재의 국영화, 대재벌의 견제, 언론의 독립, 교육권이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레지스탕스가 얻은 성과가 토대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가 그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프랑스다. 저자는 선대 레지스탕스들이 나치에 저항하여 싸웠던 것처럼 젊은 세대가 “이런 모든 일들에 암묵적인 찬동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분노할 것을 주문한다(본문 9~16쪽)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분노하라! 그리고 참여하라!” 에셀은 이 책에서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본의는 “참여하라!”다. 그는 자신에게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로 오면서 분노의 대상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자신이 나치와 싸울 때처럼 투쟁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은 이해한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는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각자 분노할 대상을 찾고, 그 분노를 밑거름 삼아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집시들을 추방하는 프랑스 정부의 야만, 자본에 종속된 언론, 가자 지구를 포격하는 이스라엘 정부가 그 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나쁜 태도라고 나무란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란 우리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본문 21~26쪽).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에셀이 ‘분노’와 ‘참여’를 말할 때, 그것은 폭력적 봉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 하며,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든 인물들은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이렇게 보면 그는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그도 사르트르처럼 우리가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은 수긍한다.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떤 타격도 주기 힘든 로켓포를 끝내 이스라엘군에 발사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몸짓’을 이해 못할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테러리즘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폭력으로는 어떤 희망적인 결과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에셀이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성향마저 정복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비폭력이다.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 이것이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8할을 살아낸 인물의 결론이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결국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본문 27~34쪽). 스테판 에셀, 그는 누구인가? 사실 이 책은 유명한 작가의 흥미진진한 소설도 아니고, 하나의 정치 팸플릿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시선, 놀라운 통찰력을 자랑한다고 할 수도 없다. 실제 에셀이 책상물림의 노신사였다면, 그의 주장들은 구세대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참여형 투사로 20세기 프랑스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에셀은 독일 태생이다. 아버지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어머니는 프러시아 은행가 집안의 딸로 예술애호가이자 화가였다. 그의 부모는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에 큰 획을 그은 누벨바그의 대표주자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Jule et Jim)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에셀은 사르트르와 헤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낙관적인 천성의 저자는 “역사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헤겔의 주장에 강하게 끌렸다. 그가 역사의 위기에서 피하지 않고 투신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하여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다. 파리에 밀입국하여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돕던 중 게슈타포에 체포된다. 고문을 당하고 끌려간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다행히 사형 집행 하루 전날 죽은 동료 수감자와 신분을 바꾸는 데 성공하여 극적으로 탈출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해방을 맞은 에셀의 첫 번째 결심은 “이렇게 삶을 되찾았으니, 이젠 그 삶을 걸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종전 후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는 에셀은 유엔 비서직을 맡아 1948년에 세계 인권 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한다. 이후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하며 화려한 경력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하고, 1996년에는 80세의 나이로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주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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